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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터 '북고남저'…궁궐 지을 때 왜 땅 고르지 않았을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11)

조선 왕조는 유교를 국가 경영의 기본으로 삼았다. 경복궁의 공간 배치에서 조선 왕조의 문치를 숭상했던 유교적 이념이 반영된 경복궁 건축의 여러 가지 요소를 확인해 볼 수 있다. 경복궁의 중심축은 우선 음양오행에서 양과 음의 개념으로 공간을 동서로 구분하고 있다. 동쪽은 양이고 서쪽은 음이다. 양과 음의 개념에서 양은 동쪽, 하늘, 해, 봄, 홀수, 활기참, 밝음이며 음은 서쪽, 땅, 달, 가을, 짝수, 조용함, 어두움으로 양을 음보다 상위 개념으로 배치했다. 따라서 근정전의 조정마당 품계석의 배치에서도 조선 왕조가 문치를 숭상한 유교적 이념을 엿볼 수 있다. 문신의 품계석은 양의 개념인 동쪽에 두고 무신은 음의 개념인 서쪽에 두어 문을 더 숭상했고 문신은 광화문의 동쪽 협문으로 무신은 서쪽 문으로 드나들었다.

경복궁의 남북을 잇는 수직의 중심축은 계속되는 음양오행의 원리를 건축의 기본개념으로 우리의 발길을 이끌어나간다. 건물 배치에 있어서 수직의 중심축으로 동서를 구분해 동쪽에 건춘문, 일화문, 융문루, 만춘전, 연생전, 동궁이 있고 서쪽에 영추문, 월화문, 융무루, 천추전, 경성전, 태안전(제례공간)이 있다. 광화문은 양이고 북문인 신무문은 음의 개념으로 해석된다. 향원지의 연지는 네모이고 그 가운데 섬은 둥글다. 도교사상에 의한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이론이며 동시에 양과 음의 조화를 추구하는 개념이다.

문신이 드나들었다는 일화문. 해와 달이 왕의 공간으로 통하는 문으로 구성된 근정전은 동양적 자연사상을 품은 신성한 공간으로의 의미가 크다. 일제강점기 촬영.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문신이 드나들었다는 일화문. 해와 달이 왕의 공간으로 통하는 문으로 구성된 근정전은 동양적 자연사상을 품은 신성한 공간으로의 의미가 크다. 일제강점기 촬영.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일화문(日華門)과 월화문(月華門)
이제 경복궁의 법전 근정전으로 들어가 보자. 근정문 앞 한가운데 서면 높은 단 위에 우뚝 선 근정전이 마주 보인다. 근정문은 근정전으로 들어가는 큰문이고 그 옆 동쪽과 서쪽에 난 작은 문으로 일화문과 월화문이 있다. 이는 말 그대로 동쪽의 태양과 서쪽의 달이 상징하는 음양오행의 개념이다. 그런데 양과 음의 개념도 중요하지만 해와 달이 왕의 공간으로 통하는 문으로 구성된 근정전은 동양적 자연사상을 품은 신성한 공간으로의 의미가 더 크다. 세종 때는 동서 행각의 융문루와 융무루 남쪽으로 각각 일화문과 월화문이 있었는데 일화문으로 문신이, 월화문으로 무신이 드나들었다고 적고 있다. 대원군에 의해 복원되면서 두 문의 위치가 달라지고 크기도 작아졌다.

근정전(勤政殿)은 정도전이 지어 올린 이름으로 임금의 부지런한 자세가 정치의 으뜸이라는 뜻이다. 정도전은 경복궁의 법전을 근정전이라 이름 지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천하의 일들이 부지런함과 게으름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다. 더구나 정사를 돌봄에 있어 임금이 하루도 부지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임금이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만 알 뿐, 왜 부지런해야 하는가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끝내 그 부지런함은 번거롭고 지루할 뿐이다. 선유들이 말하기를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낮에는 어진 이에게 묻고, 저녁에는 명령할 일들을 생각하고, 밤이 되어 편안히 쉰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인군의 부지런함이다. 또 말하기를 “어진 이를 구하는데 부지런하고, 어진 이에게 정사를 맡기는데 편안히 한다”고 했다. 즉 임금의 부지런하고 바른 자세가 치자로서의 으뜸이라는 뜻으로 정도전은 태조를 도와 조선을 개국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나, 정도전이 꿈꾸었던 조선은 어진 신하가 모여 나랏일을 바르게 이끌어 백성이 살맛 나게 하는 신권 정치의 나라였다.

경복궁 근정전 좌측 행각 외부의 모습. 일제강점기 촬영.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경복궁 근정전 좌측 행각 외부의 모습. 일제강점기 촬영.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근정전은 경복궁의 법전으로 마당은 국가의 공식행사인 대례(大禮)가 치러졌다. 왕의 즉위식, 신년하례, 세자책봉례, 가례(嘉禮), 외국사신 접견, 조례를 하던 곳이다. 국가의례와 관련된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 황제에 대한 망궐례나 중국 사신이 가져온 칙서를 받는 의식과 왕이 만조백관으로부터 조하를 받는 의식이었다. 빈례의 경우 중국의 사신은 태평관으로 왕이 직접 나가 칙사를 맞이하지만 일본, 유구 등 이웃 나라 사신은 법전에서 맞이했다. 이 밖에 왕세자의 관례나 왕비를 맞는 의식, 왕세자빈을 맞는 의식 또는 고급관리 임용식이 법전에서 행해졌다. 또한 법전에서는 종묘대제 같은 큰 제사나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치르는 하례를 거행하고 교서를 반포하거나, 문무과의 전시(殿試: 문과의 복시에서 선발된 33명과 무과의 복시에서 선발된 28명을 궐내에 모아 왕이 친히 보이던 과거)를 치르고 급제자 명단을 게시하는 의식도 거행하였다. 이 마당에서는 또 노인들을 격려하는 기로연(耆老宴)도 치러졌다.

전체적으로 건축적인 구성을 볼 때 근정전은 동서남북으로 행각에 둘러싸여 있다. 북행각을 제외하고 모두 건물 보칸 중앙에 기둥이 있는 복랑 형식이다. 고종 때에는 가운데 행각을 막아 행각시설을 두어 물품을 보관하기도 했다. 그 예로 가운데 기둥에는 예전에 문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있다. 행각의 주추가 바깥 것은 둥근데 안쪽 것은 네모로 기둥을 막아 문을 달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동행각에는 융문루(隆文樓), 서행각에는 융무루(隆武樓)를 두어서 국정운영에서 문무의 조화와 중요성을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융문루에는 법전을 비롯한 서적을 보관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근정전에서 행사가 있을 때 사헌부의 관리가 융문루와 융무루에 올라가 조회에 참석한 관리의 품행을 감독했다고 한다. 사헌부는 관리의 언론, 풍속, 교정, 백관에 대한 규찰 및 탄핵을 담당하던 부서다. 두 다락집의 위치가 백관이 도열한 중간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융문루는 왕의 어마가 서는 기준점이었다고 한다.

근정전 행각의 지붕이 전체적으로 두 번 낮아지는 꺾임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지세의 고저에 따른 지붕의 물매처리를 한 것이다. 1989년 이전 촬영.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근정전 행각의 지붕이 전체적으로 두 번 낮아지는 꺾임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지세의 고저에 따른 지붕의 물매처리를 한 것이다. 1989년 이전 촬영.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근정전 지붕선 북쪽, 남쪽보다 1m 높아 
근정전 월대에서 동쪽과 서쪽의 양 행각을 바라볼 때 행각 지붕의 꺾임을 눈여겨보면 흥미 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지붕이 전체적으로 두 번 낮아지는 꺾임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지세의 고저에 따른 지붕의 물매처리를 한 것이다. 이 지붕선의 꺾임은 바로 근정전 북쪽 행각에서 남쪽행각에 이르는 지면의 고저에 대한 차이를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행각의 기단을 보면 한단이 낮아질 때마다 대략 50cm 정도 차이가 나는데 기단이 두 번 꺾였으므로 근정전 북쪽과 남쪽 끝의 높이는 1m 이상 차이가 난다. 근정전을 지을 때 1m 이상의 남북 지면 차이를 평평하게 고르지 않고 집을 지었다는 이야기다. 서양적 사고로 볼 때는 경사진 지면을 평평하게 하지 않고 집을 앉혔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이는 동서양의 자연관의 차이로 볼 수도 있다. 동양 사상에선 자연이 주는 조건을 그대로 이용하려 했고 집을 지을 터를 만들 때 깎아내어 고르게 하기보다는 흙을 부어 돋우는 것이 자연을 해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경복궁 터는 원래 뒤편의 백악에서 흘러나오는 산줄기가 이어지는 경사진 땅의 지세를 이용했기에 전체적으로 북쪽으로 갈수록 지면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런 자연조건도 근정전 마당에 서면 지면의 자연스러움 때문에 전혀 느끼지 못할 일이지만 완만하게 경사진 마당은 비 오는 날의 물 빠짐을 원활하게 하고 있다. 더구나 땅에서의 기단 처리뿐 아니라 지붕의 선을 중간에 끊어 땅의 흐름과 같이 연결하는 자연스러움을 행각지붕에서도 볼 수가 있다. 이러한 지붕선의 처리는 경사진 곳의 담장처리에도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자칫 밋밋해지기 쉬운 지루한 선에 변화를 주는 구성의 묘미이다.

조각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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