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은 스탠딩 코미디를 하는 것 같다."
"그는 놀라운 감독일 뿐만 아니라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다."
봉준호의 수상 소감이 담긴 유튜브 동영상 아래 달린 해외 관람객들의 댓글들이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다양한 영화상 시상식에서 봉 감독의 소감을 보고 있노라면 객석에서 빵빵 터지는 웃음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진정 그 자리가 시상식장인지 아니면 스탠딩 코미디 홀인지 의심될 정도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상 캠페인 기간 내내 그 옆에서 봉 감독의 말을 영어로 정확하게 옮겨준 샤론 최(최성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해외 영화인들과 관람객들의 뜨거운 반응은 봉 감독과 샤론 최의 완벽한 하모니 덕분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영화 철학까지
샤론 최가 통역해 더욱 빛난 이야기
어릴 때 돋보기로 종이 태우던 얘기까지…
"어릴 때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서 종이를 태우면 연기가 나면서 타잖아요. 작은 초점이 모이면서…그때 종이가 탈 때의 쾌감 같은 집중력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
봉 감독이 이렇게 디테일하게 말하고 나면 바통은 바로 그의 통역을 맡은 샤론 최(최성재)에게 넘어간다. 샤론 최는 그의 이야기를 영어로 이렇게 옮겼다.
"When we were little, we would use magnifying glasses to burn very small dots onto the paper. And you would always see the smoke coming from the paper from this tiny dot focus from the sunlight. I really want to portrait that excitement and joy comes from that tiny dot burning."
봉 감독의 의중을 100% 파악한다는 것
유머도 빠뜨리지 않는다.
“오늘 약간 변호사나 회계사의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변태적인 멋진 아이디어로 가득 찬 저의 공동작가 한진원 씨를 소개합니다.”
그냥 이름을 불러 소개한 것이 아니라 함께 작업한 작가의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변태적인 멋진 아이디어"라 고 한껏 추켜세웠다.
"And my great partner in writing is here. Today he looks like lawyer or an accountant but he is always filled with very perverted great ideas."
1인치의 장벽, 비유까지 멋지게
"자막의 장벽을, 장벽도 아니죠.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 샤론 최는 이 발언도 아주 깔끔하게 영어로 옮겼다.
"훨씬 더 많은 영화"라고 한 봉 감독의 말을 오히려 "so many more amazing films"라고 살짝 바꾼 그녀의 센스도 돋보였다.
"Once you overcome the one-inch tall barriers of subtitles, you will be introduced to so many more amazing films."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
"영화가 보여지는 2시간 동안 관객을 2시간 동안 제압하고 싶어요. 히치콕이 그랬던 것처럼요."
" I always want to overwhelm the audience throughout the running time like Hitchcock did.
그리고 지난 9일 시상식 장에서 한국에서 영화를 만든 그가 어떻게 그 자리에 서 있게 돼 있는지 이해하게 하는데 핵심이 되는 얘기를 들려준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을 가슴에 새겼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제가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어요. 영화 공부할 때…”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When I was young and studying cinema, there was a saying that I carved into my heart which is…“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
봉준호 감독은 또 다른 인터뷰에서 자신의 영화가 그냥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한국 영화사의 연장선 위에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샤론 최의 절제돼 있으면서 정확한 통역을 통해 세계 영화인들에게 전해졌다. 이런 통역은 단순히 언어 재능을 넘어서 샤론 최가 무엇보다도 영화에 대한 열정을 공유했기에 더욱 가능한 일이었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