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흙다짐 공법으로 지은 흙집 #현대 건축가들 모던함에 빠져 #건축 폐기물 적게 내는 생태건축 #그 지속가능성에 전세계가 주목
중국 남부지방 깊은 산속에 지어진 ‘토루(土樓)’는 흙 아파트다. 독특한 모양새로, 한때 미국의 CIA가 핵 관련 시설로 오해하기도 했다. 최고령 건물이 약 700살이다. 명나라 때 지어졌다. 중부에 살던 이들이 피난해 지은 집이자, 방어기지였다. 가운데 중정을 둔 4~5층 규모에서 최대 200~300명이 함께 살았다.
방어기지인데 왜 돌이 아닌 흙으로 지었을까. 흙은 인류 최초의 건축자재라 불린다. 나무가 귀한 사막에도 흙은 있다. 깊은 산 속에서도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다.
토루는 ‘흙 다짐공법’으로 지었다. 나무로 거푸집을 짜서 시멘트 대신 생흙을 부어 절구로 꽉꽉 눌러 다진다. 기존 흙의 부피를 절반으로 압착해 켜켜이 쌓아가는 방식이다. 흙과 노동력만 있으면 집을 뚝딱 지을 수 있다. 그리고 700년을 버틸 만큼 단단하다. 토루는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 흙 다짐공법을 위한 거푸집이 한국에서도 발견됐다. 공공 건축물을 많이 지어 ‘건축계의 공익요원’으로 불렸던 고 정기용(1945~2011년) 건축가가 안동 하회마을의 고택 마루 밑에서 찾았다. 흙 다짐으로 지은 집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담은 발견됐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 건축가들이 흙 건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새마을 운동 이후 명맥이 끊긴 ‘흙집의 재발견’이 시작된 것이다.
건축가 정기용의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제천 간디 학교생활관’, 조성룡의 ‘이응노의 집’, 승효상의 ‘한국DMZ 평화생명동산’, 이진오·김대균의 ‘양구백자박물관’ 등이 흙 다짐을 활용해 지어졌다. 특히 봉하마을 사저의 경우 노 전 대통령이 흙집 짓기를 원했다고 한다.
통상 흙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은 집의 친환경적인 특성에 감탄하지만, 건축가의 시각은 조금 달랐다. 흙 다짐 공법의 경우 거푸집을 활용해 짓는 덕에 시멘트 집처럼 마무리가 반듯하고 세련됐다. 흙의 켜가 잔잔한 물결처럼 보여 아름다웠다. 특히 건축 폐기물을 적게 내는 집이어서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관심이 많았다.
정기용 건축가의 뒤를 이어 흙 건축의 명맥을 잇고 있는 이규봉 건축가(공간연구소 알콘 대표)는 “정기용 선생님은 ‘한국에서 집은 물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사회적인 이유로 부서지는데 그때 자연으로 바로 돌아갈 수 있는 집이 흙집이다’며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 지금도 흙집을 짓고 있나.
“곧 하동에 흙 다짐공법으로 집 두 채를 지을 예정이다. 정기용 선생의 제자였던 신근식 교수가 2011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흙집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토대를 많이 잃었다. 신 교수는 흙집 연구의 본토인 프랑스 그르노블 국립건축학교 흙 건축 연구소에서 8년간 흙 건축을 공부했다. 귀국해 한국의 흙 건축을 꽃 피울 참이었는데 아쉽다.”
- 프랑스에 흙 연구소가 있다니 생소하다.
“파리 리옹 지방에만 가도 2층짜리 흙집이 40만~50만 채 있다. 사람들은 그 집들을 보수하며 살아가기 위해 흙을 배운다. 80년대에 흙으로 현대건축물이 가능한지 실험하며 주택단지를 짓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재료 실험 축제(Grains d‘isere)가 열리는데, 여기서 다양한 건축 공법을 실험하고 전시한다. 흙도 큰 주제고 일반인들도 관람하고 배운다. 프랑스뿐 아니라 호주ㆍ미국ㆍ북아프리카 등에서도 흙 건축이 활발하다.”
- 흙 다짐공법의 경우 어떻게 수백 년 버틸 강도가 나오나.
“보통 흙(90%)에 표면 강도를 내기 위한 석회(10%)를 섞는다. 흙과 석회의 입자 사이 파고드는 물, 즉 함수율도 중요한데 6~7% 선이 좋다. 문구점서 파는 찰흙의 함수율은 10%다. 비닐 벗기면 물기 있고 손에 묻어나는 느낌이다. 흙 다짐공법을 위한 함수율을 가진 흙을 보면 물기가 너무 없어 사람들이 안 다져지는 게 아니냐고 말할 정도다.
이 흙을 거푸집에 12~15㎝ 두께로 붓고, 절반으로 줄 때까지 절구로 꾹꾹 다진다. 흙 다짐의 한 켜는 6~7㎝고 3m 높이의 벽이라고 하면 이 켜가 50개가량 될 정도로 수없이 압축시키니 단단하다. 또 흙 성분도 중요하다.”
- 어떤 흙이 집 짓기 좋은 흙인가.
“크고 작은 자갈, 모래, 실트, 점토 등 흙의 입자가 고르게 분포된 흙이 좋다. 특히 가장 고운 입자인 점토 성분이 많아야 한다. 점토는 다지면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서 접착력이 강해진다. 흙이 좋은 유럽의 경우 점토 성분이 20~30%다. 이런 흙은 시멘트를 섞지 않고 석회와 흙만으로 짓는다. 점토가 부족하면 시멘트를 섞기도 한다.”
- 한국에도 좋은 흙이 있나.
“한국의 경우 상주에서 점토 성분이 40%가량 되는 흙을 찾았는데 땅 주인이 안 팔겠다 하여 구하지 못했다. 강원도 흙의 점토 성분이 20% 된다. 제주에도 점토 성분이 있는 흙이 서너 군데서 나오는데, 흙으로 된 섬에서 화산폭발이 일어나 화산재가 덮였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편서풍 탓에 주로 동쪽에 화산재가 덮인 흙이고, 점토 성분이 있는 흙은 서쪽에서 발견되고 있다.”
- 원시적일 줄 알았는데 과학적이다.
“흙 건축은 순수과학에 가깝다. 흙 연구 자체가 이렇게 하면 집을 빠르게 잘 짓는다기보다, 점토 관련 원론적인 연구를 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점토의 입자만도 200여 가지가 넘는다. 암석이 풍화된 것이 흙이고 점토이니, 암석 종류만큼 점토의 종류가 있을 것 같다.”
- 한국의 경우 흙집이 거의 없다.
“새마을 운동 이후 흙집의 인식이 굉장히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못 살고 허물어야 하는 집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게다가 싸다는 편견도 더해져, 흙 다짐공법의 비용을 말하면 놀란다. 보통 콘크리트 집 짓는 비용과 비슷하게 든다. 흙집은 계속 보수하는 집이다. 한옥도 궁궐의 경우 흙으로 얇게 미장한 흔적이 16겹, 양반집의 경우 5~6겹이 나올 정도로 금 간 부위를 보수하며 살았는데 현대에 와서는 낡으면 부수는 게 일상화됐다. 그 폐기물량도 어마어마하다.”
- 기술이 발전한 요즘, 왜 흙집을 지어야 할까.
“흙을 구워서 만드는 벽돌의 경우 한장 굽기 위해 소비하는 석탄ㆍ석유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 자연 상태의 흙으로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지구촌이 어떻게 바뀌게 될까. 그리고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흙집에서 살고 있다. 원시로의 회귀가 아니라 현재진행 중인 그리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집 짓기 방법이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