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희의 맛따라기 - 강원도 양구 펀치볼 ‘애플카인드’
밑그림과 자본을 댄 김철호(63) 회장과 관리∙재배기술을 맡은 손기홍(60) 사장이 중심에 있다. 젊지 않은 나이에 사과에 인생을 바친 두 사람이다. 휘하 인원은 김 회장의 세 아들을 포함해 25명쯤 된다.
19만㎡ 단일 사과밭 국내 최대 규모
직접 생산한 퇴비를 보약 삼는 농법
사과, 단맛·신맛 가득하고 과육 단단
상위 1% 사과, 세계 10대 과수원 꿈
원통 가공장에서 22㎞ 북쪽에 있는 사과밭으로 갔다. 펀치볼 서쪽 산자락 중턱, 해발 520~610m에 터 잡은 사과밭은 북위 38도 17분 13초(구글 위성지도 기준) 남한 최북단이다. 19만8347㎡(6만평) 드넓은 구릉에 사과나무 1만5100그루가 자라고 있다. 단일 사과밭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라고 한다. 앞으로 33만㎡(10만평)까지 늘릴 계획이다.
직선거리로 휴전선 이남 5㎞가 채 안 되는 곳까지 사과밭이 북상한 이유는 무엇보다 온난화에 대비한 장기 포석이다. 50년 뒤에도 사과를 재배할 수 있는 지역 중에서 한 자리에 이만큼 큰 농지 매물이 없었다. 펀치볼은 지형의 영향으로 일교차와 연교차가 크다. 여름에도 기온이 30도를 넘는 날이 많지 않다. 바람이 많아 병충해 발생도 적어 사과 재배에 적지라고 한다.
사과 주산지는 경북에서 강원도로 꾸준히 이동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온난화가 지난 100년의 속도로 진행될 경우 2060년 무렵 남한에서 사과 재배가 가능한 곳은 강원도 산간뿐이다. 양구군의 사과 재배면적은 1970년 9.2㏊에서 2015년 96.4㏊로 약 10.5배로 늘었다(4월 10일 통계청 발표). 손 사장 말로는 훨씬 더 넓다. 지난해 1653㎡(500평) 이상 재배 농가를 조사해보니 440㏊(133만평)였다.
퇴비사에는 가로∙세로∙높이 3x10x2m 규격의 퇴비홀 32개를 두 줄로 나란히 설치했다. 침엽수 우드 칩과 쌀겨∙깻묵 등에 효소를 섞어 퇴비로 만드는 발효조다. 105~120일 발효한 퇴비는 6개월 후숙해 나무에 뿌려준다. 흙에 한약 찌꺼기와 골분∙어분∙콩깻묵∙게껍질 등을 섞어 발효한 유기질비료, 유기오일, 강산성(pH 3.9) 액비도 생산한다. 집착에 가깝게 퇴비에 매달리는 이유는, 사과 품질은 땅심에서 나오고 땅심을 지키는 방법은 퇴비가 최선이라 믿기 때문이다.
애플카인드의 사업목표는 ▷상위 1% 사과 만들기 ▷국내 10대 식품기업 ▷세계 10대 과수원이다. 좀 지나치다 싶은 꿈의 씨앗을 외진 산골에 뿌린 사람은 김 회장이다. 꿈을 일구려 2016년부터 올 연말까지 들이는 돈이 93억원이다.
그즈음 썩지 않는 사과 이야기를 소개한 기무라 아키노리(木村秋則)의 『기적의 사과』를 읽고 마음이 동했다. 2009년 국내에 출판된 이 책의 핵심 내용은 나무보다 흙을 먼저 살려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귀농과 안전한 먹거리를 자주 생각했다. 무얼 할지 잘 떠오르지 않아 『기적의 사과』처럼 안전한 사과를 키워보자고 마음먹고 공부하다가 ‘사과 고집쟁이’ 손 사장을 만나 꿈에 날개를 달았다.
학원을 접고 귀농하려는 계획에 부인은 반대했다. 강남에 빌딩을 한 채 사자고 했다. 김 회장은 “안전이야 하겠지만 재미는 없을 테고, 그러면 죽어 있는 삶인데 무슨 의미가 있냐”고 부인을 설득했다. 2011년 정원을 4개 갖춘 55평 펜트하우스를 급히 처분하고 강원도 인제 가리산으로 들어갔다. 현재 살림집이 있는 곳이다.
“삶의 화두가 재미와 행복”이라는 그에게 요즘 행복한지 물었다.
그는 “사람들과 일하고 사과가 자라는 걸 보면 즐겁고 행복하다. 사업 리스크는 부담이다. 준비한 자금이 20% 남았는데 현금이 제대로 돌려면 2년 남았다. 그 걱정 빼면 행복하다”고 답했다.
거대한 그릇 같아 펀치볼… 을지전망대 오르면 한눈에
옛날 이곳은 기운이 습해 사람이 밖에 나가기 어려울 만큼 뱀이 많았다 한다. 어느 스님이 집집이 돼지를 키우라고 알려줘 돼지를 키우자 뱀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지명이 돼지 해(亥), 편할 안(安), 해안이 됐다 한다.
행정구역은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남북 7㎞ 동서 3.5㎞ 타원형 분지다. 전체 면적은 여의도 제방 안쪽(2.9㎢)의 21.2배인 61.52㎢(1860만9800평). 특이한 지형은 둘레에 더 단단한 편마암류, 안쪽에 덜 단단한 화강암이 섞여 있다가 무른 안쪽이 깎여 나가면서 생긴 차별침식의 결과다. 해발 800∼1300m 산줄기가 둘레를 감싸고, 고도 400∼500m의 분지 바닥 면적은 23㎢(695만7500평)이다.
둘레로 북서쪽 가칠봉(1242m), 서쪽 대우산(1179m), 남쪽 대암산(1304m), 동쪽 달산령(807m)·먼멧재(730m) 등 산릉이 이어진다. 가칠봉∙대암산은 추운 겨울날 일기예보에 자주 나오는 이름이다. 대암산 정상부에는 4500년 전 형성된, 국내 유일의 고층습원(高層濕原) 용늪이 있다. 1973년 천연기념물 246호로 지정됐고, 97년 국내 첫 람사르협약 습지보호지역으로 등록됐다.
분지 안에는 바닥과 산자락을 개간한 농지가 여의도의 11.4배인 33㎢(1000만평)에 이른다. 현재는 인삼밭이 가장 많아 전체의 20%쯤 되고, 그다음 많은 사과밭이 점차 늘고 있다.
구글 위성지도에서도 바로 눈에 띄는 해안분지 전경은 한눈에도 장쾌하다. 휴전선 바로 남쪽에 설치한 을지전망대에 오르면 발아래 그 장관이 펼쳐진다. 신분증 제시하고 입장권을 끊어야 올라갈 수 있다.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