[더오래]코로나도 훼방놓지 못한 대보름 전통시장

중앙일보

입력 2021.03.15 13:00

[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70)

냄비 속 천개의 잎사귀! 다소 낭만적이기까지 한 이 말은 전골 요리 ‘밀푀유나베’를 가리키는 말이다. 배춧잎 사이에 고기를 끼우고 각종 야채로 맛도 내고 멋도 내는 전골 요리다. 이름 만큼이나 멋들어진 모양새와 아리송한 발음으로 한 번쯤 해보고 싶고 먹고 싶은 음식 중 하나다. 그리고 진즉부터 뜨고 있는‘밀키트’의 대표주자이기도 하다.

그림 최근 인기몰이 중인 밀키트 ‘밀푀유나베’ 1인 가구의 증가로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아이패드7, 프로크리에이터. [그림 홍미옥]

그림 최근 인기몰이 중인 밀키트 ‘밀푀유나베’ 1인 가구의 증가로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아이패드7, 프로크리에이터. [그림 홍미옥]

대보름·동지·명절 행사도 간편한 밀키트로

해마다 명절이나 세시풍속을 기념하는 날엔 신나는 행사가 열리곤 했다. 사랑의 떡국 나누기 혹은 액운 타파 동지팥죽, 대보름 부럼 까기 등이 그것이다. 지자체별로 독거노인이나 소외계층을 위한 일환으로 행해지는 행사가 그랬다. 동짓날엔 커다란 솥을 걸고 수백 인 분의 팥죽을 쑤고 설을 앞두고는 떡국을 끓이고 함께 나누는 뉴스가 매년 들려왔다. 앞치마를 곱게 두른 각종 단체 회원들이 펄펄 끓는 솥에서 푸짐하게 떡국이나 팥죽을 나누는 모습은 이미 낯익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말하면 입 아픈 코로나 시대. 모두의 생활을 속속들이 바꾸어 버린 얄미운 그것이 세시풍속의 정마저 바꿔버린 건 어쩌면 당연하다. 펄펄 끓던 사랑의 떡국 한 그릇은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밀키트란 이름으로 배달되었다. 각종 부럼과 오곡 세트도 정성스레 포장된 채 소외계층에게 건네졌다는 뉴스가 한가득이다. 추석, 설 같은 큰 명절이 아니고서야 사는데 바쁜 사람은 동지나 대보름 같은 날은 지나치기 일쑤인 게 사실이다.

겨우 TV의 뉴스나 신문의 미담 코너에 실린 음식 나누기 행사를 보고 알아차릴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온 지구를 잠식해버린 코로나의 위력(?)으로 명절을 비롯한 정을 나누는 행사마저 기약 없이 취소된 상황이다. 다행히 편리함으로 무장한 밀키트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고 할까?

전통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그곳, 재래시장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재래시장의 좌판과 간편식으로 들어찬 대형마트의 진열대. [사진 홍미옥]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재래시장의 좌판과 간편식으로 들어찬 대형마트의 진열대. [사진 홍미옥]

지난 대보름 무렵의 재래시장엔 유독 나이 지긋한 손님들로 분주했다. 서울 도심에서 그것도 코로나로 모든 게 뒤죽박죽일 때에 이런 광경은 사뭇 놀랍기까지 했다. 여기는 홍제역 1번 출구, 대보름 장이 열리나 보다. 오전부터 건나물 거리와 잡곡을 사려는 사람들로 시장은 입구부터 북적였다. 단단하고 야무진 팥 무더기와 노란빛의 차조, 톡톡 씹히는 맛이 일품인 붉은 수수 등이 수북하게 놓여있었다. 그 옆으론 각종 건나물, 이를테면 오묘하고 고소한 맛의 박고지와 가지 말린 것, 이름마저 특이한 아주까리 등 평소 보기 힘든 나물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맞은편 마트에는 갓 지은 오곡밥과 나물 세트, 각종 밀키트가 이쁘게 포장된 채 손님을 부르고 있고 이래저래 흥청대는 시장이다.

하지만 재래시장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시끌벅적 흥정하는 소리와 다정한 덤이다. 이렇게 팔면 본전도 못 뽑는다며 ‘에라, 모르겠다 하나 더!’를 외치지만 표정 만큼은 싫지 않은 것 같다. 날이 풀려서인지 나이 지긋한 어르신부터 손잡고 따라나선 어린아이들로 북적이는 시장을 보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장바구니 가득 나물거리를 사 들고 즉석 오곡밥을 고르는 모습도 간간이 눈에 띈다. 잊혀 가고 어쩔 수 없이 지나치는 풍습을 애써 챙기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그게 편리한 밀키트건 정성스러운 음식이건 간에.

제아무리 코로나가 훼방을 놓아도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쉽게 깨뜨리지는 못하는 것 같다. 효용성과 편리함을 장착한 새로움과 전통의 따뜻함은 함께 공존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바쁜 주부에게 요즘 인기인 밀키트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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