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일본과의 경제 마찰 와중에 안보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사실이 걱정이다. 23일 독도 상공에서 중국·러시아와 우리 공군기 30여대가 뒤얽혀 3시간 동안 일촉즉발 대치상태를 이어간 지 하루 만에 북한이 동해로 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북·중·러의 도발이 약속이나 한듯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간 양상이다. 이 기회를 틈타 일본은 ‘독도는 일본 땅’이라며 영토 도발까지 재개했고 미국은 은근히 일본 편을 들며 우리에게 호르무즈 해협 파병과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한민국을 둘러싼 4강이 한·일 갈등의 틈새를 비집고 외교·안보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국익 챙기기에 나선 양상이다.
한·일 갈등 틈새 타고 열강 한반도 유린
정부 대응 안일 … ‘구한말 회귀’ 불안감
초당적 외교 확립, 전문 인력 중용해야
국정의 핵심은 위기관리다. 하지만 정부는 목소리만 높였을 뿐,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애국심에만 호소하는 건 답이 될 수 없다. 이럴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정권이 바뀌어도 변함없는 외교 좌표를 확립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일본과 협력하면서 중·러와 우호를 증진한다는 원칙을 정파를 초월해 대한민국 외교의 ‘부동 좌표’로 정해야 한다.
외교를 내정에 이용하려는 목적으로 뒤흔드는 행위도 ‘절대 불가’란 원칙에 합의해야 한다. 70년 넘게 주변 아랍 국가들의 위협에 시달려왔음에도 번영을 구가해온 이스라엘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충청도 면적에 인구 860만 소국이지만 ‘일체의 도발을 허용치 않는 단호한 대응’을 흔들림 없는 국가 좌표로 지켜왔기에 “이스라엘을 건드리면 감당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른다”는 인식을 주변국들에 심는 데 성공했다. 이 나라에 뛰어난 외교관과 군인들이 넘쳐나는 것도 국가적인 외교 좌표가 굳건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도 그런 일관된 외교 좌표를 확립하고, 국제사회에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나라’란 인식을 각인시켜야 한다. 현 정부는 지난 2년여 동안 외교·안보 요직에 전문 관료 대신 캠프 측근들을 앉히는 ‘코드 인사’로 일관해 위기를 자초했다. 특히 미국통·일본통 베테랑 외교관들을 ‘적폐’로 몰고 내쫓아 우리 외교의 동맥인 대미·대일 라인을 초토화한 건 뼈아프다. 일본의 경제보복을 예상하지 못해 허를 찔리고, 위기의 순간 미국에 SOS를 쳤음에도 “알아서 해결하라”는 답만 돌아온 것도 잘못된 인사에 상당 부분 원인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제라도 정부는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엘리트들을 외교·안보 핵심 포스트에 배치해 한반도에 밀려오는 외교적 격랑에 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