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배달 앱 ‘배달의민족’의 독과점을 막겠다는 서울시와 경기도의 ‘공공 배달’이 ‘어부지리’ 논란에 직면했다. 운영 사업자에 배민보다 몸집이 큰 NHN이 연달아 선정되면서다. 지방 정부의 개입이 배달 시장의 경쟁을 촉진할지, 혹은 왜곡할지 주목된다.
무슨 일이야?
· 경기도 산하기관인 경기도주식회사는 공공배달앱 우선협상 대상자로 NHN 페이코 컨소시엄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관련 자료)
· NHN페이코는 서울시가 제로페이와 민간 배달업체를 결합해 내놓은 ‘제로배달유니온’에도 참여했다. 10개 참여사(리치빔, 만나플래닛, 먹깨비, 위주, 띵동 등) 중 가장 몸집이 크다.
이게 왜 중요해?
· NHN은 한게임·페이코·벅스뮤직 등 사업을 한다. 지난 2013년 네이버와 분할했다. 지난해 매출은 약 1조5000억원이다.
· 페이코는 네이버페이·삼성페이·카카오페이와 함께 국내 간편결제 4강이다(점유율 약 10%). 지난해 하반기부터 식당 주문결제 서비스도 한다. 이번 선정은 페이코가 시장 점유율을 높일 기회다.
· 경기도주식회사는 “페이코 컨소시엄의 지역화폐 기반 결제,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전략적 투자 등이 사업 방향과 맞았다”고 밝혔다.
· 유효상 숭실대 중소기업대학원 교수는 “독과점 규제는 시장 실패를 막기 위함인데,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경기도 ‘공공배달’은
· 선정된 ‘NHN페이코 컨소시엄’은 NHN과 배달중개사(먹깨비), 배달대행사(생각대로, 바로고), PG사(포스뱅크), 가맹점(GS리테일 등)으로 구성됐다. NHN 측은 “기존 음식배달 영업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소비자가 사용하는 최종 앱인 ‘배민’만 ‘페이코’로 바꾼 격이다.
· 경기도 내 1~2개 시군구를 시범지역으로 선정해 올 가을에 시작한다. 배달 수수료는 낮게 책정되고, 지역화폐 할인과 홍보ㆍ마케팅 등을 선정된 지자체가 맡는다.
· 중앙일보가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시범사업에 선정되길 원하는 지자체들은 ‘가맹점 모집에 공공근로 인력을 지원하겠다’, ‘추가 예산을 편성해 할인 쿠폰을 제공하겠다’는 등을 경기도주식회사에 제안했다.
서울시 ‘제로배달’은
· 서울사랑상품권(제로페이)은 지역 소상공 점포를 방문했을 때만 쓸 수 있다(상품권, 선불카드, QR코드 결제). 배민·쿠팡 같은 앱에선 못 쓴다. 그런데 ‘제로배달’ 참여 앱에는 이 제한을 풀어준다. 배달 수수료를 적게 받는 조건이다.
· 서울시는 경기도를 의식한 듯 ‘우리는 공공배달앱을 따로 만들거나 세금으로 수수료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보도 자료)
· 서울시 지원이 없는 건 아니다. 제로페이는 최대 15% 할인 판매하며(100만원 어치를 85만원에 구매), 차액은 세금으로 메운다. 영세 자영업자 매상을 올려주라는 취지라, 대형마트·백화점에선 못 쓴다. 그런데 이걸 페이코 앱에서도 쓸 수 있게 된 거다. 올해 발행된 제로페이 할인 충당에 서울시 예산 320억원이 편성됐다.
그 전엔 무슨 일이
· 지난 4월 1일 배민이 새로운 수수료 정책을 도입했다가 소상공인협회 등으로부터 ‘사실상 수수료 인상’이라고 지적받았다.
· 4월 4일 이재명 경기 지사가 “배민 독과점의 횡포”라며 경기도 공공앱 개발을 선언했다. 이후 배민은 공식 사과하고 정책을 철회했다. 이 지사는 “공공배달앱은 디지털 사회간접자본(SOC)”이라며 계속 추진했다(관련자료). 다른 지자체의 ‘공공 배달앱 개발’ 선언도 이어졌다.
· 6월 25일 국회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제로배달유니온’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기 참여한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배달앱 수수료를 지자체가 규제하고 지역화폐 결제를 허용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걸 알아야 해
· 지역화폐 사업은 지자체장의 의지가 중요하다. 7~10%의 할인 금액을 재정으로 계속 메워야 하기 때문. 2018년 출시한 제로페이는 이용이 부진했지만 박 전 시장의 의지가 강해 홍보 예산을 수십억 원 씩 썼다.
· ‘서울시 vs 경기도’ 배달 사업은 대권 주자인 두 지자체장의 정책 경쟁이기도 했다. 그런데 박 전 시장의 유고로 제로배달 사업의 앞날은 시계 제로가 됐다. 참여한 한 배달 사업자는 “우리도 혼란스럽다”고 했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