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로가 2008년에 출판한 저서의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다가오는 중국 전쟁(The Coming China Wars)』. 전쟁이 단수가 아니라 복수(Wars)로 된 점이 주목된다. 200쪽 조금 넘는 이 책에서 나바로는 중국 경제정책의 불공정한 사례를 실증적으로 상세히 소개한다. 책의 긴 서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미국, 무역 적자 줄이기는 1차 목표
중국의 해군·우주굴기 견제 노려
중국 2007년 인공위성 파괴 실험
미군 위성중계 작전 무력화 노려
현대전은 해상·공중·우주서 결판
남중국해, 동아시아 새 화약고로
중·일 신밀월 오래갈지는 미지수
아·태 국가들의 외교 상상력 필요
나바로의 고발이 중국의 무역 불공정 행위에 국한된 것이었다면 트럼프가 지난 7월 중국 수출품 340억 달러어치에 25%의 관세를 부과하여 중국과의 무역 전쟁의 포문을 열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9월 들어 급기야 트럼프는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상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2017년도 중국의 대미 수출액이 5056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중국의 대미 수출 절반이 관세 폭탄을 맞는 것이다.
“중국 엄청난 날개 퍼덕거려 전 세계에 태풍”
피터 나바로의 여기까지의 설명만으로도 트럼프가 중국을 상대로 세계적으로 인기 없는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벌이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 둘은 중국의 해군 굴기와 우주 굴기를 견제하는 것이다. 중국군 수뇌부는 군사작전을 위성과 인터넷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이 미군의 아킬레스건이라고 간파했다. 2007년 펑윈-1C를 파괴하기 위해 위성공격용 운동 에너지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동시에 발사된 레이저파로 우주를 선회하던 미국의 위성들이 잠시 ‘까막눈’이 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전시 미군의 통합작전 능력을 마비시킬 사이버 무기와 레이저 무기 개발을 꾸준히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미국의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중 일 사이 경제논리로 극복 못할 ‘과거’ 있어
미국은 베트남과의 군사적 제휴를 모색하고 있지만, 베트남은 통킹만을 중국과 나눠 가진 처지라 중국을 자극하는 미국과의 군사적인 제휴에는 일정한 제한을 두고 있다. 베트남에는 하나의 트라우마가 있다. 1979년 중국이 20만 대군으로 베트남을 침공했을 때 믿었던 소련이 베트남을 지원하지 않은 기억이다. 그해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느라 여력이 없었다. 같은 이치로 아직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발이 묶여있는 미국이 중국의 물리적 침공을 받는 남중국해 연안 국가들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냐는 회의를 떨칠 수가 없다.
그때까지는 중국은 인도·태평양에 6개의 항모전단을 배치할 예정이다. 미국의 9개 항모전단은 인도·태평양과 아랍·중동과 유럽, 그리고 서반구와 아프리카 일부에도 전개해야 하는 약점을 안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의 일부 지역의 안전을 지키는 동안 중국은 이 나라의 지하자원을 개발하는 데 여념이 없다. 러시아도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복귀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미국이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아마도 이란에서 제2의 그랜드 체스게임(2nd Grand Chess Game)에 말려드는 것은 그것 자체가 재앙일 뿐 아니라 인도·태평양의 큰 전략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지리적으로 최대의 수혜자는 중국이 된다.
트럼프 정부 출범 초기에 백악관 수석 전략 보좌관을 지낸 스티브 배넌은 대선 기간부터 일관되게 남중국해에서 중국과의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폈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암초와 산호초에 여러 개의 인공섬을 만들어 군대를 주둔시키고 통신·레이다 시설을 만들어 미군 함정들을 감시하고 있다. 미국과 연안 국가들을 심각하게 자극하는 것은 인공섬을 기준으로 주변 22㎞를 중국의 영해로 주장하여 외국 선박들의 항행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미국은 그런 중국의 영해를 인정하지 않는 항행의 자유 작전을 자주 편다. 그 과정에서 지난 9월에는 충돌 직전까지 가는 일촉즉발의 사태가 일어났다.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디케이터함이 항행의 자유 작전으로 난사군도(Sprately)의 게이븐 암초 인근 해역을 통과할 때 중국 해군 함정 란저우함이디케이터함 전방 41m까지 바짝 다가와 자칫 확전의 위험을 안은 해상 충돌이 일어날 뻔했다. 앞으로 이런 사태는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동아시아의 화약고가 한반도에서 남중국해로 이동하는 것 같다.
바다 지배자 가려질 때까지 전쟁·휴전 되풀이
이렇게 미·중무역 전쟁은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의 도전과 미국의 응전의 큰 틀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 시진핑은 부총리 류허(劉鶴)에게 협상을 통한 타협을 지시했지만 일시적인 ‘휴전’은 가능할 수 있어도 중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 무렵 인도·태평양의 강자가 가려질 때까지는 경제 전쟁과 휴전이 되풀이될 것을 관련 국가들은 각오해야 한다.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은 투키디데스의 함정 위협에 노출된 채 경제적, 군사·안보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21세기형의 상상력 넘치는 외교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예일대 정치학자 니컬러스 스파이크먼은 1942년 출판한 책 『미국의 정책과 세계 정치』에 이렇게 썼다. “이 바다(body of water)가 영국도 미국도 일본도 아닌 중국의 공군에 장악되는 날을 예견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지정전략(geostrategy)에 바탕을 둔 스파이크먼의 예언이 멀리 빗나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