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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석달 전, 대구 클럽 20대 3명 집단감염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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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대구 시민들의 코로나19 사투가 18일이면 3개월을 맞는다. 확진자가 크게 줄면서 시내 동성로는 차츰 활기를 되찾고 있다(가운데). 그 뒤에는 묵묵히 헌신한 의료진이 있었다. 사진 왼쪽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차순도 메디시티 대구협의회장(대구의료관광진흥원장),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 정호영 경북대병원장, 조치흠 계명대 동산병원장, 서영성 대구동산병원장, 조용일 대구시약사회장,최석진 대구시간호사회장, 민복기 대구시의사회 코로나19 대책본부장, 이경수 영남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이재태 경북대 의전원 교수. 장세정 기자

대구 시민들의 코로나19 사투가 18일이면 3개월을 맞는다. 확진자가 크게 줄면서 시내 동성로는 차츰 활기를 되찾고 있다(가운데). 그 뒤에는 묵묵히 헌신한 의료진이 있었다. 사진 왼쪽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차순도 메디시티 대구협의회장(대구의료관광진흥원장),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 정호영 경북대병원장, 조치흠 계명대 동산병원장, 서영성 대구동산병원장, 조용일 대구시약사회장,최석진 대구시간호사회장, 민복기 대구시의사회 코로나19 대책본부장, 이경수 영남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이재태 경북대 의전원 교수. 장세정 기자

신천지발 31번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2월 18일을 기준으로 치면 대구 시민들의 사투는 18일 꼬박 3개월이 된다. 그 사이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지난 14일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가는 길에 기자는 상황의 역전을 절감했다. 황금연휴 기간에 서울 이태원 클럽에서 집단 감염이 터지고 2, 3, 4차 감염으로 번지는 와중이라 서울보다 대구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1박 2일간 대구에서 취재 중에 현지 소식통을 통해 지역거점 D병원 입원 치료 중인 확진자 A씨와 연락이 닿았다. 20대 초반인 그를 인터뷰하던 도중에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알게 됐다. 이태원 클럽보다 약 3개월 전에 대구에서 클럽발 20대 집단감염이 있었다는 것이다.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코로나와 사투 3개월 맞은 대구 사람들] #동성로 클럽 방문한 뒤 3명 확진 #신천지 31번 확진일 이틀 전 시점 #20대 전파력 큰데 추적검사 '구멍' #31번 확진 나오자 신천지에 집중 #질본 "이태원 전엔 사례 보고 없어" #클럽 등 선제적,공격적 검사 필요 #초중고 등교수업 결정 신중해야

 -언제, 어디서 감염됐나.

"내가 걸렸을 때는 신천지 감염자(18일 확진) 뉴스가 뜨기 전이었다. 2월 16일(일요일) 밤 친구들과 동성로의 한 클럽에 가서 다음날 새벽 영업 끝날 때까지 놀았다. 17일에 몸에 열이 났지만, 집에서 대기하다 22일 병원에서 검사받았고 25일 확진됐다. 3월 2일 입원해 3월 11일 퇴원했다. 4월에 증상이 생겨 5월 3일 다시 입원해 치료받고 있다."
 -친구나 가족 등 주변에 감염된 사람이 있나.
"친구 3명과 같이 클럽에 갔는데 일찍 귀가한 한 명 빼고 모두 감염됐다. 감염된 친구 두 명 중 한명은 완치됐고, 다른 한 명은 아직도 치료 중이다. 나중에 엄마가 확진돼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역학조사를 받을 때 클럽에 다녀왔다고 알렸나.
"클럽에 갔다 왔다고 말했다. '누구누구 같이 갔느냐'고 묻길래 친구 3명이랑 다녀왔다고 말했다. 당시 동성로 클럽에 최소 50명은 있었다. 대구에서 코로나19가 집단 발생하던 초기라 그런지 신천지에 대해서만 보도가 나왔다. 나는 신천지는 아니다."
 -서울 이태원 클럽에서 확진자가 쏟아졌다.
"클럽에 놀러 가는 것은 본인들 마음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좀 아닌 것 같다. 마스크를 써도 옮을 수 있으니 안 가는 게 맞다고 본다."
 A씨의 발언을 확인하기 위해 대구시 관계자에게 연락했더니 "모든 확진자는 보건소가 기초 역학 조사를 다 한다. 그런데 대구에서는 클럽발 확진자가 없었다"고 부인했다.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입구에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다채로운 응원 메시지가 전시돼 있다. 장세정 기자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입구에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다채로운 응원 메시지가 전시돼 있다. 장세정 기자

민간병원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은 코로나19가 터지자 병상 부족 사태를 풀기 위해 자발적으로 시민들에게 병상을 제공했다. 서영성 병원장이 의사들과 확진 환자 치료 대책 등을 논의하고 있다.

민간병원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은 코로나19가 터지자 병상 부족 사태를 풀기 위해 자발적으로 시민들에게 병상을 제공했다. 서영성 병원장이 의사들과 확진 환자 치료 대책 등을 논의하고 있다.

 다음날 이 관계자는 확진 받은 환자 중에 A씨가 있다고 알려왔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에는 신천지가 타깃(집중 검사) 집단이었다. 환자가 쏟아져 정신이 없었고 가장 큰 위험 집단인 신천지에 집중하느라 다른 확진자들의 동선을 다 챙길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태원 클럽처럼 집단감염이 발생하면 질병관리본부 소속 중앙역학조사관이 현지에 파견된다. 그렇다면 질본 측은 대구 중구 보건소를 통해 클럽발 감염자 발생 사실을 이미 파악하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고재영 질본 위기소통담당관은 "이태원 이전에 국내의 다른 지역에서 클럽발 확진자는 보고된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입대를 앞두고 부산의 클럽에 놀러 갔다가 4월 23일 확진된 대구 10대 B씨의 경우 클럽이 아닌 친구에게서 감염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부산 클럽에서도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질본은 발표했다.
 확진자 A씨가 대구 클럽에 갔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고 분명히 알렸는데도 3개월이 지나도록 질본은 "이태원 이전에는 클럽발 확진자가 없다"고 부인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사실관계를 정확히 조사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정부는 중국발 입국자를 차단하지 않아 바이러스의 국내 유입을 방치해 광범위한 지역사회 감염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다 이단으로 지목된 신천지 신도 집단에서 확진자가 쏟아지자 서울과 경기도까지 나서서 신천지 신도를 대상으로 공격적인 전수조사를 진행했다. 그 와중에 집단 감염 위험성이 높은 유흥시설인 클럽에서 확진자가 나왔는데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것은 그냥 넘기기 어려운 문제다.

 실제로 코로나19는 무증상 감염자 비율이 30%를 넘는다. 특히 2030 젊은이들은 증상 없이도 주변에 무섭게 퍼뜨린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1일 담화문에서 "분명히 예측 가능했고 예방할 수 있었던 일인만큼 (이태원 클럽발 집단 감염은) 방역 당국의 뼈아픈 실책"이라고 지적했다.
 이태원 같은 집단 감염이 터진 뒤에 법석을 떨 것이 아니라 선제적이고 공격적인 검사가 여전히 필요하다. 초·중·고교 등교 수업 등을 추진하기 전에 반드시 이런 사정을 두루 고려해 신중하고 면밀한 정책 결정을 해야 한다.

〈관계기사〉 'K-방역 신화' 쓴 생활치료센터 탄생 비화
 대구 확진자 쏟아지자 병실 없어 환자들 자택대기 중 사망
 병원 외부서 환자 진료하면 의료법 위반이라 "발만 동동"  
 이경수 영남대 교수,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에 'SOS' 
 이 실장 27일 오후 대구에 급파돼 권영진 대구시장 등 만나 
 대구 의사들 "사람 죽는다. 남은 시간 별로 없다" 이 실장에 호소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주재 28일 세종서 긴급 대책회의
 29일 대구서 하루 741명 확진자 쏟아지자 3월 2일 센터 개설
 모두 16곳 센터에서 3025명 치료해 절체절명의 위기 넘겨 
 "경증·중증 환자 분리 늦었으면 대구서만 700명 숨졌을 것"

대구 서문시장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방역 동참에 힘입어 코로나19의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대구 서문시장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방역 동참에 힘입어 코로나19의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대구시 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의료계 전문가들과 코로나19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권 시장은 "코로나19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절대 경각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시]

권영진 대구시장이 대구시 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의료계 전문가들과 코로나19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권 시장은 "코로나19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절대 경각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시]

 대구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7일 0시 기준으로 6870명(전국 1만1050명)이고, 사망자는 181명(전국 262명)이다. 그런데 대구의 의료인들은 "지난 2월 말 경증과 중증 환자 분리 결정이 2~3일만 늦었어도 치사율(2.3%)이 약 10%까지 치솟아 대구에서만 700명이 희생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천지발 확진자가 쏟아지던 2월 18일 이후 병상이 너무 부족해 하루 최대 2270명의 환자가 자택에 대기했다. 그중에 3명은 치료도 받지 못하고 숨지는 비극이 있었다. 사실상 의료 시스템의 붕괴 직전 상황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극적인 반전을 만들어낸 것은 '의료 메카'인 대구의 의료인들이었다.
 실제로 대구에서 31번 확진자가 나오자 메디시티대구협의회 소속 의사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민복기 대구시 의사회 코로나19 대책본부장은 "대구 의사들이 26일 중지를 모았고 이경수 영남대 예방의학교실 교수가 2월 27일 오전 의사 출신인 이진석 국정상황실에게 전화로 다급한 현장 상황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정호영 경북대병원장은 "당시 경증환자가 음압 병실을 차지해 병상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모두가 경증과 중증 환자를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증 환자를 병원 외부 시설에 수용하면 현행 의료법 위반이어서 누구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못했다"고 전했다. 현지의 한 소식통은 "특히 공무원들은 눈치 보기에 급급했고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국민 여론이 아직 형성 안 됐다"며 유보적이던 청와대는 2월 27일 오후 이진석 실장을 대구로 급파했다. 이 실장은 권영진 대구시장 등을 만나 확진자가 쏟아지는 다급한 현장 상황을 체크했다. 그날 밤 대구의 한 식당에서 정호영 경북대병원장,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 손진호 칠곡경북대병원장 등은 이진석 실장에게 "경증과 중증 환자를 시급히 분리하지 않으면 여러 사람이 죽는다. 2~3일 안에 반드시 해야 한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호소했다.

K방역의 핵심으로 손꼽히는 생활치료센터 아이디어는 대구의 의료진들이 처음 냈다. 하지만 병원 밖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행위는 의료법 위반이라 공무원들은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하지 않았다. 결국 의사 출신인 이진석(맨 오른쪽)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2월 27일 대구에 급파돼 의사들의 절박한 의견을 청취했고 그 직후 생활치료센터 설치 방침이 결정됐다고 한다. [청와대사진기자단]

K방역의 핵심으로 손꼽히는 생활치료센터 아이디어는 대구의 의료진들이 처음 냈다. 하지만 병원 밖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행위는 의료법 위반이라 공무원들은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하지 않았다. 결국 의사 출신인 이진석(맨 오른쪽)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2월 27일 대구에 급파돼 의사들의 절박한 의견을 청취했고 그 직후 생활치료센터 설치 방침이 결정됐다고 한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진식 실장은 조용히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모텔에서 숙박한 뒤 상경했다. 27일 밤 식당 회동은 대구의 긴박한 사정을 청와대에 각인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28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생활치료센터 설치에 관한 지침 개정 작업을 논의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정은경 질본 본부장도 참석했다.
 정호영 원장은 "생활치료센터 설치 방침을 3월 1일 새벽에 전화로 통보받았다"고 전했다. 대구에서 하루 확진자가 741명 발생한 최악의 날인 2월 29일 바로 하루 뒤였다. 3월 2일 교육부 산하 대구 중앙교육연수원에 첫 생활치료센터가 설치됐다. 이후 대구·경북 환자를 위해 모두 16곳에 센터가 설치돼 3025명을 치료했다.
 정호영 원장은 "기존 행정 절차를 다 밟았으면 몇 년이 걸렸을 것이고 그사이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는 2008년 대한민국 의료특별시 '메디시티 대구'를 선언한 대표적 의료 중심 도시다. 2009년 의사회·치과의사회·한의사회·간호사회·약사회, 경북대·계명대·영남대·대구가톨릭대 병원, 대구경북병원협회 및 대구시 등이 참여하는 메디시티대구협의회를 출범했다.
 차순도 메디시티대구협의회장(대구의료관광진흥원장)은 "2004년 KTX 개통으로 대구 환자를 서울의 빅5 대형병원에 빼앗긴다는 위기감에서 지역의 의료인들이 똘똘 뭉쳤다"며 "매월 1회 정기모임을 지속해온 것이 이번 코로나19 대응 때 큰 힘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앞에 '대구 경북은 그 빚을 희망의 빛으로 갚겠습니다'란 현수막이 내걸렸다.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앞에 '대구 경북은 그 빚을 희망의 빛으로 갚겠습니다'란 현수막이 내걸렸다.

 대구에서 만난 사람들은 미안함과 자부심이 공존하고 있었다. 대구 국채보상운동 기념관에 가보니 '대구 경북은 그 빚을 희망의 빛으로 갚겠습니다'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광주 시민들이 마스크와 손 소독제 4만개를 보내주셨고 감염병 전담 병원 병상도 내주셨다"며 고마워했다.
 우동기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전 대구교육감)은 "6·25전쟁 때처럼 대구가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지 않았으면 수도권으로 퍼져 대한민국이 더 큰 피해를 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태옥 국회의원은 "대구는 일제 시대에 국채보상운동을 벌였고 외환위기 때는 금 모으기 운동을 가장 먼저 시작했을 정도로 시민의식이 깨어 있다"고 말했다.
 생활치료센터 운영을 맡았던 이재태 경북대 의전원 교수는 대구 의료진들이 코로나19에 맞섰던 사투 경험담을 엮은 책『그곳에 희망을 심었네』(학이사)를 발간해 일어와 영어로 번역을 추진 중이다. 기억보다 강한 기록을 남긴 것이다.

우동기 대구 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전 대구교육감)은 "대구 시민들에게 '국난 극복 DNA'가 있다"고 역설했다. 장세정 기자

우동기 대구 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전 대구교육감)은 "대구 시민들에게 '국난 극복 DNA'가 있다"고 역설했다. 장세정 기자

대구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린 민주화운동 관련법 제,개정 간담회. 맨 왼쪽이 정태옥 의원.

대구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린 민주화운동 관련법 제,개정 간담회. 맨 왼쪽이 정태옥 의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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