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13)
월대 엄지기둥의 서수 조각들
근정전 월대의 돌조각들은 대체로 그 표정들이 대충 무서운 척하고 있다. 대충이다. 아주 살벌하게 무서운 인상은 이곳에서 찾아볼 수 없다. 처음 경복궁 영제교를 건너면서 만난 천록의 짓궂은 표정을 기억한다면 당시 조선의 석공은 저런 표정으로 한국인의 심성을 그려냈다는 공통점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궁궐이라는 근엄한 현장에서 이런 자못 우스꽝스러운 표정이라니. 이건 순전히 조각하는 사람의 심성이 그렇게 생겼으니 제 생긴 대로 저 같은 표정의 작품을 내놓았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자못 예술가란 자기 성향대로 저 닮은 작업을 하는 게 그들의 개성이다. 그렇게 생긴 사람이 또 그렇게 생긴 돌을 쪼았으니 이런 결과는 당연한 이치이다.
중국이나 일본 궁궐의 서수 조각들을 보면 그 살벌한 인상의 사실성에 깜짝 놀라게 된다. 실은 그렇게 무서운 인상이라야 궁궐에 접근하는 자에게 위엄을 갖추고 겁을 줄 수 있는 것이다. 화강암은 단단하고 거친 돌이다. 이런 돌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면 돌의 성향을 거스르게 된다. 우리 조선의 옛 석공은 돌의 성질을 알고 그 돌이 만들어 내고 싶은 인상을 허락했을 것이다. 바로 이 땅에서 출토되는 가장 흔한 돌 화강암이 지니는 투박하고 거칠지만 따뜻한 돌의 성질을 이끌어낸 조선 석공들의 뛰어난 솜씨를 근정전 석수 조각이 보여주고 있다.
재미있는 소방기구 드므
하월대 모퉁이에 있는 무쇠로 만든 큰 물동이는 드므라고 부른다. 지금은 그 큰 그릇에 쓰레기를 버리는 관람객들 때문에 투명 뚜껑을 씌우고 드므의 용도를 설명한 팻말을 올려놓았다. 원래 궁궐 전각의 드므는 불이 났을 때 불을 끄는 소방수를 채워놓았던 소방기구이다. 조선의 전통 건축 재료는 기와와 주춧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무를 썼고 목조건축이 화재에 취약한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더구나 회랑이나 행각으로 연결된 궁궐의 건축은 더더욱 화재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옛사람들은 화마(火魔)가 하늘로부터 온다고 믿었는데 집을 향해 오던 화마가 드므에 담긴 물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보고 그 흉측한 모양새에 놀라 달아나 주기를 바랐던 벽사의 의미도 있다. 겨울철에 물이 얼지 않도록 불을 땠던 흔적으로 드므를 받치고 있는 돌이 검게 그을렸다. 그리고 동지에는 드므에 팥죽을 쑤어 나누어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제는 겨울에 물을 담아 놓으면 쇠그릇이 얼어서 터질 것을 염려해서 물도 채워놓지 않으니 소중한 우리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119 신고가 제일 빠를 듯싶다.
근정전 들여다보기
근정전 건물은 중층 건물로 밖에서 보면 마치 2층집처럼 보인다. 네 귀퉁이를 고주(내진주)가 받치고 있는 높은 천정의 통층(通層) 구조이고 바닥에는 전돌이 깔렸다. 이 건물이 일상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행사를 위한 특별한 공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쪽을 들여다보면 높이 설치된 광창이 빛을 끌어들이고 있어 근정전 내부가 생각보다 아주 어둡지는 않다. 근정전 천장 한복판에는 여의주를 희롱하는 쌍룡이 그 웅혼한 기상을 드러내고 있다. 금박을 입힌 목조각으로 발톱이 일곱 개인 칠조룡(七爪龍)은 근정전이 무소불위의 지엄한 왕이 주관하는 공간임을 말해 주고 있다. 용은 왕의 지위를 상징하는 최고의 덕목을 고루 갖춘 존재이다. 용은 늘 엄하면서도 너그럽다.
우리가 그의 역린(逆鱗)만 거스르지 않는다면. 전설에 용은 모두 81개의 비늘을 몸에 지니고 있는데 그 외에 턱밑에 거꾸로 나 있는 비늘 한 개를 역린이라고 부른다. 용의 역린을 잘못 건드리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조선 왕조 내내 선비의 곧은 심성과 기개로 그의 역린을 거슬려 차라리 죽음을 택했던 푸른 정신은 얼마나 많은 붉은 피로 이 땅의 기운을 살려냈던가. 사육신이 그러했으며 조광조 또한 그러했다. 근정전의 용은 일곱 개의 발톱을 가진 칠조룡이다. 근정전의 어좌 위에는 불상의 머리 위에 설치된 것과 비슷한 구조물이 있는데 이를 닫집이라고 부른다. 왕권의 존엄을 나타내기 위해 설치하는데 닫집의 헛기둥에는 연봉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 이는 연봉이 물에 잠긴 형상으로 화재를 예방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다. 닫집의 보개 천장에도 한 쌍의 황룡이 조각되어 있다.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
즉 일월오악도는 한국 전래의 오악신앙(산신신앙)에 그 배경을 두고 있으며 왕의 절대적 권위에 대한 칭송과 왕조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하는 그림이다. 일월오악도에서 왕을 달, 해 산, 소나무에 비유하여 변함이 없으며, 이지러짐이 없고 영원무궁토록 왕조가 번창할 것을 기원하고 있다. 왕권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병은 법전의 어좌 뒤에만 설치되는 것이 아니고 왕의 집무실인 편전이나 창덕궁의 신선원전 감실 등 왕을 모시는 전각에 늘 설치되었고 왕이 궁 밖으로 거둥(행차) 할 때도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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