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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향기가 난다구요? 여기는 방산시장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63)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는 흔히 하는 말로 ‘예쁨 담당’ 소품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호텔의 외관이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과 어울리지 않는 사랑스러운 연분홍을 입고 있다. 종업원의 고혹적인 보랏빛 유니폼도 한 몫 거든다. 또 추격신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도 환상적인 새하얀 눈 트랙도 그렇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는 사랑스런 상자에 담긴 케익이 등장해서 인기를 끌었다. 아이패드7.프로크리에이트. [그림 홍미옥]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는 사랑스런 상자에 담긴 케익이 등장해서 인기를 끌었다. 아이패드7.프로크리에이트. [그림 홍미옥]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압권은 케이크다. 이름하여 멘들스케익. 유혹의 달콤함이 줄줄 흘러내리는 케이크다. 칙칙한 감방 죄수의 손가락을 쪽쪽 빨게 만들고 행복감에 빠지게 하는 마법의 맛이다. 그 맛을 더욱 살리는 게 있었으니 케이크를 담은 상자였다. 우르르 쏟아져도 사랑스럽기만 한 파란 리본을 두른 분홍빛 상자다. 영화의 스토리를 넘어설 만큼 인상 깊은 상자였다. 혹시 아무리 소문나게 맛있는 케이크도 포장이라는 옷을 걸치지 않으면 평범하게 보였을까? 아무튼 멘들스케익의 종이상자는 최고였다.

꽃향기가 스며드는 방산시장 

포장재와 베이킹의 메카, 을지로 방산시장. [사진 홍미옥]

포장재와 베이킹의 메카, 을지로 방산시장. [사진 홍미옥]

을지로4가역, 어디선가 싫지 않은 꼬릿함이 풍겨온다. 건어물 전문시장인 중부시장이다. 뒤를 돌아보면 포장재와 베이킹의 메카 방산시장이 있다. 방산(芳山). 예전 청계천 공사로 산을 이룬 흙더미에서 꽃향기가 흐른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그래서일까? 여느 재래시장과 별반 다르지 않은 외양인데 어디선가 좋은 향이 풍기는 것도 같다.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장 골목을 들어서자 향초 상점들이 줄을 지어 있다. 최근 공간에서의 향기의 중요성과 함께 디퓨저 시장이 인기를 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낡은 시장은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듯했다. 향초와 향의 재료들이 골목을 사로잡고 있었다.

방산시장엔 베이킹재료상과 향초상가들이 밀집되어 있다. [사진 홍미옥]

방산시장엔 베이킹재료상과 향초상가들이 밀집되어 있다. [사진 홍미옥]

향초 골목을 지나자 부쩍 청춘 커플이 눈에 띄었다. 그곳에서도 달콤한 향기가 풍겨왔다. 베이킹 거리로 소문난 골목이다. 그곳은 각종 향을 내는 식자재와 베이킹에 필요한 온갖 재료를 파는 곳이다. 이 나이에도 처음 보는 재료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무슨 무슨 과자나 케이크는 이런 거로 만드는구나, 세상에 어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제아무리 소문난 케이크라도 이곳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될듯싶었다. 마침 내가 방문한 날은 11월 10일이다. 즉 빼빼로데이 하루 전날이다. 연초부터 코로나로 혼이 나간 터라 밸런타인데이고 빼빼로데이고 생각도 못 한 채 지나갔다. 아! 그래서 젊은 커플이 이리도 많았었나 보다. 조그만 막대 과자를 장식할 앙증맞고 달콤한 재료를 고르는 그네들의 뒷모습도 아름다웠다.

베이킹 테라피를 아시나요?

집에서 직접 케익이나 과자를 굽는 홈베이킹족이 늘고 있다. [사진 백주경]

집에서 직접 케익이나 과자를 굽는 홈베이킹족이 늘고 있다. [사진 백주경]

이젠 입이 아플 지경이지만 코로나는 우리의 모든 걸 바꿔 놓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가정에서 무언가를 도전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특히 베이킹이 인기라고 한다. 정성 들여 반죽하고 그에 보답하듯 맛있게 부풀고 구워지는 케이크나 쿠키를 보며 힐링을 한다는 거다. 이름하여 ‘베이킹 테라피’다. 생각만으로도 고소한 내음이 느껴져 행복하다.

지인 중에도 베이킹에 빠져 달콤한 시간을 즐기는 이들이 꽤 있다. 케이크를 굽고, 그걸 나누면서 달콤한 소통까지 하는 그들이 암만 봐도 부럽다. 예전엔 집에서 케이크나 쿠키를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시간이며 재료, 포장까지 녹록지 않았음이다. 하지만 지금이야 어디 그런가. 인터넷으로도 뚝딱 주문되고 조금만 발품을 팔면 된다. 여기 베이킹의 메카 방산시장이 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포장도 예술처럼!

방산시장은 국내최대의 포장재 전문시장이다. [사진 홍미옥]

방산시장은 국내최대의 포장재 전문시장이다. [사진 홍미옥]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다. 1000원짜리도 만원으로 보이게 만드는 마법은 다름 아닌 포장이다. 방산시장의 골목골목엔 포장에 필요한 모든 게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운 상자에 정성스레 담긴 선물을 보고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도 당장 필요 없는 이쁜 상자와 종이가방에 자꾸만 눈이 갔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결국 색동 종이가방을 몇장 샀다. 우스갯말로 방산시장 포장재 골목은 개미굴 같아서 당최 그 유혹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고 하더니 맞는 말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정을 건넬 기회는 많다. 이왕이면 정성스러운 포장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건 어떨까? 여기 방산시장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 이유 없는 설렘은 각양각색의 포장재 때문이었나 보다. 물론! 사람은 포장보다 내면이 중요하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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