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수수를 씹고 있던 맨발의 소녀, 그 환한 눈빛

중앙일보

입력 2020.01.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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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6)

시골 장터를지나가다 우연히 만난 에티오피아 아이. 사탕수수를 간식으로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사진 허호]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사람의 진심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눈이죠. 눈을 보면, 진심을 알 수 있지요. 눈으로부터 사람의 감성적인 요소가 제일 많이 표현되고 가장 많은 정보가 얻어지니까요. 신체의 아주 작은 부분인데, 정말 신기하죠? 그래서 사진에서도 눈을 맞추는 게 정말 중요해요. 그만큼 인물 사진에서 눈이 중요하죠. 저 개인적으로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이 온 감성으로 부딪쳐 대결하듯 찍는 사진을 ‘정공법’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저는 이런 사진이 주는 힘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습니다.
 
에콰도르 고산지대를 갔는데 그곳 컴패션 어린이센터 어린이가 다 오타발로스 부족이었어요. 남미 원주민이었는데 그들의 언어인 케츄아어(Quechua語)를 사용하고 그들만의 복색과 문화도 물씬 느껴졌죠. 컴패션 교복을 똑같이 입었는데, 남자아이고, 여자아이고 다 긴 머리를 땋아서 성별 구분이 어려웠어요. 그 속에서 이 아이를 발견했죠. 눈빛부터 전체적으로 묘한 느낌이 있어서 그것이 무엇인지 끄집어내 사진에 담고 싶었죠.
 
정말 수십장 찍었어요. 아이도 처음에야 그냥 ‘모르는 외국인 아저씨가 왜 이렇게 많이 찍지?’ 그런 정도였을 거예요. 하지만 점차 저와 대결하는 구도가 만들어졌죠.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를 눈에 담고 온 감성으로 카메라와 부딪쳐 주었어요. 그것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호흡이 탁 맞아떨어졌죠. 그렇게 나온 사진이에요. 나중에, 바지를 입은 것을 보고 나서야 남자아이인 것을 알았어요.
 

에콰도르 북부산간지대에서 만난 토착민 오타발로스(Otavalos) 컴패션 어린이.

 
인물사진은 작자가 사진 찍을 당시의 감성을 담고 감상하는 이와 교감하기에 좀 더 나은 사진이라고 추천합니다. 당연히 정공법도 더 잘되고요. 하지만 여권사진이나 증명사진 찍을 때처럼 카메라 렌즈를 정확하게 본다고 다 정공법은 아닙니다. 사진에서 그 사람 자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정공법은 작자와 찍히는 자 사이의 긴장 관계가 느껴지고 그것이 더 강하게 느껴질수록 좋습니다. 피사체가 자신의 모든 것을 표현해주고 발산해주는 거죠. 그게 사진에서 베이직이고, 또 제일 중요합니다.


에티오피아 시골에서 찍은 여자아이의 인물 사진도 그런 사진이죠. 먼저 아이가 신기해하면서 우리를 쳐다봤어요. 외국인들이 떼거리로 몰려가니 신기했겠죠. 한국 사람인 줄 알기나 했는지 모르겠네요. 그래서인지 저도 눈길이 갔어요. 낯설어하지 않고 정면으로 시선을 부딪쳐 오는 것도,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나는 것도 흥미진진했죠. 특히나 맨발에 사탕수수를 간식으로 씹고 있는 모습이, 맨발에 배 내밀고 고구마 씹던 우리 어릴 때랑 다르지 않아, 정말 재미있었어요.
 

과테말라에서 찍은 한 컴패션 어린이의 아버지.

 
컴패션 현지의 가정방문을 가면 어린이만 만나는 게 아닙니다. 가족들을 만나죠. 자신들의 아이를 직접 후원하는 후원자들의 방문이 아니라도, 그들은 후원자가 온 것 자체를 엄청나게 특별하게 여기고 엄마들은 자주 울죠. 이 가정에서는 아이 아빠가 우리를 맞아주었어요. 아빠가 맞아주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은데, 그나마 마음을 표현하려고 집에 있는 것만 봐도, 아빠의 부정이 꽤 깊다는 게 느껴지죠.
 
한국에서나 어디에서나 부모의 삶이라는 게 고단하잖아요. 그런데 이런 분들은 말해 뭐하겠어요. 오죽하면 자식을 컴패션에 넣었겠느냐고요. 일자리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있다 해도 일용직. 새벽에 나가서 한밤중에 들어오는데 그 힘든 중노동을 하면서도 제대로 먹지 못할 거예요.
 
자식을 위해 먼 곳에서 귀한 손님이 왔다고, 아이 아빠가 잠깐의 짬을 내서 집에 달려오긴 했는데 우리를 맞을 때, 마냥 기쁘고 감사한 건 아니었을 거예요. 약간의 어정쩡함이 있었어요. 겸연쩍은 것 같은. 같은 아빠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주 조금 더 많이 살아본 사람으로서… 충분히 이해하고 아프고 공감할 수 있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이 전해졌어요. ‘아이구, 참! 사는 거 쉽지 않아요, 잘하고 계세요.’ 이런 말이 툭 튀어나올 것 같은, 그런 심정이었어요. 사진에 담았죠. 바로 그 눈빛을요. 
 

필리핀 남서부 팔라완 섬에 위치한 컴패션 태아∙영아생존센터. 그곳에서 돌봄 받고 있는 임산부들과 점심을 함께했다.

 
사물을 소재로 해서 정공법으로 찍을 수 있어요. 뭔가 대결하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이 한 접시와 책상을 샅샅이 훑어 모든 정보를 다 담아내겠다고 하고, 사물이지만 자신의 정수를 드러내 보여주겠다는 뭐 그런 감성이요. 이 한 접시의 음식을 만들고 먹는 사람들의 덕분이기도 합니다. 컴패션에서 만난 임신부와 아기 엄마들은 대부분 남편이 떠나거나 무기력한 십대였어요. 아기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컴패션에 들어온 거죠. 직업훈련도 받고 읽고 쓰기도 배우지만, 사실, 아기 돌보는 법을 배우며 처음으로 자신도 돌봄 받는 경험을 해봤을 거예요. 두렵고 떨리지만 아기처럼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듯한 엄마들의 마음이 음식에 담기게 됐습니다.
 
사진은 굉장히 효율적인 남김-기록의 수단이죠. 그리고 인간은 자기를 남기고 싶다는 기본적인 욕구가 굉장하고요. 그런 목적이라면 정공법이 가장 맞죠. 보는 사람도 온전히 볼 수 있게 해주니까요. 작고 여리고,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당장 생계가 어려워지고 생명에까지 위협을 받는 어린이들이지만, 사진을 보세요. 온몸으로 자신을 표현해내는 또 한 생명이잖아요. 이 아이를 발견하고, 알아봐 주고, 자신의 개성을 온몸으로 표현할 때 그 순간 그 자리에 제가 있는 거, 한 생명이 이 세상에 살아있음을 남기는 증인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참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사진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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