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로또 명당’, 학생도 어르신도 인생역전 열기 후끈

중앙일보

입력 2020.12.21 13:00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65) 

하루에 번개를 세 번이나 맞고 과속하는 트럭에 치인 후 지나가는 방울뱀에 물렸다. 자, 이래도 죽지 않을 확률은? 눈치채셨다시피 시중에 나도는 이 말은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에 빗대어서 하는 말이다. 어이쿠, 그렇게나 어렵다니. 웃자고 하는 말일지 몰라도 우릴 살짝 실망하게 하는 것임엔 틀림없다.
 

동네 복권 가게 앞에 줄 지어 있는 사람들, 아이패드7 아트레이지. [그림 홍미옥]



갈수록 진화하는 복권방

여기저기 명당이 생겨나고 있다. 명당이라, 지극히 상식적인 의미는 ‘풍수지리에서 상징하는 이상적인 공간’을 말한다. 흔히들 좋은 집터나 묏자리는 후손에게 좋다고 해 명당자리를 찾곤 한다. 지금은 로또, 복권가게가 그 명당이라는 말을 이어받아 당당하게 내걸고 있으니 재밌는 일이다.
 
동네 큰길가에는 언제부턴가 긴 줄이 늘어서곤 했다. 그야말로 시도 때도 없다. 갓 주민증을 발급받았을 싶은 어린 학생부터 멋쟁이 아가씨, 초로의 어르신까지 군상도 다양하다. 이름하여 ‘로또 명당’으로 소문난 가게 앞의 모습이다.
 
가만 보니 그 종류도 가지가지다. 개중에는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복권도 있다. 다소 좁은 내부를 들여다보니 이건 뭐 향학열에 불타는 학생들로 가득한 공부방이 따로 없을 정도다. 저마다 볼펜을 들고 쓰고 지우고 골똘히 생각하기에 여념이 없다. 당첨 번호를 알려준다는 책자까지 마련되어 있고 한편에는 숫자를 적어 넣은 탁구공이 수북이 들어있는 바구니도 놓여있었다.


아! 이것은 숫자 고르기에 고민하는 고객을 위한 가게 나름의 서비스인가? 1등 당첨이 몇 차례라는 자랑 겸 홍보 문구가 빼곡한 벽면에는 복권 당첨의 사례도 붙어있다.
 
흔히들 알고 있는 돼지꿈은 소문만큼 이름값을 하지 못한단다. 일등당첨에 최고인 꿈은 조상 꿈이라는 거다. 실제 그런 사례가 가장 많았다고 했다. 나도 여태껏 돼지꿈이 최고 길몽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오래전 준비하고 쏜 행운의 화살

주택복권 추첨장면. 아주 오래전 일요일 오후 다섯시쯤이면 TV에서 주택복권 당첨자를 발표했다. [중앙포토]

 

“준비하시고, 쏘세요!” 아주 오래전 일요일 오후 다섯시쯤이면 TV에서 주택복권 당첨자를 발표했다. 화면 속엔 짧은 스커트 차림의 아가씨가 돌아가는 회전판 옆에 서 있고 사회자는 예의 우렁찬 소리로 주문을 했다. 돌아가는 회전판에 다트 핀을 쏘는 사람은 우리가 잘 아는 연예인이거나 명사였다. 간혹 힘에 부쳤는지 다트 핀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빗나가기도 해 잔잔한 재미까지 선물했다.
 
가끔은 가수가 나와 노래를 하기도 했는데, 이건 쇼 프로그램도 아니고 예능도 아닌 그냥 현장감 넘치는 복권 생방송인 거다. 아! 지금도 MBC에선 ‘생방송 행복 드림 로또 6/45’프로그램이 있다. 시청률이 2% 남짓이라는 걸 보니 대개가 인터넷으로 확인하는 것 같다.
 

인생역전 꿈꾸지만 여전한 인생도 괜찮아



복권당첨 후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사진 영화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스틸]

 
좀 우습지만 사실 난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누구나 꿈꿔보는 일등당첨 후의 계획이 그것이다. 당첨금으로 뭘 할건지는 어쩌다 불면에 시달리는 밤이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 누구에겐 얼마를 줄 것이고, 또 만약을 대비해 얼마는 꽁꽁 감춰둬야지, 아냐 당첨 사실은 극비로 해야겠어! 등. 상상만으로도 잠시 잠깐 행복해지긴 한다. 복권을 사지 않아도 그저 이런 상상은 즐겁기만 하다.
 
그런데 방송에선 일등당첨자의 당첨 후 삶이 그다지 무지갯빛은 아니라는 뉴스가 자주 나온다. 초유의 당첨금을 거머쥔 아무개는 오히려 빚더미에 주저앉았다는 둥, 또 아무개는 도박으로 전 재산을 탕진하고 가족 해체에 이혼까지…. 당최 행복하다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설마 다 그렇기야 할까마는 생각만큼 좋지만은 않은가 보다. 상상 속에서는 즐겁기만 했는데.
 
복권 당첨 후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미국영화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말 꿈같은 일이, 믿기 힘든 행운이 굴러왔지만, 그로 인한 사건 사고도 함께 묻어왔다. 결국 영화는 영화니까 아름다운 스토리로 끝을 맺는다. 마치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누구나 가끔은 역동적인 인생 역전을 꿈꾼다. 하지만 그런 기회가 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오늘도 길거리 ‘명당’에서 ‘역전’을 꿈꾸지만 ‘여전’한 인생을 사는 우리, 다소 허황하고 비현실적인 꿈일지라도 가끔은 그런 꿈도 꾸며 사는 게 인생 아닐까?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