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문학동네
오랫동안 나는 외로운 독자였다.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기는 한 것이지 말해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간절하게 혹은 탐욕스럽게 매달릴 수 있는 거라고는 책밖에 없었다. 오늘은 힘들어도 책을 펼쳐 든 순간만큼은 잊을 수 있었다. 다음날 또 힘이 들면 새 책의 페이지를 넘겼다. 그렇게 매일매일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옮겨 다니는 동안 인생의 절반이 흘렀다.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작가는 자신의 책을 통해서 인생의 의미나 가치에 대해서 설명해주지 않는다. 어쩌면 작가는 ‘책’이라는 옷을 입은, 독자를 위한 “헌신적인 청자”가 아닐까.
노벨상 단골 후보 아모스 오즈
가난과 상처 이겨내는 자전 소설
진실과 허구, 개인과 사회 엮어
휩쓸려 가는 독서 체험 선사
이 책은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예루살렘의 한 공동주택의 작은 방을 떠올리며 시작한다. 여름에도 겨울 같이 추웠던 집. 그러나 엄청난 양의 책이 도처에 널려 있던 집. 음식을 살 돈이 부족할 때면 애지중지하던 책을 옆구리에 끼고는 “마치 급소에 찔린 사람처럼” 헌책방으로 가던 아버지의 모습과 열세 살 무렵 스스로 삶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는 집. 그리고 사춘기를 보낸 키부츠 공동체에서 작가가 만난 사람들, 이웃들과의 추억과 정치적 이념의 논쟁들이 흐르는 물결처럼 거대하고 유연하게 펼쳐진다. 진실을 위해서 복원되어야 하는 어떤 훼손된 사실과 역사들이.
진실과 허구, 개인과 사회, 한 사람과 그 옆 사람들의 삶이 직조되듯 얽히고 연결된 사랑과 어둠의 긴 시간들이 흐른다. 그런 시대와 환경과 불행한 가족사를 통과하던 한 소년이 마침내 세계적인 작가가 되어 가는 모습을 독자는 보게 된다. 한 사람의 경험과 삶의 단계들을. 사랑과 허기와 상실과 외로움과 갈망과 욕망과 황량함…. 그 격렬한 삶의 단계의 끝에 이런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사람은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입니다, 낙담하기엔 이릅니다.
그저 외로운 독자이기만 했다가 나는 어느새 읽고 쓰는 사람이 되었다. 좋은 많은 책들이 꿈을 버리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현재이자 곧 과거가 될 오늘, 바로 오늘에 관한 기록을 해나간다면 언젠가는 그것을 이룰 수 있으며 언젠가는 소설을, 책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정말 중요한 것은 가까이 있으며 이웃한 그 겹겹의 삶들을 깊은 눈으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책들은 속삭였다.
세상에는 ‘감정적인 교류’를 나눌 수 있는 책이 있다는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어떤 책은 읽는다기보다 휩쓸려 갈 수밖에 없는 책이 있다는 말도? 감동과 아름다움과 눈부신 슬픔의 힘으로.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가 그렇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두껍고 방대한 소설이다. 이 깊은 가을, 무엇보다 휴식처나 안식처 같은 장소가 필요한 독자를 위한. 세계의 모든 언어에는 하양과 검정이라는 단어가 있듯, 사람의 생에는 사랑도 있고 어둠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그 안엔 ‘이야기’가 있다. 여기에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어떤 꿈은 단번에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어떤 꿈은 조각조각 모여 이루어지기도 한다는 걸 말해주는.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