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들, 30년 만에 일 정부에 승소

중앙일보

입력 2021.01.09 00:46

수정 2021.01.09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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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수송동 옛 일본대사관 건너편 평화의소녀상 곁에 눈사람이 놓여 있다. 이날 법원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첫 판결을 내렸다. [뉴시스]

법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손해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에 2013년 8월 민사조정 신청을 시작으로 소송을 진행한 지 7년 만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증언한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12월 6일 일본 도쿄지법에 국제소송을 제기한 날부터는 약 30년 만이다.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정곤 부장판사)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일본 정부가 1인당 1억원씩 배상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대법원이 2018년 10월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데 이어 3년 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중앙지법 “1인당 1억씩 지급하라”
강제징용 이어 일 정부 배상 판결
“국제 규정 위반, 주권면제 어려워”
일 “수용 못해” 주일대사 초치 반발

위안부 소송에서 최대 쟁점은 피고가 다른 나라 정부이기 때문에 한국 법원이 재판 권한을 가지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피고에 의해 계획적,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행위로 국제 강행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국가면제(주권면제)는 적용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며 피고에 대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의 불법행위가 인정되고, 원고들은 상상하기 힘든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들이 배상을 받지 못한 사정을 볼 때 위자료는 원고들이 청구한 각 1억원 이상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또 “이 사건에서 피고가 직접 주장하지는 않지만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보면 이 사건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법원이 일본 정부의 ‘위안부 피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에서 이미 4건의 위안부 피해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한 뒤 한국 법원에서 피해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징용 소송과 맥락이 같다.


일본 외무성은 판결 직후 남관표 주일 대사를 즉각 초치하며 반발했다. 일본 정부는 국제법상 국가는 다른 나라의 재판에서 피고가 되지 않는다는 ‘주권면제’ 원칙을 내세워 “이번 배상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무대응 원칙을 고수하는 차원에서 항소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배상 판결이 피고 측 항소포기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일본 정부가 배상 책임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원고 측은 일본 정부의 자산 압류에 나설 수 있다. 앞서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지난달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의 한국 내 자산인 피앤알(PNR) 주식 8만175주에 대한 압류명령을 송달했다. 다만 자산 압류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 측을 대리한 김강원 변호사는 “일본 정부에 대해 강제 집행이 가능한 자산이 있는지 별도로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한·일 양국 관계에 대한 파장도 예상된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사법부 재판 불개입 원칙을 고수하는 한 한·일관계는 더 나빠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교도통신은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의 자산 압류에 나설 경우 일본의 보복 조치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본 현지 언론들은 원고 측이 일본 대사관이나 소유 물품을 압류에 나설 경우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위반이라는 주장을 보도하기도 했다. 비엔나협약 제22조는 “공관 및 지역 내에 있는 비품, 기타 재산은 차압 또는 강제집행으로부터 면제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사라·박현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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