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흙집에서 만난 알비노 소녀의 꾸밈없는 표정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3) 

2015년 아프리카의 한 시골마을에서 만난 알비노 소녀가 기도하는 모습. [사진 허호]

2015년 아프리카의 한 시골마을에서 만난 알비노 소녀가 기도하는 모습. [사진 허호]

2015년, 아프리카 한 시골마을에 갔을 때였어요. 컴패션에서 후원받는 아이들 중에도 알비노(선천성 색소 결핍증에 걸린 사람) 어린이가 있을까 싶어서 물어봤더니, 마침 한 가정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한국에서는 '알비노의 신체 부위를 갖고 있으면 부와 행운이 따라온다'는 미신에 희생당하는 알비노 이야기가 큰 충격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아이의 집에 방문했을 때, 분위기가 따뜻하고 밝았어요. 온 식구가 방 하나에서 지내는 작디작은 흙집이었고, 전기가 안 들어와 어두웠지만 깨끗하고 깔끔했지요. 그런데 애가 좀 시크한 데가 있었어요. 마냥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표정은 아니었죠. 거기에서 아이가 느꼈던 소외감이나 자기방어 같은 걸 보긴 했지요. 그래도 잘 보호받고 있구나, 싶었어요.

저는 이 아이의 평범함에 꽤 마음을 놓였답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 이 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 크게 희생당한 알비노 공동체가 있었고 그들을 보호하는 컴패션 어린이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의 어린이들도 이 아이처럼 평범하게 아이의 모습으로 자라날 것을 상상하며 꽤 마음을 놓았답니다.

제 사진 속 어린이들이 불쌍해 보이지 않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저는 현장에 섰을때 인간의 생명과 존엄, 뭐 그런걸 놓치지 않을려고 해요. 그게 저의 생각의 프레임인 셈이지요. 제가 보는 어린이들은 정말 불쌍하지 않아요. 그 아이들의 어려운 형편을 보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정말 아이들이 내 어릴 때와 별반 다르지 않고, 저마다 장점도 있고, 형편이 이해가 되거든요. 그것이 바로 사진가로서 제가 가진 인생관이 갖는 프레임이겠지요.

그런데 시각적으로도 사진은 직사각형이라는 프레임을 갖지요. 혹시 카메라 렌즈는 동그란데, 사진은 왜 네모날까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사진기가 갖는 기술적인 태생 때문이겠지요. 렌즈가 둥글어도 맺히는 곳이 필름이니까요. 필름이 사각이라, 사진들은 다 직사각형이 되는 거죠. 사각형으로 잘려나가는 거예요. 별다른 미학적인 이유 때문이라기보다는, 원보다 사각이 효율성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어쨌건 중요한 것은 사진이 사각 프레임의 예술이라는 것이지요.

아프리카에서 만난 저 아이 역시, 그 일상에 프레임을 갖다 댄 거예요. 그 사각 안에 무엇을 중심으로 삼고 넣고 뺄 것인가, 단순하게 선택하고 또 집어넣은 것이지요. 아무리 평범한 아이처럼 보여도, 저 기도하는 두 손이,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 같지 않나요?

태국 치앙마이 산간지역에서 폐품으로 만든 굴렁쇠를 굴리며 노는 아이들.

태국 치앙마이 산간지역에서 폐품으로 만든 굴렁쇠를 굴리며 노는 아이들.

태국 치앙마이 산간 지역에 가면, 집들이 띄엄띄엄 있어요. 학교 다니기가 쉽지 않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지역 컴패션에 기숙사들이 많았어요. 아이들이 후원으로 기숙사에 지내면서, 학교에도 가고, 센터에 와서 밥도 먹고 다른 양육도 받고. 저녁 즈음에 어린이센터 교실을 찍으려고 서 있는데, 아이들이 제 앞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거죠. 세 명이 동시에 달리는 게 신기하지 않나요?

태국이나 아프리카나 굴렁쇠 굴리면서 노는 아이들 많죠. 부서진 자전거 바퀴 같은 것으로 만든 폐품이잖아요. 우리도 그랬어요. 못 살던 시절, 장난감이 저런 거밖에 없었으니까. 아이들이 자기 나름의 존재감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저 뒤통수가 저 보란 듯이 잔뜩 의식하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폐품이어도 보여주고 싶은 게 있는 거지요.

순간적으로 뛰는 아이들을 신속하게 찍으려 해도, 프레임을 생각하고 찍어야죠. 그래서 아이들이 안 잘리고 사각 안에 다 잘 담겨 있잖아요.

우리 눈으로 봤을 땐, 참 아름답고 좋은데 사진을 찍으면 전혀 달라요, 차이가 뭐겠어요. 인간의 눈은 감성의 눈이지만 카메라의 렌즈는 광학적인 눈, 현상을 복사하는 거잖아요. 사람의 눈에는 그 장면이 담은 사건, 이야기, 소리, 감정 등이 담긴 그 상황을 보는 거니까요. 그런 인간의 눈이 보는 것을 카메라에 담아낼 수 있는 것. 그런 게 되면 좋은 사진이 되는 거죠. 그런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중심을 잘 잡아내면 되어요. 그 외의 것은 제하는 거지요. 그게 잘 되면 다시 담는 것도 훈련하고.

2007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 위치한 은토토산에서 만난 아이의 모습. 자기 몸집보다 더 큰 나뭇짐을 팔아 벌어들이는 수익은 당시 현지 돈으로 3비르(한화 약 300원)라고 한다.

2007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 위치한 은토토산에서 만난 아이의 모습. 자기 몸집보다 더 큰 나뭇짐을 팔아 벌어들이는 수익은 당시 현지 돈으로 3비르(한화 약 300원)라고 한다.

은토토 산에서 만난 아이의 모습이에요.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서울의 남산 같은 데죠. 시내 한복판에 떡하니 사람들의 생활반경 안에 있었어요. 엄마가 애들한테 ‘나무 해 와, 밥해 먹자’, 그러면 애들이 가서 메고 오는 거죠. 2007년인가, 컴패션 후원자였던 배우 차인표 씨하고 에티오피아를 갔다가, 컴패션 후원 받는 아이들 말고 다른 아이들도 보자고 했어요. 컴패션 아이들은 깨끗하고, 사랑스럽고, 적대감이 없었어요. 그렇게 되기 이전 모습을 보고 싶었죠.

현지 직원한테 물어봤더니 은토토 산으로 안내해주더라고요. 산 전체가 나무 한 그루 찾기 어렵게 완전히 벌거벗었어요. 많은 아이들이 자기 몸보다 더 큰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더라고요. 어른들은 차 타고, 나귀 타고 내려오는데. 벌목을 한 게 아니라, 부스러기 같은 걸 모아서 지고 내려오는 거였어요. 인표 씨가, 차에서 내려서 아이들 짐을 들어줬죠.

물도 주고. 인표 씨 등이 상처 날 정도로 나뭇짐이 날카롭고 무거웠다고 해요. 나중에는 그냥 차에 다 싣고 밑에까지 데려다 줬죠. 사진 속 아이 어깨 위에 얹혀진 나뭇짐과 그걸 지지하느라 굽힌 허리, 그리고 한 손에 들린 물병. 어린아이가 견뎌내는 삶의 무게가 보이지 않나요? 저 작은 생수병 하나가 아이의 힘듦을 조금 덜어줄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나중에 들었을 때, 아이들이 나뭇짐을 지고 두어 시간 걸어 내려가 팔면 당시 3비르(당시 약 3백원)을 벌 수 있었는데, 바로 생수 한 병 값이었어요.

일 년 뒤에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방송사 제작진들과 함께 이곳을 다시 찾았죠. 덕분에 다른 많은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었어요. 다들 말도 못하게 감사해하고 기뻐했지요.

2007년 은토토산에서 만난 어린이의 짐을 들어주는 차인표 후원자의 모습.

2007년 은토토산에서 만난 어린이의 짐을 들어주는 차인표 후원자의 모습.

요즘, 틈틈이 곧 태어날 첫 손주한테 줄 아기 침대를 만들어요. 최근 들어 제일 중요한 일이죠. 손에 만져지는 나무 감촉도 생생하고 아기가 누워 있을 모습도 상상이 되고.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너무 잘 아니까, 다른 일들은 크게 신경 안 쓰여요. 요즘 일상에 프레임을 들이대면 아마 이게 제일 먼저 담기게 될 것 같아요.

일상에서도 뭔가를 덜어내고 싶을 때,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면 더 잘할 수 있겠지요.

사진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