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위 다 바뀐 '미스터트롯'···최고 시청률 찍고 최대 오점 남겼다

중앙일보

입력 2020.03.15 17:39

수정 2020.03.1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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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미스터트롯’에서 최종 진에 오른 임영웅. [사진 TV조선]

“이제 대한민국 트롯의 역사는 ‘미스터트롯’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15일 배포한 보도자료 문구다. 이는 여러 의미를 지닌다. 12일 방송된 결승전에서 시청률 35.7%(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해 역대 예능 프로그램 2위에 올랐다. KBS2 ‘1박2일’ 2010년 3월 7일 방영분 39.3%(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잇는 대기록이다. 하지만 실시간 문자투표에 773만 1781콜이 쏟아지면서 서버에 문제가 생겨 최종 결과를 발표하지 못한 채 방송을 끝냈다. 오디션 프로그램 역사상 전무후무한 방송사고가 난 것이다.
 
당초 제작진은 일주일 뒤인 19일 ‘미스터트롯의 맛’ 토크콘서트에서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밝혔으나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14일 특별 생방송을 긴급 편성했다. 지난해 Mnet ‘프로듀스 101’ 시리즈의 순위 조작 사실이 드러나면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대중은 발표 지연에 강하게 반발했다. ‘미스터트롯’ 제작진은 “773만 1781콜 중 유실된 표는 없으며 향후 원자료(raw data)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끝까지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아 문제가 된 ‘프로듀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함이다. 결승전 유료 문자 투표로 모인 금액 전액도 굿네이버스에 기부하는 것을 택했다. 

역대 예능 2위 시청률 35.7%로 피날레
임영웅·영탁·이찬원 등 진선미 올라
773만표 쏟아져 결과 발표 지연 사고
특별 생방송 등 미숙한 대처 도마 올라

‘미스터트롯’은 14일 특별 생방송을 편성해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 TV조선]

특별 생방송도 시청률 28.7%를 기록하는 등 화제를 모았지만, 중간 순위와 최종 순위가 모두 뒤바뀐 결과에 대해 후폭풍도 거세다. 전체 4000점 중 1200점에 해당하는 실시간 국민투표(30%)의 집계 방식이 과연 타당한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오탈자나 특수문자 사용으로 무효 처리가 된 230만 2881표를 제외한 유효표 542만8900표 중 137만 4748표를 얻어 1200점을 받은 임영웅은 중간 3위에서 최종 1위(총점 3890점)로 올라섰다. 반면 중간 1위였던 이찬원은 85만 3576표를 받아 745.08점을 기록해 최종 3위(3452.08점)로 내려갔다. 2~7위는 각각의 득표율을 1위의 득표율(25.3%)로 나눈 다음 1200점을 곱하면 각자의 점수가 나오는 방식이다.
 
마스터 총점(50%)은 이찬원이 1917점으로 임영웅(1890점)보다 27점 앞섰지만, 국민투표는 454.92점이 차이 났다. 1월 16일부터 2월 23일까지 진행해 총 2975만 2432명(1일 1회, 1인당 5명 투표 가능)이 참여한 대국민 응원투표(20%)는 1위 800점, 2~7위는 10점씩 차등 배점한 것과도 다른 방식이다. 10인의 마스터 개별 점수는 “시청자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Mnet ‘슈퍼스타K’를 비롯해 SBS ‘K팝스타’, MBC ‘위대한 탄생’ 등 많은 오디션 프로들이 심사위원 점수를 공개하는 것과 다른 부분이다.  
  

결승전에서 노래하고 있는 영탁. 최종 선에 올랐다. [사진 TV조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때문에 무관중으로 결승전을 녹화하고, 결과발표 부분만 생방송으로 덧붙인 것도 논란이 됐다. 지난해 ‘미스트롯’ 결승전은 녹화 당시 관객 점수와 마스터 총점을 합산하는 방식으로 우승자를 가렸다. PD 출신인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주철환 교수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사전녹화를 할 수도 있지만, 편집하는 순간 제작진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며 “특히 결승의 경우 완성도보다 공정성을 택하는 것이 논란의 여지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주 교수는 “전 국민의 3분의 1이 넘게 보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1000만표가 나올 수도 있는 법이다. 보다 많은 경우의 수를 대비해 시뮬레이션을 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2011년 생방송 문자투표 170만건을 기록한 ‘슈퍼스타K 3’ 시청률은 13.94% 수준이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무관중이기 때문에 표가 더 몰릴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며 “특별 생방송 역시 1시간 내내 서서 결과 발표만 계속하는 등 미숙한 대처로 아쉬움을 남겼다”고 밝혔다. 이어 “출연자를 향한 팬덤이 커질수록 시청자들이 매의 눈으로 지켜보면서 편집ㆍ분량 등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에 이들을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승전에서 노래하고 있는 이찬원. 최종 미에 올랐다. [사진 TV조선]

전문가들은 제작진의 실수로 프로그램의 가치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정덕현 평론가는 “트로트가 기성세대의 음악으로 치부되면서 명맥이 끊길 위기였는데 ‘미스터트롯’을 통해 새로운 스타가 대거 발굴됐다”고 설명했다. 나란히 진(眞)과 선(善)을 차지한 현역 트로트 가수 임영웅과 영탁이 전통 트로트를 계승하는 동시에 미(美) 이찬원과 5위 정동원 등 어린 출연자들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성악을 전공한 김호중(4위)도 장르 간 크로스 오버를 통해 트로트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재목이다.  
 
주철환 교수는 “활동할 무대가 많지 않은 트로트 가수를 위한 기회를 제공한 점”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08년부터 고등학생(2013년), 대학생(2019년)이 돼서도 KBS1 ‘전국노래자랑’에 도전한 이찬원을 예로 들었다. 그는 “‘미스터트롯’ 출연진 중 대다수가 ‘전국노래자랑’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했지만 제대로 기회를 얻지 못했다”며 “아이돌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 무대가 넓어져야 함께 발전할 수 있다. 다음 시즌 제작을 위해서라도 지금 불거진 문제점들을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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