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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7시부터 몰린다···하루 1000명 홀린 이 한옥카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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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월요일 오전 7시, 서울 종로구 계동의 한옥카페 ‘어니언 안국점’의 입구. 최정동 기자

월요일 오전 7시, 서울 종로구 계동의 한옥카페 ‘어니언 안국점’의 입구. 최정동 기자

최근 종로구 계동 일대가 한옥 한 채로 떠들썩하다. 평일에는 오전 7시부터 차려입은 청춘들이 이 한옥으로 몰린다. 3월 문 연 카페 ‘어니언 안국점’이 바꾸고 있는 동네 풍경이다.

폐공장을 카페로 탈바꿈한 ‘어니언 성수점’, 우체국과 카페가 공존하는 ‘어니언 미아점’에 이어 안국점 역시 디자인 듀오 ‘패브리커’의 솜씨다. 재생이 대세라지만, 이들이 매만진 한옥에 왜 청춘들이 열광하는 걸까. ‘어니언 안국점’이 문 여는 어느 월요일 오전 7시, 패브리커의 김성조(36)ㆍ김동규(37) 디자이너를 만났다.

포도청ㆍ한의원ㆍ요정ㆍ한정식집…방치됐던 한옥의 변신

디자인 듀오 패브리커의 김성조(왼쪽), 김동규 디자이너. 최정동 기자

디자인 듀오 패브리커의 김성조(왼쪽), 김동규 디자이너. 최정동 기자

인터뷰 시간을 잡을 때 두 디자이너는 카페가 문 여는 시각인 오전 7시가 좋다고 했다. 하루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는 통에 사진을 찍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최정동 기자

인터뷰 시간을 잡을 때 두 디자이너는 카페가 문 여는 시각인 오전 7시가 좋다고 했다. 하루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는 통에 사진을 찍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최정동 기자

안국점은 가운데 중정을 두고 ‘ㅁ자’로 배치된 한옥이다. 661㎡(200평) 규모로 북촌에서 보기 드물게 크다. 1920년대 북촌은 커다란 한옥을 여러 채의 도심 한옥으로 쪼개 짓는 개발 붐이 일었다. 지금 북촌을 이루는 대다수의 한옥이 그 당시 지어진 것들이다.

카페는 그 개발 물결에서 살아남은 한옥이다. 김성조 디자이너는 “100년 넘은 고택인데, 조선 시대 포도청 관련 건물이었다가 한의원ㆍ요정ㆍ한정식집을 거쳐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고 전했다.

대수선하기 전의 모습. 한옥의 형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진 패브리커]

대수선하기 전의 모습. 한옥의 형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진 패브리커]

불법 확장한 벽체를 다 걷어낸 뒤, 원래 뼈대를 찾은 한옥의 모습. 최정동 기자

불법 확장한 벽체를 다 걷어낸 뒤, 원래 뼈대를 찾은 한옥의 모습. 최정동 기자

긴 세월 동안 한옥은 점점 모습을 잃었다.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모습을 바꿨다. 단열을 위해 천장 서까래는 가려졌고, 공간을 더 넓게 쓰기 위해 마당도 실내 공간화된 상태였다. 김동규 디자이너는 “처음 봤을 때 방 너머 방이 이어지는 오래된 식당 내부밖에 안 보였다”며 “지금처럼 한옥 구조가 잘 보였다면 금방 임대가 됐겠지만, 처음에는 어떤 공간인지 추측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집주인을 찾아가 불법 확장한 면적을 원래대로 돌려놓자고 설득했다. 주인 입장에서는 애써 늘려 놓은 면적을 잃게 되는 셈이다. 둘은 “주말에 마치 섬처럼 썰렁해지는 현대빌딩 주변 상권에서 외국인이 찾아오는 핫플레이스로 만들겠다”고 설득했다.

그리하여 본 모습을 잃은 한옥을 수술대에 올렸다. 원래 뼈대를 찾아내고 덧댄 것들을 발라내느라 철거만 2개월 넘게 했다. 기둥 사이 막았던 벽을 허물었더니, 뻥 뚫린 대청이 살아났다. 김성조 대표는 “우리 문화를 잘 모르는 외국인도 대청에 앉길 원하는 걸 보면, 한국 건축의 힘 같다”고 말했다.

전통한옥 문법 깼는데 “정말 한국적”  

목구조인 한옥의 방은 ‘칸’으로 이뤄졌다. 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을 일컫는다. 한 칸짜리 집은 기둥 간격이 하나뿐인 작은 집을 일컫는다. 조선 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한 칸의 너비가 정해져 있었다. 민가는 1.8m, 사대부는 2.4m, 궁의 경우 3m다. 기둥 간격이 넓을수록 굵고 큰 목재를 써야 하니 이를 규제하기 위해 정해둔 사이즈다. 외국인이 보기엔 한옥 너비가 복도처럼 좁게 느껴지는 이유다.

유리를 과감히 썼다. 입식 공간의 경우 원래대로의 공간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바닥을 주춧돌이 보이도록 낮췄다. 원래 바닥이 있던 곳과 가려져 있던 곳의 기둥 색이 다르다. 최정동 기자

유리를 과감히 썼다. 입식 공간의 경우 원래대로의 공간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바닥을 주춧돌이 보이도록 낮췄다. 원래 바닥이 있던 곳과 가려져 있던 곳의 기둥 색이 다르다. 최정동 기자

그런데 안국점은 칸의 개념을 쓰임에 맞게 자연스럽게 넓혔다. 유리를 활용했다. 빵 진열대가 있는 공간의 경우 기존 한옥의 벽체를 허물고 툇마루 끝 선에 유리 벽을 세웠다. 공간을 넓혔을 뿐 아니라, 기존 한옥 구조를 유리를 통해 관찰할 수 있게 됐다. 중정에서 바라보면 유리 너머 주춧돌 위 기둥이 훤히 보인다.

최근 화재로 지붕을 소실한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도 유리 지붕을 씌워 화재 전·후를 구분하자는 논의가 일기도 했다. 김동규 씨는 “오래된 나무와 흙으로 구성된 기존 한옥을 온전히 보여주면서 공간을 나누고 넓히는 소재로 유리를 활용했다”고 전했다.

한옥은 좌식 공간이다. 바닥에 앉았을 때의 눈높이를 기준으로 공간이 구성됐다. 패브리커는 이때의 공간감을 서 있을 때도, 의자에 앉았을 때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테이블과 의자를 놓은 곳과 서서 다니는 공간의 바닥 높이를 낮췄다.

김성조씨는 “의자 있는 곳은 40㎝, 서 있는 곳은 80㎝가량 바닥을 낮춰, 이전에 양반다리하고 바닥에 앉았을 때의 눈높이를 동일하게 유지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에 맞게 한옥 공간을 재해석한 이들의 디자인은 오히려 옛 한옥 공간을 더 잘 이해하게 한다. 한옥에는 통유리를 못 쓰게 한다거나, 대문은 양쪽으로 열어젖혀야 한다는 식으로 요즘 짓는 한옥을 전통에만 박제하는 공공의 한옥 육성책과 다른 지점이다.

한국의 카페 문화는 ‘공간여행’

 폐공장을 재생시킨 '어니언 성수점'.[사진 패브리커]

폐공장을 재생시킨 '어니언 성수점'.[사진 패브리커]

 패브리커가 디자인한 이니스프리의 쇼룸 '공병공간'.[사진 패브리커]

패브리커가 디자인한 이니스프리의 쇼룸 '공병공간'.[사진 패브리커]

안국점의 일 방문객은 1000명 이상이다. 50% 이상이 외국인이다. 한옥이어서일까. 그런데 성수점 역시 외국인 비중이 30~40%에 달한다고 한다. 두 디자이너는 “외국 관광객도 SNS를 통해 현지 젊은이들이 찾는 ‘핫플레이스’를 찾는 것 같다. 정말 예상치 못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서피스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두 사람이 패브리커로 함께 활동한 지 올해로 10년째다. 그간 이들이 선보인 ‘다름’ 덕에 기업의 러브콜도 줄 이었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이니스프리 ‘공병 공간’,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몬스터의 쇼룸, 신발브랜드 캠퍼 매장 등을 만들었다. 현재 패브리커는 카페 어니언의 아트디렉터로 합류한 상태다. ‘어니언’을 브랜드로 키워나가겠다는 목표다.

두 사람은 한국의 카페 문화를 "여행하듯 공간을 탐험한다"고 정의했다. 최정동 기자

두 사람은 한국의 카페 문화를 "여행하듯 공간을 탐험한다"고 정의했다. 최정동 기자

안국점의 경우 본래 한옥의 뼈대를 보고서 한옥 전문가들이 “잘 지어진 한옥”이라고 감탄했다. 그런 한옥이 이제 북촌에 몇 없다. 값진 것을 값지다 생각 못 하고 빠른 성장을 위해 다 부숴버린 탓이다. 두 청년 디자이너는 “정독도서관을 진짜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바꿔보고 싶다”고 말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위치에 있지만, 역시 섬 같은 곳이다. 아무래도 패브리커의 다름은 버려지고 잊힌 듯한 공간을 재발견하는 눈에 있는 듯하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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