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일 일본이 경제 보복 조치를 공식화한 뒤 한 달간 대한민국 정·관계와 기업, 민간의 대응을 요약한 말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5위 수출국, 3위 수입국인 ‘경제 대국’ 일본에 예상치 못한 일격을 받은 뒤 혼란을 겪다 민·관이 힘을 합쳐 ‘총력전’에 뛰어들며 점차 화력을 발휘하는 모양새다. 2일 일본 각의(내각)가 화이트 리스트(백색 국가·수출 우대국)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조치를 의결하면 또 다른 고비를 맞는다. ‘장기전’의 초입에 들어선 대한민국호(號 )의 한 달을 돌아봤다.
[일본 경제보복 한달]
헤매다 번뜩 정신 차린 靑·정치권
사실상 일본의 ‘선전 포고’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일요일이어서 확인이 쉽지 않다” “공식 통보받은 바 없다”며 허둥지둥했다. 결국 지난달 1일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로 ‘한 방’을 얻어맞은 뒤 “깊은 유감을 표한다” 수준의 반응을 내놓는 데 그쳤다. 정부의 한 간부는 삼성ㆍSKㆍLG 등의 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업들은 일본에 지사도 있고 정보도 많을 텐데 사전 동향을 파악하지 못했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증폭되기도 했다.
분위기는 4일 수출 규제 조치가 본격화하자 급반전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수위도 높아졌다. “한국 기업에 실제 피해가 발생하면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8일)”→“사태 장기화 가능성이 있다(10일)”→“일본이 우리 경제 성장을 가로막았다. 결국 일본에 더 큰 피해 갈 것이다(15일)”.
대통령 발언에 맞춰 청와대는 대일 전략을 ‘선(先) 외교 봉합, 후(後) 탈일본’으로 선회했다. 일본 대응 전략 관련 부처 회의를 수시로 열어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기획재정부ㆍ산업통상자원부ㆍ중소벤처기업부를 중심으로 일본 의존적이었던 부품ㆍ소재 산업 구조의 체질 개선에 들어갔다.
외교 총력전, 기업 기 살리기 나선 관(官)
초기에는 관망하는 듯했던 기획재정부는 추가경정예산(추경)에 일본 조치 대응 관련 예산을 긴급 추가했다. 지난달 마련한 세제 개편안에서 부품 소재 연구개발(R&D)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등 ‘기업 기 살리기’에 동참했다. 환경부도 화학물질 관련 규제를 일부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가 정책의 방향을 미세하게나마 '친기업'쪽으로 조정하려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외교부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일본과 각을 세우면서 소통에 소극적이었다. 부처 내 일본통을 의도적으로 홀대하기도 했다. 일본과 외교 갈등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지난달 19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를 불러 “지극히 무례하다”며 거친 말을 쏟아낸 장면이다.
‘자력갱생’ 뛰어든 기업
삼성전자 관계자는 “수입선 다변화, 신소재 공정 테스트를 병행하며 혹시 있을지 모를 비상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며 “고객에게 서한을 보내 안심시키는 등 반도체 생산에 문제가 없다는 점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접 타격을 입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타격을 받을지 모르는 기업도 대응에 들어갔다. ‘2차 보복’이 예상되는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가 대표적이다. 일본산 배터리 분리막을 수입해 온 LG화학은 일본산 분리막 물량을 줄이고, 국산ㆍ중국산 수입 물량을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ㆍ아시아나항공과 저비용항공사(LCC)는 일본 노선을 줄이는 대신 중국ㆍ동남아 등으로 노선을 다변화하고 있다. 겨울 성수기를 앞둔 10월 말쯤 추가로 일본 노선 조정에 들어갈 계획이다.
‘보이콧 재팬’ 단결한 민간
이번 불매운동은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국민 스스로 전개하고 갈수록 정교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한ㆍ일 양국 간 분쟁이 있을 때마다 불매운동은 있었다. 과거에 “일본 제품 사지 말자”는 식으로 뭉뚱그린 불매운동을 벌였다면 이번에는 정확한 브랜드ㆍ품목을 선별해 저격하는 식이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불매운동을 이번처럼 광범위하게, 자발적으로 전개한 것은 처음”이라며 “작은 것부터 실행해 옮기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공유해 참여를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