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고추 먹으면 독일기업이 웃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19.11.16 00:02

수정 2019.11.16 00:11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안충기의 삽질일기

한해 농사를 마쳤다. 꽉 찼던 밭이 비었다. 꿈이 하나 있다. 자그마한 땅을 마련해 내 손으로 씨를 받아 키우는 꿈이다. 내 몸 써서 땀흘려 일하고, 수확물은 마음 편한 사람들과 나누고. 꿈이 있으니 하루하루가 새롭다.

<삽질일기> 연재를 시작하며, 내 농사는 매년 3월 마지막 주 서울 종로5가에서 출발한다고 썼다. 종묘상에 들러 씨앗을 구하기 위해서다. 많은 농부가 종자를 사서 쓴다. 씨앗을 받고 관리하는 수고가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개량종들은 수확량이 많기 때문이다. 수익을 남기려면 굵고 크고 많이 거둘 수 있는 품종을 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종의 승자독식을 낳는다.
 
1950년대까지 바나나는 그로 미셸 품종이 대세였다. 맛과 향이 뛰어나고 껍질이 두꺼워 장거리 운송이 가능해 상품가치가 높았다. 그런데 전염병인 파나마병이 돌아 전멸했다. 캐번디시 품종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지금 시장에서 파는 바나나는 모두 캐번디시다. 이번에는 이 품종이 변종 파나마병에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바나나멸종설마저 나돈다. 연구자들이 대체품종을 개발하겠지만 종이 다양하다면 멸종 우려는 줄어들 테다.
 

왼쪽부터 넝쿨강낭콩·아주까리밤 콩·홀아비밤콩·청태·선비잡이콩. 사진기 앞에서 꽤 부끄러워하는 유영희씨를 뒤에 살짝 걸쳤다. 남편 이현재씨는 무슨 눈치를 챘는지 어느 순간 슬며시 사라졌다. 부부 사진 찰칵 작전은 실패.

한국은 개발연대를 지나며 50여년 만에 수많은 종자가 밀려났다. 문득 궁금했다. 이 땅에서 자라던 무수한 종자들은 어떻게 대물림을 하고 있을까. 가평군 현리에 갖가지 토종 콩을 심는다는 분이 있어 찾아갔다. 현리 인근에는 군부대가 많다. 지역경제의 중심은 군인들 쌈짓돈이다. 부대가 주둔지를 떠나 훈련을 나가면 읍내가 텅텅 빈다. 가던 날도 장갑차들이 줄지어 이동하고 코브라 헬기 소리가 요란했다.
 
현리에 얽힌 얘기 한 도막. 내 친구 A가 군대 간 친구 면회하러 현리를 찾아갔다. 아침 일찍 떠나 종일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갔는데 친구를 만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친구 부대는 가평군 현리가 아니라 인제군 현리였다. 인제 현리도 군부대가 많은 동네다. 엉뚱한 산골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와야 했으니 거참.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이야기다.


부부가 농사지은 갖가지 콩. 봉당에 펼쳐놓고 말리는 중이다.

나도 착각했다. 현리인 줄 알고 찾아간 이현재·유영희 부부 댁은 현리에서 포천군 일동 쪽으로 한참을 더 가야 나오는 상판리 우목골에 있었다. 해발 934m 운악산과 해발 1068m 연인산을 앞뒤로 두고 있는 오목한 산골이다. 부부는 초겨울 햇살을 받으며 마당에서 콩을 털고 있었다. 초면 탐색전도 없이 콩 얘기가 쏟아졌다. 녹두·빨간팥·비단팥·밤콩·아주까리밤콩·홀아비밤콩·서리태·청태·선비잡이콩·메주콩·호랑이울타리콩….
 
비잡이콩은 두 뺨에 커다란 점이 있다. 맛이 기가 막혀 선비가 먹물 묻은 손가락으로 집어 먹다가 검은 물이 들었단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송편에 넣어 먹는 콩이다. 1줄을 심었는데 겨우 2포기만 싹이 텄다. 내년에 심으려 모두 종자용으로 남겨 놨다. 홀아비밤콩은 3줄을 심었다. 자랄 때 순을 집어주면 가지가 많이 벌어진다. 콩탕과 콩국 맛이 일품이다. 물에 불리면 손톱보다 커진단다. 껍질이 잿빛인 재팥은 밥에 넣어도 쌀이 물들지 않는다. 1말에 13만원 한다.  
 
이가 늙으면 당연히 노각이 되는 줄 알았는데 종자가 따로 있다. 노각오이는 열매가 크고 무거워 호박처럼 덩굴이 땅을 기도록 놔둔다. 조선오이는 서양오이보다 작고 동그랗다. 동네 할아버지 한 분이 왜오이 모종을 사다 심었는데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거의 다 죽었다. 남은 덩굴마저 노균병이 걸려 말라죽었다. 조선오이는 멀쩡했다. 게다가 서리 내릴 때까지 따먹을 수 있다.
 

산골의 겨울은 빠르다. 김장은 벌써 마쳤고 뒤란에는 배추와 갓이 아직 남았다.

부부는 5년 전에 산골에 정착했다. 아내는 도시에서 꽃집을 했다. 세월호 사태가 삶을 바꿨다. 5월은 갖가지 행사가 많다. 그해, 수백만원어치 꽃을 미리 들여놓았다. 애도 분위기가 이어지며 손님들 발길이 끊겼다. 몇 개월을 그렇게 보내다가 연말에 가게를 내놓았다. 27년을 꾸려온 가게였다. 마침 남편도 회사를 정년퇴직한지라 농촌으로 가기로 했다. 홍천·양평·춘천… 온갖 데를 돌아보다가 우목골에 꽂혔다. 연고 하나 없는 동네였다.
 
운이 좋았다. 옆집 팔순 넘은 송연석 할머니는 토종 씨앗 부자다. 젊어서부터 씨앗을 받고 심어왔다. 부부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봐 온 할머니가 조금씩 씨앗을 나누어주었다. 자신이 지켜온 씨앗을 내리 물림 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할머니는 올해 다리를 다쳐 심어놓은 작물도 제대로 거두지 못했다. 부부는 이렇게 이웃들에게 하나하나 얻은 씨앗들을 심는다. 먹을 만큼만 심고 심을 만큼만 씨를 받는데 매년 종류가 늘어난다.
 
애호박 모종을 사다 심어봤다. 흠결 없이 예쁘장한 열매가 줄줄이 달렸다. 씨를 받아 다음 해에 심었다. 기대를 저버리고 긴 놈, 조롱박처럼 생긴 놈, 휜 놈, 동그란 놈, 울퉁불퉁한 놈… 하나같이 이상한 놈들만 달렸다. 돈벌이가 목적인 종자회사에서 뭔지 모를 처리를 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국내 종자회사들이 무너졌다. 흥농종묘와 중앙종묘는 멕시코의 세미니스를 거쳐 미국 몬샌토에 넘어갔다. 이 몬샌토가 지난해 독일 바이엘에 넘어갔다. 서울종묘는 스위스 노바티스 신젠타를 거쳐 중국 화공그룹이 인수했다. 청원종묘는 일본 사카타 소유다. 2000여 개의 국산 종자 소유권도 함께 넘어갔다. 청양고추는 중앙종묘가 육종했으니 이제 그 씨앗을 사면 바이엘이 로열티를 챙긴다. 제주 감귤의 90% 이상은 일본 품종이다.
 
토종이 최고는 아니다. 많고 많은 종자 중의 일부일 뿐이다. 꽃대가 빨리 올라오는 토종상추는 오래 따먹을 수 있는 외래 종자에 밀린다. 다른 경우도 있다. 같은 아욱 씨앗으로 50년 넘게 농사를 짓는 할머니가 있다. 외래종보다 잎이 풍성해 이웃들이 감탄한다. 할머니는 잎이 특히 크게 자라는 줄기에서 종자를 받는다. 그러니 근친상간이 열성을 만든다며 종자를 주기적으로 바꿔줘야 한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닌 셈이다. 쥐눈이콩을 심어 드시는 할머니는 검은 머리털이 다시 자라고 있단다.
 

저 멀리 운악산. 집 앞으로 흐르는 거울 같은 개울에는 산메기가 산다.

리 사는 김현주씨는 가평의 토종 씨앗을 조사했다. 누군가 나서 보존과 전수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미 할머니들은 오래전부터 이 일을 해오고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2013년에 202종이었는데 올해 조사해보니 64종이다. 노인들이 하나둘 떠나면 종자도 하나둘 줄어든다. 우울하지만은 않다. 송 할머니처럼 평생 씨앗을 지켜온 분들은 자식이건 이웃이건 누군가에게 씨앗을 나누어준다. 집에서 먹으려고 키우는 소박한 이들 손에서 씨앗은 대를 이어가고 있다. 전국 곳곳에 있는 이런 이들이 SNS를 매개로 그물처럼 엮이며 정보를 주고받고 씨앗도 나눈다. 국내 종자 회사들과 당국도 움직이고 있다.
 
부부는 산짐승들이 더 걱정이다. 지난여름 옥수수를 처음 따서 쪄먹고 다음 날 아침에 경악했다. 아침에 나가보니 멧돼지가 줄기를 몽땅 쓰러트려 탈탈 털어먹고 튀었다. 보은에서 가져온 토종찰옥수수였다. 옆집에 나눠준 종자가 살아남아 겨우 한 통을 얻어놓았다. 놈들의 난동에 산에 있는 밤과 도토리도 씨가 마를 지경이라는데, 얘들을 어쩌나.
 
서리 내리고 높은 산에는 눈도 내렸다. 내 밭도 무와 배추를 거두었다.  <끝>
 
그림·사진·글=안충기 아트전문기자 newnew9@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