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허깨비와 싸움, 허탕 친 4년

중앙일보

입력 2020.11.21 00:48

수정 2020.11.21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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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능력이나 현실 감각, 정책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부동산 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종배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20일 원내대책회에서 “처치 곤란한 상가나 호텔에서 어쩔 수 없이 사는 것을 국민은 주거 안정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19일 빈 상가·호텔의 주거용 전환 등을 담은 전세대책을 내놓자 정치권과 인터넷·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호텔이) 그렇게 좋으면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부터 들어가 살아보라”고 말했다. 전날 김 장관이 호텔 방을 개조해 전세로 쓰는 것에 대해 “반응이 좋다”고 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 비웃듯 서울·수도권 계속 올라
시장을 투기판으로 보고 정책 수립
“24차례 진단·처방·처치 헛발질”
대기 수요 잡을 마땅한 카드도 바닥

온라인상에선 호텔에 사는 거지라는 의미의 ‘호거’라는 말이 등장했고, 24번째 부동산 대책에 빗대 25~1000번째 대책도 나왔다. 25번째 대책은 ‘한 아파트에 신혼부부 3쌍이 같이 살면 세금 면제’, 26번째 대책은 ‘한강에 수상가옥 짓기’, 29번째는 ‘1평에서 서서 자는 집’이다. 1000번째 대책은 ‘교도소를 주거용으로 개조하기’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집값·전셋값 상승의 진단부터 처방, 처치가 모두 틀렸다”며 “정부가 자신들은 선(善)하고, 시장은 사악한 투기판이라고 보는 시각부터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지난 3년 6개월, 햇수로 4년 간 실체가 없는 ‘허깨비(진단)’를 ‘적(처방)’으로 몰아세우고 ‘집중공격(처치)’ 했다는 비판이다. 그 결과 정부는 23번의 집값 안정 대책을 내고도 집값을 잡기는커녕 부작용만 양산했다. 서울·수도권 아파트값은 연일 최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다. 20~30대의 ‘패닉바잉(공포 매수)’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20대 이하가 전국에서 사들인 아파트는 3561건으로 전달보다 25%나 늘었다.
 
24번째 대책인 전세대책도 본질을 크게 벗어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국민들이나 연구기관은 내년에도 집값·전셋값이 오를 것으로 내다본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린 데다,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집값·전셋값이 계속 오르면 25번째, 26번째 대책이 나오겠지만 쓸 카드가 마땅찮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토지거래허가제를 넓히거나 대출을 더 조이는 등 기존 대책의 범위를 넓히고 강도를 높이는 정도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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