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與 행정수도 이전 왜 불쑥 제기? "대선승리로 주류 교체 완성"

중앙일보

입력 2020.08.03 00:35

수정 2020.08.03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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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비서실장 시절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모습. 전현직 두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는 측면에서 매우 닮았다는 평가다. [연합뉴스]

여당이 국회와 청와대까지 이전하는 행정수도 완성론, 즉 천도(遷都) 주장을 지난달 20일 불쑥 꺼내 후폭풍이 거세다. 2002년 9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은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사실상 꺼진 불씨였으나 민주당이 16년 만에 되살리려 하고 있다.

 야당 쪽에서는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과 전셋값을 폭등시킨 문재인 정부가 느닷없는 천도 카드로 실정을 가리려 한다고 비판한다. 몇 년이 걸리는 행정수도 이전으로는 지금의 부동산값 폭등을 잡기 어렵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김안제 한국자치발전연구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을 지난달 30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사무실에서 만났다. 초대 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원회 민간 위원장(정부 측 위원장은 이해찬 당시 총리)을 맡아 세종시 입지를 정한 '행정수도의 산증인'이다.
 -초대 추진위원장으로서 최근의 수도 이전 논란을 어떻게 보나.
 "늦은 감이 있다. 국민투표로 다시는 논란이 되지 않게 하는 방법, 정부가 헌재에 다시 안을 올리는 방법, 여당이 논의하는 것처럼 신행정수도 건설법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국민 의견을 잘 수렴해 올바른 방향으로 전개되길 바란다."
 -여당안은 행정수도인가, 천도인가.
 "수도 이전 공약 더분에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의 당초 생각은 천도보다는 신행정수도였다. 지금 세종에는 행정부의 3분의 2 이상이 옮겨가 있지만, 아직 행정수도는 아니다. 청와대가 이전하고 국회는 본원을 여의도에 두고 분원만 가더라도 행정수도 이전으로 볼 수 있다. 국회와 청와대는 물론 사법부까지 모두 가면 확실한 천도다. 김태년 원내대표가 제안한 여당 안은 국회와 청와대가 모두 가자는 것이다. 수도의 3분의 2가 가는 것이니 천도에 가깝다."  

김안제 초대 신행정수도 건설추진원원장은 서울의 상징인 남대문 앞에서 "국토 균형 발전과 수도권 과밀 억제를 위해 이제라도 행정수도를 세종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장세정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광화문 시대'를 공약했지만, 청와대는 광화문에도 나오지 못했다.
 "세종으로 가는 게 오히려 더 쉬울지도 모른다. 청와대에서 한 발짝 나오나, 세종으로 가나 어차피 돈 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세종시에 청와대와 국회 이전 후보지를 마련해 뒀으니 그린벨트를 추가로 풀 필요도 없다."
 -타이밍이 왜 지금이라고 보나.
 "야당은 코로나19에다 경제가 어려운데 왜 지금이냐고 반대한다. 박정희 정부 때든 노무현 정부 때든 지금이든 과밀 해소라는 수도 이전의 목표는 똑같다. 과밀이 더 심화했는데 반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뭘 기준으로 타이밍이라고 해야 하나. 2004년 위헌 결정 안 했으면 지금쯤 청와대와 국회가 이전해 안착했을 거다. 2019년 말 기준 수도권 인구가 사상 처음 전국의 50%를 초과했는데 세종시라도 안 만들었으면 그 전에 50%를 넘었을 거다. 과밀 억제 타이밍을 놓쳤지만, 지금이라도 가면 다행이다."  
 -부동산 가격 잡겠다고 '천년대계'로 추진할 수도 이전을 불쑥 꺼냈다.
 "그런 측면에서 여당의 자세는 온당하지 않다. 행정수도의 주된 목적은 국토의 균형 발전과 수도권 과밀 억제다. 부차적 목적은 수도권 과밀 분산에 따른 부동산 억제 효과다. 부차적 목적을 앞세워 떠드니 야당과 국민 일부가 반발하는 거다. 노무현 대통령은 균형 발전을 앞세웠고 문 대통령은 부차적인 부동산 안정을 강조한다."  
 -수도 서울의 위상이 추락하고 국가 경쟁력이 훼손될 우려는.
 "서울에서 행정수도 기능이 빠져나가면 단기적으로 수도권 공동화가 생길 수 있다. 서울이 폭삭 망하면 한국경제가 망할 수도 있다. 수도 이전으로 서울은 경쟁력이 떨어지고 지방은 높아지더라도 국가 전체 평균치가 낮아지는 하향 평준화를 막아야 한다. 이런 부작용 예방책도 내놔야 한다. 이런 내 지적에 노무현 대통령도 공감했다. 쇠뿔을 이쁘게 만들려다 소를 잡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은 피해야 한다."
 -진보 정부만 집권하면 집값이 폭등하는 이유는.  
 "정책이 미숙했고 수단을 잘 못 썼다. 이 정부는 멀리 안 보고 단기 효과가 나는 정책만 찾았다. 백년대계를 내다보지 않으니 악순환이 반복된다. 정부가 조세와 법률로 어설프게 시장을 건드려서 악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집값을 못 잡은 무능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바꾸지 않은 인사는 잘못이다. "
 -국토·도시계획 전문가로서 부동산 해법은.
 "첫째는 수도권 과밀에서 문제가 생기니 사람과 기능을 분산시켜야 한다. 둘째는 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해 공급을 늘려야 한다. 정부는 계획을 잘 수립하되 시장에 직접 개입하면 안 된다. 더 나가면 사회주의다. 개인적으로는 토지공개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한 걸음 더 나가면 사회주의자가 되니까 겁이 나서 주장하지 않는다. 이 정부가 사회주의로 가지는 않을 거라 믿는다."
 이성계 "개경 토호세력 탓 정치 힘들다"
 노무현 "서울 토호세력 국가발전 저해"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세종시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 가운데는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한민족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역대 왕조에서 천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고려 때는 신흥 관료 세력의 중심인물이던 승려 묘청이 서경(평양) 천도론으로 왕실과 기존 문벌 귀족에 반기를 들었으나 실패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1392년 개경에서 즉위하자 개경 토호(土豪)세력 때문에 정치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1394년 한양(서울)으로 천도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서울 인구가 342만명이던 1964년 공식적으로 서울 인구 억제를 선언했다. 1966년 이호철은 소설『서울은 만원이다』를 발간했다.
 세종시 기록에 따르면 행정수도 아이디어는 1971년 4월 당시 김대중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대전을 행정수도로 정하겠다"고 공약하면서 처음 제기했다. 이 공약을 1977년 2월 임시행정수도 건설 계획으로 만든 대통령이 박정희였다.  
 김안제 원장은 당시 작업에 참여한 인연도 있다. 그는 "그때 만든 '백지계획'은 1980년 신군부와 미국 측 압력으로 백지화됐으나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부활했다"고 전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천도에는 기득권 세력과 신흥 세력의 주도권 쟁탈전이라는 정치학이 엿보인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서울은 토호세력들이 정치·경제 권력을 장악해 국가 발전에 저해된다'고 말하며 수도 이전 의지를 드러냈다. 실제로 반대파들은 위헌 소송을 제기하며 강하게 물고 늘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행정·입법·사법부와 지방 권력까지 장악해 사실상 주류 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나.
 "여론은 변덕이 심하다. 한번 밀어주다가 마음에 안 들면 바꿔버린다. 여당은 4·15 총선 승리 이후 2022년 대선 승리까지 내다보고 수도 이전을 미리 추진하는 것 같다. 수도 이전으로 주류 세력 교체의 화룡점정(畵龍點睛·용 그림에서 마지막에 눈동자를 그려넣다. '일을 완벽하게 끝낸다'는 뜻으로 쓰임)을 겨냥한 포석일 수 있다. 특히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세종시를 만들었고 거기서 국회의원 하고 실제 살고 있어서 그런지 수도 이전에 애착이 강하다."    
 -통일되면 또 수도를 옮겨야 할 텐데.
 "행정수도는 통일 이전의 임시수도 성격이다. 남한 주도로 통일되면 서울을 통일수도로 하고 세종시와 평양은 준(準)수도 역할을 줄 수 있다. 대화를 통한 통일이 될 경우 국호·국가·국화 등 정할 게 많아 머리가 아플 거다. 통일수도는 세종과 평양의 중간 거리인 파주 교하(交河) 일대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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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시 사람들 "행정수도 세종, 개헌으로 완성해야"

이춘희 세종시장은 청와대와 국회 이전 후보지를 이미 마련해 놓았다며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장세정 기자

세종 총리공관(왼쪽) 뒷쪽에는 청와대 후보지, 오른쪽에는 국회 후보지가 공터로 남아 있다. 장세정 기자

 여당의 행정수도 논란 재점화 이후 국민 여론은 찬반으로 쫙 갈렸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응답자의 49%는 수도 서울 유지를 원했지만, 42%는 세종시 이전을 선호했다. 국회 이전에 대해서는 찬성 47%, 반대 39%였다. 청와대 이전에는 반대가 48%로 찬성(38%)보다 많았다.  
 행정수도 이전론은 즉각 부동산 시장을 자극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 발언 이후 불과 1주일 만에 세종시 집값은 2012년 세종시 출범 이후 가장 많은 3%가 올랐다. 전국 평균의 23배다. 전셋값도 1주일새 2% 이상 폭등했다.  
 지난달 30일 세종시에서 만난 부동산 중개소 관계자는 "힘센 거대 여당은 수도 이전은 물론이고 무슨 일이든 못할 게 없다. 행정수도를 이전하면 지금 8억~8억5000만원 하는 84㎡ 아파트가 5년 뒤 20억까지 뛴다"고 장담했다.
 세종시 청사 입구에는 '시민주권 특별자치시 행정수도 세종'이라고 내걸었고 이춘희 세종시장 집무실에는 '행정수도 세종 개헌으로 완성'이라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지금 세종시 분위기는 행정수도가 이미 옮겨온 듯했다.
 이춘희 시장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2004년에는 국민적 공감대가 부족해서 위헌 결정이 났다면 이제는 개헌해서라도 결론을 낼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청와대(25만㎡)보다 작지만 세종 총리공관 뒤에 세종 청와대 부지 15만㎡가 확보돼 있다. 세종시 중앙공원 북쪽에 마련한 국회 이전 후보지 50만㎡(여의도 국회 부지는 33만㎡)에 '국회 타운'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시장은 "지금은 국회와 정부가 멀리 떨어져 국가 차원에서 비효율이 크다. 정부와 국회가 걸어서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일하는 공간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정수도 이전론이 다시 나온 상황에서 세종시 청사 입구에는 '행정수도 세종'이 내걸려 있다. 장세정 기자

여당이 행정수도 이전 카드를 다시 꺼내자 세종시 집값은 1주일새 3%나 폭등했다. 장세정 기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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