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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의료 사회주의 김용익 사단, 그 중 코로나 실세는 靑이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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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와 김용익 당시 국회의원.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은 지난 대선에서도 '문재인 케어' 등 대선 공약 수립에 깊이 관여한 대표적 의료계 진보 인사다. [중앙포토]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와 김용익 당시 국회의원.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은 지난 대선에서도 '문재인 케어' 등 대선 공약 수립에 깊이 관여한 대표적 의료계 진보 인사다. [중앙포토]

대한민국의 의료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국민의 보건·위생 의식도 중국인을 능가한다. 하지만 지금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중국과 거꾸로 1, 2위를 다투는 수준으로 추락했다. 미국을 배워야 할 한국이 중국과 '운명공동체' 운운하다 하향 평준화를 초래해 국민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줬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14억 중국에 이웃하고 있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무풍지대가 되기는 어려워도, 이 지경까지 재앙을 키운 배경에는 사태 초기에 방심하고 오판한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결정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월 24일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오판하도록 자문한 비선 전문가들이 있다. 이들이 지난 한 달간 정부 방역 실패의 단초를 제공한 인사들이다. 지금이라도 자문 그룹을 교체하라"고 촉구했다. 최순실과 십상시(十常侍)가 득세했던 박근혜 정부 시절도 아닌데 비선 실세란 말이 왜 또 나올까.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최근까지 중국 여행자 입국 제한을 통한 바이러스 유입 차단 필요성을 일곱 차례나 정부에 강력히 건의하고 촉구했으나 묵살당한 최대집(48) 의사협회 회장을 만나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문재인 정부 '코로나 방역 비선' 있나? #대통령, 정치적 지지그룹에 의존 #김용익 건보 이사장이 진보 핵심 #이진석 실장은 김용익의 제자 #"이진석, 이재갑·엄중식 자문 받아" #"코드 맞는 내편 전문가 의견만 들어" #친중 성향 많아 입국 금지 소극적 #코로나 종식 이후 책임 소재 가려야

코로나 대응 오판 과정에 '비선' 역할 있었나  
 -왜 일곱번이나 정부에 퇴짜 맞았나.

 "협회는 1월 26일 입국 제한을 위한 모든 행정적인 준비를 하라고 정부에 제안했다. 그런데 여당 대변인이 '의협은 정치적'이라고 프레임을 걸었다. 의사 13만명이 가입한 의사협회는 그렇게 만만한 조직이 아니다. 사스·신종플루·메르스 등 감염병 위기 상황을 현장에서 경험해 노하우가 많다. 감염병학회 등 전문 학회들이 의사협회 산하단체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우스운 소리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도대체 어떤 전문가들의 말을 들었나.
 "정부가 중국으로부터의 입국 제한을 하지 않은 결정, 확진자가 나오지 않자 당·정이 일제히 낙관론을 펼친 것, 심각 단계로의 격상을 조기에 하지 않은 결정, 2월 19일부터 시작된 폭발적인 환자 증가세를 특정 지역 및 종교와 연관된 것으로 판단했을 때에는 거기에 대한 근거를 제공한 전문가들이 있을 거다. 중요한 시기마다 언론을 통해 정부와 유사한 주장을 편 전문가들이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1월 28일 코로나19 감염증 대응 의료기관인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해 정기현 원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 정 원장은 지난 대선 때 문 대통령을 도운 '의료계 숨은 실세'로 불린다. [사진 청와대]〈br〉

문재인 대통령이 1월 28일 코로나19 감염증 대응 의료기관인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해 정기현 원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 정 원장은 지난 대선 때 문 대통령을 도운 '의료계 숨은 실세'로 불린다. [사진 청와대]〈br〉

 -구체적으로 누가 대통령의 귀를 붙잡고 비선 역할을 했나.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은 대통령에 직보가 가능한 인물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친하다고 들었다. 이 교수의 의견이 이 실장을 통해 대통령에게 전달됐을 수도 있다."
 이와 관련, 익명을 원한 의료계 소식통은 "서울대 교수 출신인 김용익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정점으로 한 '의료 사회주의자'들이 대통령 주변에 포진해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료인은 "이진석 실장이 비선 라인을 주도한 핵심 실세"라며 "이 실장은 고려대 의대 동문인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 등의 자문을 많이 듣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그는 "2월 2일 대통령 주재 첫 청와대 자문회의에는 백경란 감염학회 이사장, 오명돈 서울대 의대 교수(전 감염학회 이사장) 등 A급 감염병 전문가들은 초청도 받지 못해 왕따당했다"고 전했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출신인 김용익(68) 이사장은 의료계의 대표적 진보 성향의 학자다.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 민주연구원 원장을 역임하고 19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을 지냈다. 참여연대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서 활동한 그는 공공의료 확대를 주장해온 핵심 이론가로 진보 진영에서 영향력이 막강하다.

이진석(왼쪽)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은 의사 출신으로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큰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섣부른 낙관론에 빠져 코로나 대응에 실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진석(왼쪽)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은 의사 출신으로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큰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섣부른 낙관론에 빠져 코로나 대응에 실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이진석(49) 실장은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에 진학하면서 김용익 이사장의 제자가 됐다. 대선 캠프에서 김용익 이사장과 함께 '문재인 케어' 등 보건의료 공약의 밑그림을 그렸다. 감염의학이 아닌 의료정책 전공자인 그는 코로나19 일일 상황 점검 회의에서 청와대 참모들에게 "나는 의사 장롱면허 소지자"라고 했다는 전언이다. 이 실장은 문 대통령의 30년 친구인 송철호 울산시장 선거 과정에서 공공병원 공약에 개입한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언론에 자주 등장해온 이재갑(46) 교수는 이진석 실장의 고려대 의대 후배다. 이 교수는 1월 28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에 출연했다. 당시엔 중국인 여행자의 입국을 한시적으로 금지하자는 국민 청원 동의가 56만명을 넘은 민감한 시점이었다. 이 교수는 당시 '입국을 금지하면 밀입국이 늘어날 것이기에 입국 금지의 실익이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정부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 교수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월 17일 주최한 자문특보단 간담회에도 엄중식 교수와 함께 참석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이진석 실장과 대학 선후배 관계지만 연락을 안한다"고 해명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의 외곽 지지조직인 더불어포럼이 창립됐다.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은 2012년과 2017년 대선에서 문 후보의 공공의료정책 공약 설계에 참여했다. [중앙포토]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의 외곽 지지조직인 더불어포럼이 창립됐다.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은 2012년과 2017년 대선에서 문 후보의 공공의료정책 공약 설계에 참여했다. [중앙포토]

 박 장관은 2012년 문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담쟁이 포럼’ 발기인으로 참여해 복지공약을 다듬었다. 그는 코로나19 확산 과정에서 '중국인보다 우리 국민 책임이 크다'는 취지의 발언 때문에 야당의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이낙연 전 총리는 박 장관을 일 잘하는 장관으로 꼽았지만, 선심성 복지 예산을 잘 뿌리는 일과 코로나 대응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A급 전문가들은 대통령 간담회에 왕따"
 전북대 의대를 졸업한 정기현(64) 중앙의료원장은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에서 전임의를 마쳐 '김용익 사단'으로 분류된다. 2012년 대선 때부터 문재인 후보의 정책을 조언했고, 2017년 1월 문재인 후보 지지 모임인 ‘더불어 포럼’ 창립 당시 공동대표 23인에 이름을 올렸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서 전남 순천의 중소병원인 현대여성아동병원 원장(내일 의료재단 이사장)으로 일하다 2018년 1월 국가중추 의료기관의 수장으로 임명됐다. 정 원장은 코로나 관련 역할에 대해 "대선 때 대통령을 도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에 코로나 관련 별도 의견을 내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신종플루 당시 질병관리본부장을 역임한 이종구(63) 서울대 의대 교수도 2월 2일 대통령 간담회에 참석했지만 낙관적 분위기가 압도했다고 한다. 이 교수는 공공의료 분야에서 활동하며 이진석 실장과 친분이 두텁다는 후문이다.
 관련 당사자들의 해명과 반론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겼지만 대부분 응답하지 않았다. 박도준 서울대 의대 교수(전 국립보건연구원장)는 "과학은 과학으로 풀어야 하는데 코로나 사태 와중에 문재인 정부는 과학을 정치로 풀었다"고 비판했다. 의료계 소식통은 "문 대통령이 코드가 맞는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을 듣고 편향된 정책 결정을 하는 바람에 국민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물론 여당 인사들은 책임 전가하기에 급급하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대목이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거의 한달 동안 혼자 동분서주했다. 정 본부장이 고생한 배경에는 질본의 인사권과 예산권을 쥔 보건복지부의 견제가 상당히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거의 한달 동안 혼자 동분서주했다. 정 본부장이 고생한 배경에는 질본의 인사권과 예산권을 쥔 보건복지부의 견제가 상당히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정은경 본부장 혹사당한 배경에는 복지부의 견제도 작용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의사협회와 의학회는 『메르스 백서』를 만들었다. 보건복지부도 별도로 백서를 발간했다. 많은 대안과 개선책이 제시됐지만 제대로 집행된 것은 거의 없다. 국민 희생만 컸지 사후에 시스템이 진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은경(55) 질병관리본부장이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혼자 동분서주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여기에는 정 본부장을 둘러싼 시스템이 제대로 뒷받침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 고위 관료들의 질본 견제도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사스(SARS)를 계기로 질본을 만들었고, 박근혜 정부는 메르스(MERS)를 계기로 질본을 차관급으로 격상시켰다. 하지만 정 본부장에게는 5급 이상 간부의 인사권도 없고, 예산권도 없다. 복지부가 모두 쥐고 흔든다. 질본에는 1급 자리도 없고, 국장급은 대부분 복지부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본부장 밑에 있는 센터장들이 해야 할 일을 한국에서는 정 본부장이 도맡아 하다 보니 혹사당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박도준 서울대 의대 교수는 "행시 출신 간부들은 대체로 감염병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 전염병이 확산하는 긴급 상황에서 대응 능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38명이 숨진 메르스 사태 이후 감사원 감사에서 행시 출신 공무원들은 대부분 빠지고 의사 출신들만 대거 징계를 받았다. 이런 식으로 하면 누가 사명감을 갖고 감염병 대응에 몸을 던지겠느냐"고 반문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018년 한 행사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박 장관은 코로나19 확산 책임을 우리 국민에 돌리는 듯한 발언으로 장관직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018년 한 행사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박 장관은 코로나19 확산 책임을 우리 국민에 돌리는 듯한 발언으로 장관직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질본 본부장이 지자체 공무원에 대한 영향력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구조다. 보건소는 각 지자체 소속이고, 각 지자체의 방역담당 공무원도 지자체 소속이라 질본 본부장의 명령이 통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전국적으로 조직적인 대응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의료계 소식통에 따르면 정 본부장은 중국 여행자 입국 제한 필요성을 초기부터 주장했으나 박능후 장관을 비롯해 이 정부에서 승승장구한 복지부 실세 간부들이 청와대 의중에 따라 뭉갰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대집 의사협회장은 "보건복지부에서 보건부를 분리 독립시키고 보건부 밑에 인사와 예산 권한을 갖는 '질병 관리청'으로 승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대집 의사협회 회장은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지 못한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비판했다.

최대집 의사협회 회장은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지 못한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비판했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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