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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할 수 없는 ‘인간 말종’ 이야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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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호 31면

팩토텀

팩토텀

팩토텀
찰스 부코우스키 지음
석기용 옮김, 문학동네

‘불행은 내 탓인가 사회 탓인가’를 묻는 소설 『팩토텀』은 시인이 쓴 자전 소설이다. 2005년에는 맷 딜런이 주연한 영화(우리말 제목 ‘삶의 가장자리’)로 나왔다.

주인공을 ‘인간 쓰레기’로 단죄할 사람도 많으리라. 주인공 헨리 치나스키는 야비하고 치졸한 구석도 있는 무책임의 화신이다. 하지만 아무리 나쁜 주인공도 주인공은 무치(無恥)다. 헨리는 반영웅(anti-hero)이다. 우리는 헨리에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란 나머지 잠시 당황하다가 공감한다.

작품의 무대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0년대 미국이다. 취업도 쉽고 해고도 쉬운 미국이었다. 주인공은 뭔가를 찾아 뉴올리언스·뉴욕·필라델피아·세인트루이스·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 곳곳을 유랑했다. 이상하게도 가는 곳마다 그를 좋아하는 여성이 그를 기다렸다.

제목 ‘팩토텀(Factotum)’은 무슨 뜻일까. 팩토텀은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일에 종사하는 남자”, 잡역부(雜役夫)라는 뜻이다. 헨리는 술과 여자, 경마에 중독됐다. 섹스에 미친 사람 같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해야 한다. 끊임없이 회사에서 해고 당하고 또 스스로 회사를 떠난다. 항상 돈에 쪼들리지만 굶어 죽을 정도가 아닐 때는 취업에 목숨 걸지 않는다. 근무 태만에 직장 집기를 슬쩍하기는 기본. 자본가를 더 부자로 만들기 위해 직장을 제2의 가정으로 삼는 데는 전혀 관심 없었다.

헨리는 ‘비인간적인 사회’에 저항하는 ‘반사회적인 인간’이다. 계속 실패한다. 노력이 부족해서? 운이 나빠서? 둘 다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글쓰기 만은 자신있다.

헨리는 찰스 부코우스키(1920~1994)의 ‘또 다른 자아(alter ego)’다. 부코우스키 또한 헨리처럼 항상 취한 상태였다. 곱게 취하지 못하고 시비를 걸었다. 부코우스키가 처음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13세였을 때다. 아버지의 상습적인 구타에 술은 유일한 위안처였다.

미국 문학은 부코우스키를 ‘가장 독창적인 작가’ ‘시인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가장 많은 시인들이 모방하는 시인’으로 평가한다.

헨리처럼 살다가 결국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찰스 부코우스키의 묘비명은 ‘시도하지 마라(Don’t try)’이다. 일종의 반어법이다. 부코우스키나 소설 속 그의 분신인 헨리만큼 시도에 따른 실패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인생을 산 사람은 흔하지 않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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