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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 뚫린 창문도 예쁘네요, 활짝 웃는 아이들이 있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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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4)

콜롬비아 몬테레이 지역에서 만난 한국 후원자의 컴패션 어린이. [사진 허호]

콜롬비아 몬테레이 지역에서 만난 한국 후원자의 컴패션 어린이. [사진 허호]

콜롬비아 보고타 시에서 가까운 몬테레이(Monterey)라는 지역이에요. 산기슭 꼭대기까지 좁디좁은 계단을 한창 올라갔죠. 우리네 달동네와 비슷해요. 더 높고 규모가 더 크지요. 웃고 있는 여자아이가 컴패션에서 후원받는 아이예요. 만나 보니, 한국 후원자가 후원하는 아이였죠. 아이가 올라 서 있는 틀이 이 집 대문이에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라고 하더라고요. 시야가 시원하게 탁 트인 게 좋아할 만하지요?

이 아이 집이 동네에서도 많이 어려운 집이긴 했어요. 컴패션 아이들 집, 세계 어디를 가봐도 집짓기용 자재로 지은 집은 못 봤어요. 버려진 나무, 폐자재, 쓰고 버린 광고 간판… 그런 걸로 지은 집들이었어요. 그래도 사랑받고 자라는 아이답게 환하게 웃고 있잖아요. 사진 왼쪽, 길가로 지나가는 아이의 눈빛은 어딘가 조금 불안해 보였어요. 제 눈에만 그래 보였을 수도 있지만 컴패션 안팎의 상반된 아이들 표정을 사진으로 잡아냈죠. 이 아이는 당시 컴패션 후원을 받지 못하는 아이였어요. 후원 아이의 미소가 한 켠으론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다른 한 켠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죠.

프레임은 액자잖아요. 프레임 자체인 사진 안에 또 프레임을 활용해서 사진을 찍으면 사진이 강렬해져요. 또 사진을 프레임으로 인식하는 훈련도 되고. 이 사진에서도 아이가 서 있는 집 대문이 액자처럼 되어서 프레임 안의 프레임으로 활용하고 있지요. 아이가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아이를 그림 속 인물처럼 틀 위에 올라 서 보라고 한 거예요.

전봇대를 십자가 느낌으로 메타포를 걸어 주었죠. 이 사진에서 십자가가 없었으면 아마도 균형이 깨져 보였을 거예요. 또 지나치게 맑은 날이었으면 이런 느낌이 안 났겠죠. 후보정으로 구름의 강렬함을 살렸고 전체적으로 왜곡을 줬어요. 왜곡이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게 아니라, 주인공 아이가 강조될 수 있도록. 또 위의 아이와 아래 지나가는 아이의 상반된 표정을 볼 수 있도록 해줬죠. 사진 한장에, 이런 모든 요소가 담겨 있어요. 이 모든 게 순간적으로 정리되어 담긴 제 의도였어요. 정말 많은 요소가 순식간에 생각되어 들어간 거죠. 그래서 평소 프레임 안에 넣고 덜고 하는 훈련이 필요해요. 그게 구성에 대한 개념이 생기는 일이고요.

아, 대문을 활용해서 프레임 안의 프레임 활용에 관해 설명하고 있었는데 사진 전체를 설명하고 말았네요.

에티오피아 시골, 컴패션 어린이센터 수업 중에 눈이 마주친 아이의 쑥스러운 듯 환한 웃음.

에티오피아 시골, 컴패션 어린이센터 수업 중에 눈이 마주친 아이의 쑥스러운 듯 환한 웃음.

에티오피아에서 찍었어요. 완전 시골이었죠. 방과 후, 컴패션에서 따로 수업 중이었는데, 밖에 있던 저랑 눈이 마주치니까 쳐다보면서 씨익 웃는 거예요. 창을 프레임으로 활용해서 찍었죠. 프레임을 활용할 때, 정확하게 수평수직을 맞게끔 찍으면 사진이 경직되어 보여요. 프레임으로 인식하되 약간 틀어 보았어요. 덕분에 사선이 주는 운동감이 있고 구성적으로도 재미있죠. 아이의 눈빛이 더 와 닿잖아요. 물론 그 뒤로 그림자의 대비가 강렬하고 어두움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 것도 큰 요소이지만요. 창에서 느껴지는 세월이나 가난, 질감의 느낌도 강하고요.

외국인이라서 어떻게 보면, 경계심을 가질 만한데, 컴패션 아이들은 정말 경계심이 없어요. 후원자라는 말은 흔한 말이지만. 직접 만나서 겪는 아이들을 보면, 수호천사, 보호자, 고마운 사람… 그런 느낌으로 온몸으로 받아들여 주는 게 피부에 와 닿아요. 시설은 아무리 후원을 받아도 좀 그렇지요. 많이들 그래요. 오래되고 남루하고 틀은 있어도 유리는 깨져 나가고 없는 창이 태반인 것처럼요.

과테말라 컴패션 어린이. 한국 후원자들을 환영하기 위해 컴패션 어린이들은 종종 태극기를 만들어 흔들어 준다. 멀고 먼 이방 나라에서 이렇게 만나는 태극기는 정말 각별하다.

과테말라 컴패션 어린이. 한국 후원자들을 환영하기 위해 컴패션 어린이들은 종종 태극기를 만들어 흔들어 준다. 멀고 먼 이방 나라에서 이렇게 만나는 태극기는 정말 각별하다.

어떤 사각형이라도 프레임으로 활용할 수 있어요. 어떤 사각형 물건이라도 프레임으로 인식하고 구성하는 훈련으로 활용할 수 있지요. 이 사진처럼 태극기도 프레임이 될 수 있어요. 2010년에 과테말라에 처음 갔는데, 아이들도 낯설지가 않고 동양적 느낌이 있었어요. 여기도 시골이었죠. 따뜻하고 환대해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태극기를 흔들어 주는데 굉장히 반가웠죠. 서로 잘 만날 수 없는 굉장히 이질적인 두 요소가 만난 거잖아요. 과테말라의 한 시골 어린이와 지구 반대편 나라의 국기인 태극기. 우리는 컴패션을 통해 만난 거지만 한국인의 상징으로써 태극기를 만들어 주었던 거죠. 태극기를 흔들어 주는 건, 실은 많은 나라의 컴패션 아이들이 보여주는 환영 인사이기도 해요. 그런데 특별히 이 아이의 마냥 밝은 게 아니라, 수줍음 같은 게 느껴져서 전 이 사진 속 아이를 더 좋아하지요.

어린이들이 그렇잖아요. 작고 연약하고 그런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잖아요. 절로 시선이 가지요. 그 위에 액자를 덧씌워주고 제가 받은 감흥을 강조해 보여줄 수 있는 것. 제가 자주 사용하는 프레임 안의 프레임은 직사각형으로 정직하고 선이 분명한 편입니다. 아마도 이미지적으로라도 더 강조해서 어린이들은 존재 자체로 사랑스럽다고 말하고 싶은가 봐요.

사진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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