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나온 인근 주민 최 모(82) 씨에게 보 해체와 상시 개방 결정에 관해 묻자 "미친 짓이지.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이 밉다고 그러는 건데, 멀쩡한 보를 왜 건드리냐"고 말했다. 이 동네서 태어나 82년을 살았다는 그는 “자기들이 보가 생기기 전에 어땠는지 아나? 물이 없을 땐 개울이 되고 큰비가 오면 물난리가 났다”고 말했다.
#1. 미나리
정부가 상시 개방한다고 발표했음에도 승촌보에 물을 채워둔 사실이 의아했다. 영산강 보 해체를 주장해온 김도형 영산강살리기네트워크 사무총장은 “현재 승촌보는 5m 이상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 운영을 잘 아는 관계자가 “미나리 때문”이라고 귀띔한다. 미나리꽝을 찾아 나섰다. 멀지 않은 곳에서 무릎 높이로 물이 찬 미나리꽝을 발견했다. 허리를 숙이고 일하는 세 명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말씀 좀 여쭤볼게요.”
“….”
한 젊은 남자가 고개를 들었지만, 말없이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한다. 자세히 보니 외국인이다.
“전부 외국인입니까?”
“예, 다 외국인.”
“미나리꽝에 쓰는 물을 어디에서 끌어오나요?”
“몰라요. 미나리 많아요.”
더이상의 취재는 무리였다. 인근 지역 농민에게 물으니 “마을에 젊은이가 부족해 외국인 아니면 농사를 못 지을 판”이라고 말한다. 미얀마 등지에서 온다고 한다. 우리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한 영화 ‘미나리’에서 재미교포에게 빛이 된 미나리가 한국에선 외국인 노동자에게 희망을 주고 있었다.
해체 결정된 4대강 보 돌아보니
미얀마 근로자 희망 주는 미나리
보 열면 수위 낮아져 재배 어려워
환경단체 "보 철거해야 생명 회복"
정부 "보 해체 4~5년 이후 가능"
그는 “겨울에는 미나리에 지하수를 충분히 뿌리지 않으면 얼어서 상품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농민들의 사정 때문에 겨울엔 승촌보 수위를 6m까지 높인다고 한다.
#2. 홍어
승촌보에서 영산강을 따라 하류로 차를 타고 30분가량 달리니 나주 죽산보가 나타난다. 해체하기로 한 시설이다. 주민 반발도 강하다. 양치권 영산강 뱃길복원 추진위원회 회장은 “ 보를 해체하면 예전처럼 도랑에 불과해진다”며 “보가 생기고 물이 깨끗해졌는데 수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 될 일을 예산 낭비해가며 해체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주장했다.
환경부는 보를 개방한 뒤 수질이 개선됐다고 지난 13일 발표했다. 그런데 죽산보는 BOD 등이 오히려 나빠진 것으로 나왔다. ‘보 개방 후 수질이 악화했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환경부는 즉시 반박 자료를 냈다. 박미자 환경부 4대강 조사ㆍ평가단장은 “BOD 등은 보 개방뿐 아니라 강수량이나 오염물질 등 외부조건에 영향을 받는 수치며, 보 개방에 직접 영향을 받는 수질 지표들은 다 좋아졌다”고 주장했다.
승용차로 17분 거리인 영산포 홍어거리에도 해체 반대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홍어 맛집이 줄지어 선 거리에 들어서자 특유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 죽산보 건설 후 수심이 깊어져 황포돛배가 다닌다. 영산포 등대와 더불어 지역 명물로 관광객 유치에 한몫한다는 주장이다.
최지현 광주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은 “죽산보를 해체해야 생태계가 복원된다”며 “황포돛배는 하류로 옮겨서 운항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민 반대가 심하자 정부는 “주민이 동의할 때까지 기다려서 해체할 것”이라고 물러섰다. 환경부 관계자는 “죽산보를 해체하려면 최소한 4~5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경제성 평가 등을 조작해 보 해체라는 잘못된 결론을 냈다"고 비판했다.
금강에서도 의견 대립이 심하다. 하류에 있는 백제보가 그나마 주민과 갈등이 가라앉은 상태다. 보에 이르는 금강 변에 비닐하우스가 가득하다.
#4. 소나무
금강을 거슬러 25km 정도 가면 공주보를 만난다. 지난 16일 오후 공주보에선 비가 내리는 가운데 포크레인과 트럭을 동원한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보 시설은 철거로 결정됐지만 당장 보수가 필요해 이뤄지는 작업이다.
금강보 중 위쪽에 있는 세종보는 해체로 결론이 났다. 보에는 수력발전소가 있다. 안내판에는 연간 12GWh의 전기를 생산해 소나무 250만 그루의 효과를 낸다고 적혀있다. 보 수문을 여는 실험으로 인해 수력발전소를 가동하지 못한다. 8300톤의 이산화탄소를 저감하는 시설은 무용지물이 된 상태다.
정부가 보 해체를 발표했지만, 주민 반발에 "동의할 때까지 설득하겠다"고 물러섰다. 이번 정부에서 해체에 나서긴 힘든 상황으로 판단된다. 이런 어정쩡한 딜레마는 보 주변에서도 느껴진다. 보를 소개하는 게시판은 낡고 찢겨 나가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게 많다.
대조적으로 인근 시설에 비치된 홍보물들은 해체될 보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의 독창성과 측우기의 과학성, 연기군의 상징인 제비와 금강 물결의 패턴을 상징하는 구조’(세종보)
‘봉황의 머리 및 여의주 형상을 적용하고 봉황의 힘찬 날갯짓을 정형화한 디자인’(공주보)
‘2000년을 흘러온 남도의 숨결, 새롭게 태어나는 영산강이 힘차게 굽이치는 기운을 형상화하여 디자인’(죽산보)
각각 150억, 1051억, 599억원 들여 세운 세 개 보를 해체하는데 898억 원이 들 것으로 예상한다.
강주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