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행궁동 기묘한 '기와집 동네' 한방 먹인 독특한 집 한 채

중앙일보

입력 2019.12.01 06:07

수정 2019.12.01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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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조성룡 건축가가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에 지은 집. 동네에 원래 있었던 듯, 자연스런 집을 짓기 위해 되려 수많은 규제를 넘어야 했다. [사진 김재경 작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에는 기와집이 유독 많다. 한옥이 아닌데도 집마다 지붕에 한식 기와 또는 기와 무늬 강판을 얹었다. 콘크리트 건물이어도 지붕에는 기와를 얹고 있다. 마치 양복 입고 갓 쓴 듯 어색한 모양새다.   
 
수원화성 지구단위계획 지침에 이렇게 건축하라고 명시해놨다. 수원시는 2013년 화성과 조화되는 도시정비 및 경관계획을 수립하겠다며 지구단위계획을 일부 변경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의 성곽 안 동네(행궁동)와 바깥 동네 일부는 이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건축해야 한다. 화성은 세계 최고(最古)의 계획 신도시다. 당시로썬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성곽을 축성했다.  

수원 행궁동 ‘기와규제’가 만든 주거풍경
원로 건축가와 젊은 건축주의 규제격파기

지구단위계획에는 지붕허용 재료로 한식기와, 일반점토기와, 전통형기와무늬강판만 예시도로 들었다. 그리고 “예시도는 그 지침이 추구하는 설계목표나 방향을 가시화하는 것으로 지침과 동등한 효력을 지닌다”고 명시했다. 이 한 줄의 지침이 만든 경직된 기와규제가 동네 풍경을 어색하게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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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콘크리트로 지은 집에 전통형 기와무늬 강판 지붕을 올렸다. 경직된 규제 탓이다. [사진 조성룡도시건축]

전신주 뒤가 동네에 조성룡 건축가가 지은 집이다. 이전부터 있었던 듯 자연스럽다. 성곽동네라고 지붕이 꼭 기와여야만 하는 걸까. [사진 조성룡도시건축]

하지만 "전통재료만이 화성과 어울리는 걸까. 옛것으로 회귀해야만 전통이고, 조화로운 걸까."
 
원로 건축가와 젊은 건축주가 만나 이 질문을 던졌다. 2년여의 세월 동안 합심해 기와를 얹지 않고 동네 풍경에 스며든 집 한 채를 지었다. 집 짓기이자, 규제 격파를 위한 고군분투기다.    
 
건축주는 30대 부부다. 남편 박용걸(38) 씨는 토목 일을, 아내 정선영(37) 씨는 조경 일을 한다. 범 건축의 영역에 있는 두 사람은 수원화성의 서쪽 화서문(華西門) 근방에 터(184㎡)를 마련하고 집 짓기에 나섰다. 폐가나 다름없었던 1968년생 집을 허물고, 이 오랜 동네에 새집을 짓자니 떠오른 건축가는 한 명뿐이었다고 한다. 서울 선유도 공원을 재생시킨 조성룡(75) 건축가.  


부부는 건축가에게 “튀지 않고 옛 동네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더불어 “지하에 동네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곳에서 뜻 있는 사람들과 재밌는 작당을 하며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젊은 건축주의 조화로운 제안이 건축가를 움직였다. 이들의 목표는 ‘화성과 옛 동네와 조화되는 경관을 수립한다’는 수원화성 지구단위계획과 일치했지만, 허가를 받기까지 어려웠다. 획일적인 심의가 많은 동네였다. 팔달구청의 인허가를 받기 전에 수원시화성사업소와의 사전협의를 거쳐 수원시의 건축심의를 받아야 했다.  

화성 지구단위계획에 불허 재료로 되어 있는 시멘트 벽돌과 티타늄아연판 지붕을 썼지만 조화롭다. 획일적인 규제가 오히려 어색한 집을 만들게 한다. [사진 조성룡도시건축]

지붕 재료로 한식기와를 검토했지만, 흔히 쓰는 강판보다 2~3배가량 비쌌다. 조성룡 건축가는 “폭 좁은 2층 건물보다 지붕이 지나치게 무거워 보여 오히려 주변 건물과 조화롭지 못했다”며 “진회색인 금속재 티타늄아연판으로 삼각 지붕을 계획했고 설득했다”고 덧붙였다. 건축주 박 씨는 “옛 사진을 보면 행궁동에는 기와지붕보다 초가지붕이 더 많은데 ‘전통=기와’라는 정형화된 시각이 이런 규제를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숱한 의견서가 오가고, 수개월 간의 설득 과정을 거쳐 심의에 통과했다. 사실 이 집의 외벽재료로 쓰인 시멘트 벽돌도 지구단위계획상 엄밀히 불허재료다. 하지만 불허재료의 예시로 든 벽돌과 집에 쓰인 벽돌의 질은 천지 차이다. 박 씨는 “예시로 있는 허용재료에만 집착해 해석을 너무 좁게 하고 있어서 계속 협의했다”고 말했다   

2층 주방 공간. 나왕합판으로 주방 가구를 만들었다. [사진 김재경 작가]

1층을 1m 들어올려 지하에 틈을 줬다. 나무문은 건축주의 현관이고, 왼쪽 까만 문은 임대세대(현재 사무실)다. [사진 김재경 작가]

이 집에는 담장이 없다. 수원화성 지구단위계획에 따르면 담장 재료는 전통재료로 사용하고, 콘크리트 블록이나 시멘트 마감은 할 수 없다. 건축가는 담장 없이도 집 안과 밖의 시선이 바로 부딪히지 않고, 길과 교류할 수 있는 집을 고민했다. 그래서 지상 1층을 땅에서부터 1m가량 띄웠다. 그 결과 지하의 머리 부분이 길 위로 빼꼼히 솟았다. 이 틈이 재밌다. 길 가는 어른들은 허릴 숙여 쳐다보고, 세 살 된 딸과 동네 아이들은 그 틈을 두고 서서 이야기한다.  
 
건축가의 배려는 집 곳곳에 담겨 있다. 아이들이 크면 집을 더 확장해 쓸 수 있게 원룸 세대와 주인세대의 맞벽 부분을 구조벽이 아닌 조적 벽으로 쌓았다. 뒷집에 행여 볕이 잘 안 들까 봐, 1층 골조가 올라간 상황에서 2층 계단실의 천장을 낮춰버리기도 했다. 집 북쪽 면의 가운데가 움푹 파인 이유다.  

2층 욕실 및 세탁공간. 세면대, 변기, 샤워실을 분리했다. 계단 위 천장은 뒷집을 배려해 높이를 낮췄다. [사진 김재경 작가]

 

건축가는 아이들이 집을 오르내리며 놀이터에 온 듯 놀 수 있게 동선을 짜고 디자인했다. [사진 김재경 작가]

“현장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완성하기 위해 작전을 바꿔 나간 거예요. 도면만 그리고 끝내버리면 현장에 대한 배려가 자세히 안 되는 거죠. 처음에는 작은 차이지만, 나중에는 매우 큰 차이를 만듭니다. 건축은 큰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완성되는 순간까지 작은 요소들이 모여 전체를 만들어가는  작업입니다. 디테일이 중요하고, 그걸 살리려면 현장에서밖에 안 됩니다. 그저 애쓰는 거죠.”

 
그렇게 수원 행궁동에는 원래 있었던 듯 안온한 집 한 채가 지어졌다. 지구단위계획대로라면 이렇게 지어지지 못했을 집이다. 원로 건축가의 한결같은 진정성과 젊은 건축주의 끈기가 만든 결과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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