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희의 맛따라기 - 셰프 유수창이 추천한 막국숫집 5선
2012년 5월 경기도 용인 외진 산골짜기에 문을 연 그의 음식점은 48석 테이블에 하루 회전 30회, 손님 대기 1시간은 보통이다. 지난 10월에는 하루 매출 1030만원 기록을 세웠다. 막국수 한 그릇이 8000원인 걸 생각하면 꿈 같은 얘기다.
겨울 음식 평양냉면과 같은 뿌리
손님 줄어 한갓지게 먹기에 좋아
막국수 맛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면발·국물·스타일 모두 제각각
다음 날인 18일 그의 안내에 따라 막국숫집 5곳을 하루에 순례했다. 추천한 5곳 중 4곳은 익숙한 집이다. 종일 한 음식을 먹는 동안 막국수가 다 그게 그거 아니냐, 그게 무슨 맛이 있냐, 겨울에 웬 찬 음식이냐 하는 반문에 시달렸다. 먹어보니 맛도, 스타일도 제각각이다. 막국수는 메밀로 뽑은 국수 맛을 즐기는 음식이다. 메밀은 결실 때 추워야 맛이 좋고, 대개 늦가을에 수확한다. 겨울은 햇메밀의 제철이다. 막국수는 겨울 음식인 평양냉면과 뿌리가 다르지 않다.
겨울 막국숫집은 손님이 적어 다른 계절엔 길게 줄을 서는 집도 기다리지 않고 좋은 막국수를 즐길 수 있다. 손님이 적으니 종종 문을 닫기도 한다. 전화로 꼭 확인해 보고 출발하길 권한다.
전씨네막국수(강원도 인제읍)
막국수에 오이채, 김 가루, 삶은 달걀을 고명으로 올리고 참깻가루를 듬뿍 뿌렸다. 따로 나오는 붉은 국물은 양념한 김칫국물인데, 배추 물김치 맛이 났다. 상에 올려놓은 비빔 양념장은 좋은 고춧가루에 배·양파를 갈아 넣고 숙성한 듯하다. 너무 달지도, 맵지도 않다. 제 할 일만 딱 하고 주변 간섭은 안 하는 점잖은 양념이라고 일행 5명이 의견을 모았다. 키 작고 알싸한 강원도 갓김치는 치장하지 않은 순수한 맛을 선보인다.
두부 구이도 맛있다. 직접 만든 두부 한 모를 6쪽으로 저며 번철과 함께 내준다. 상에 놓인 들기름을 두른 다음 두부를 올리고 번철을 달궈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구워 먹으면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두부 조각에서 고소한 맛과 구수한 향이 뭉실뭉실 피어오른다. 막국수, 두부 구이 각 6000원.
남북면옥(강원도 인제읍)
순 메밀국수는 겉껍질 벗긴 녹쌀가루로 뽑아 가닥이 티 없이 맑고 고왔다. 질감이 뚝뚝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부드럽고 일정한 탄력도 있다. 따로 나오는 국물은 무·배추·고추씨를 넣고 담근 동치미라고 한다. 무 짠지 국물에 물을 탄 맛이었다. 고명은 오이채, 절인 무채, 참깻가루. 주방에서 끼얹어 나온 비빔 막국수 양념은 단맛과 신맛이 균형을 이룬 보통 막국숫집과 비슷했다.
돼지 수육은 좋은 고기를 골라 잘 삶는 비법이 있는 듯하다. 앞다릿살인데 살과 기름기 배합이 좋아 부드럽고 졸깃하면서 고소하다. 메밀국수 5000원, 돼지 수육 1만원.
현대막국수(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막국수는 국물을 부어서 내온다. 겉껍질이 일부 들어가 국수 가닥은 거뭇거뭇하고, 면발은 부드럽고 졸깃하지만 미끈한 기운이 있다. 전분이 들어갔다는 표시다. 국물은 단맛·신맛이 강하다. 고명은 오이채, 김 가루, 양념장, 참깨·들깻가루, 삶은 달걀을 올렸다. 김과 깨가 많아 메밀 맛을 덮는다. 갓김치와 배추김치는 잘 익어서 맛은 좋았으나 좀 달고 조미료 맛도 올라왔다. 전반적으로 도시인에게 익숙한 맛이다.
의외의 메뉴는 메밀 부침이다. 배춧잎과 쪽파를 번갈아 깔고 부친 얇은 부침은 부드러운 메밀 반죽과 발효된 배춧잎이 어우러져 푸근한 질감에 감칠맛이 충만하다. 메밀물국수, 메밀 부침 각 6000원.
삼군리메밀촌(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김 가루와 통깨 살짝 뿌리고 배 채 서너 가닥 들어간 메밀국수에 무·고추만 들어간 동치미 대접이 따라 나온다. 면발은 매끈하고 말간 상아색이다. 한 젓갈 입에 물면 아련한 향이 퍼지면서 후두두 끊어진다. 사리 반 그릇이 덤으로 나온다. 잠시 있다 보면 국수 가닥이 저절로 툭툭 끊어져 있다. 그만큼 끈기가 없다. 동치미는 냉기가 가시면 희미한 단맛과 칼칼한 뒷맛이 올라온다. 6가지 양념(들기름·식초·설탕·겨자·비빔 양념·간장)을 상에 뒀다. 입맛대로 가미해 먹으라는 뜻이다.
중미산막국수(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여주 천서리 계열 막국수다. 여주인 사분희(67)씨가 그곳의 주방 고수 밑에 들어가 설거지해주며 1년을 배웠다. 이후에도 부부가 연구하고 고쳐서 지금의 새로운 막국수를 일궜다.
곁들일 음식으로 녹두 함량이 높은 빈대떡이 있다. 먹다 보면 다 벗겨내지 못한 녹두껍질이 언뜻언뜻 눈에 띈다. 숙주나물과 절여서 잘게 썬 배추, 잘게 다진 돼지고기의 배합이 적당해 질감이 경쾌하고, 순수한 녹두 맛과 향도 기분 좋다. 막국수 9000원, 빈대떡 1만3000원(1월 7∼10일 휴가).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