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음식만행(飮食萬行) 나폴리 피자
다 아는 듯한데 다 모르는 게 세상엔 많다. 피자도 그렇다. 맞춤법대로 하면 피자인데, 이탈리아 본토에서는 ‘핏짜’라고 부른다. 그래서 서울의 피자와 핏짜는 다른 거라고도 한다. 모 방송국에서 북한의 식당을 찍어왔다. 평양에 ‘핏짜’집이 있었다. 메뉴판에도, 직원들도 그렇게 발음했다. 그 식당의 직원은 말했다. “이딸리아에 료리사를 파견해서 직접 배워온 것입니다.”
우리나라 피자는 그럼 뭘까. 이탈리아에서 배워온 것이 아닌가. 미국산인가. 아니면 우리 양식(洋食)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일본식인가. 궁금했다. 서울에서 제일 ‘핏짜’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집을 찾았다. 이영우(40)씨의 ‘스파카 나폴리’다. 홍대 앞 골목 2층에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 소박한 식당이다.
“2011년 개업하고선 손님이 없어 매일 반죽만 빚어서 버리곤 했어요. 장작은 늘 피워놔야 하니, 오븐은 뜨거운데 제 마음은 차가웠죠.”
서울내기.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다가 어느 날 나폴리로 건너갔다. 피자를 먹어보고 충격에 빠졌다.
“20대에 캐나다에 공부하러 갔었어요. 거기서 이탈리아 친구를 만났고, 나중에 이탈리아로 그 친구를 보러 갔죠. 거기서 피자를 본 겁니다.”
보통 이탈리아의 요리학교는 피자를 잘 가르쳐주지 않는다. 실은 잘 모른다. 피자를 요리의 영역이 아니라 ‘기술’로 본다. 피자 만드는 사람은 장인 정신이 물씬 풍기는, 나폴리의 신기료장수나 재단사 같은 대우를 해준다. 고되다. 그러나 노동자의 영혼 같은 것이 흐르는 직종이다. 피자 기술자(피자이올로·pizzaiolo)는 놀랍게도 유네스코에 보호 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한국식으로 치면 불고기나 설렁탕 요리사가 등재된 셈이다.
“반죽부터라고는 하지만, 실은 반죽이 99%이에요. 소스 바르고 토핑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피자는 반죽에서 성패가 납니다.”
마침 나폴리 화덕에 장작이 활활 타올랐다. 수분이 적당하게 마른 참나무라야 피자를 구울 수 있다. 레이저로 속 온도를 재본다. 화덕 바닥 400도 이상, 공기는 500도를 훌쩍 넘는다. 그가 쓱, 반죽을 꺼낸다. 이스트를 먹고 적당한 온도에서 부풀린 밀가루 덩어리다. 이 덩어리에 99%가 걸려 있다고?
“자, 보세요. 이렇게 손으로 한 번 펴고 들고 두어 번 펴면….”
“이거 완성하는 데 10년이 걸린 셈이에요. 그런데도 매일 다릅니다. 다른 건 몰라도 반죽은 제가 해야 피자가 돼요.”
밀대는 쓰지 않는다. 반죽이 스스로 중력에 의해 늘어지고 그것을 재빨리 모양 잡아 펴주고 넓히는 게 기술이다. 내가 해보면 영락없이 반죽이 늘어지고 한쪽이 이운다. 구멍이 나기도 한다.
“전기 화덕은 금지되며, 장작 화덕에서 구워야 하며, 온도는 섭씨 485도로 한다. 형태는 둥근 모양이어야 한다. 반죽은 반드시 손으로 해야 하며, 크러스트 두께는 2cm 이하로 만들어야 한다. 피자 가운데는 두께가 0.3cm를 넘어서는 안 된다. 토핑은 토마토소스와 치즈만 사용한다.”
“말하자면, 미국식 피자가 만연하니까 숫자를 동원해서 피자의 규정을 만들어본 것이죠. 물론 피자 기술자는 숫자를 염두에 두고 만들지는 않아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단순할수록 어려운 건 세상 이치다. 피자가 그렇다. 이스트·밀가루·물·소금. 반죽을 이루는 요소다. 세간에는 이탈리아 수입 생수에 이탈리아 소금, 이탈리아 밀가루를 넣어야 한다고도 한다.
“저도 그렇게 해봤어요. 중요한 건 전체의 균형을 맞추는 거예요. 반죽을 살살 달래는 거죠. 기온, 물의 온도, 밀가루의 수분 함유량 등을 고려해서 해보는 겁니다. 매일 달라요. 피자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게 아니니까요.”
피자는 배달음식이다. 전 세계 표준이다. 맛도 매우 풍부하고 복잡하게 한다. 칼로리도 폭발한다. 들어가는 재료도 많고, 달고 기름지다. 그 피자에 길들어 있는데 나폴리 ‘핏짜’가 입에 맞을까.
“반죽도 상태에 따라 ‘어리다’ ‘성숙했다’ ‘늙었다’는 말을 씁니다. 인생처럼 바뀌는 거죠. 젊으면 너무 강하게 튕겨서 반죽이 펴지지 않아요. 늙으면 너무 쉽게 퍼져서 탄력이 죽습니다. 버티면서 여기까지 온 거죠. 이제는 밥은 먹습니다. 진짜 피자 팬이 꽤 늘었어요.”
다시 피자로 가보자. 나폴리 피자에는 S.T.G라는 게 있다. Specialita Tradizionale Garantita, 즉 특별전통보증제다. 이 제도에 의하면 나폴리 피자는 두 가지가 해당한다. 마르게리타와 마리나라. 마르게리타는 반죽에 모차렐라치즈, 토마토소스, 바질을 얹어 구워내고 마리나라는 생마늘과 오레가노, 토마토소스가 전부다. 마리나라는 나폴리 사람이 즐겨 먹는 최고의 피자다. 특히 어부가 좋아했다고 해서 마리나라라고 붙었다. 치즈가 들어가지 않으니까 가장 싸고, 가장 토속적이다. 한국에서는 파는 집이 거의 없다. 물론 이영우 피자이올로의 집에선 먹을 수 있다.
“피자는 기본적으로 빵입니다. 빵은 공기에 의해 반죽이 부푼 것이죠. 그게 잘되어야 맛이 좋아요. 소스나 치즈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그가 살짝 고개를 찡그린다. 하나는 만족스러운데, 다른 하나의 공기층이 100%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고, 먹어서 구별도 안 됐다.
“저만 아는 거죠. 어쩌겠습니까.”
결벽증 같은 거다. 한때는 피자가 마음에 안 들면 주방 구석에 숨기도 했다. 손님 볼 면목이 없어서였다. 머리는 20대 때부터 빠지기 시작했고, 다리에 큰 염증이 생겨 3년이나 치료를 받았다. 피자에 대한 결벽증도 한몫했을 것 같다.
촉촉하게 부푼 크러스트와 치즈가 잘 녹아든 피자의 맛이 입에서 풍부하게 어우러진다. 이거 물건인데, 싶다. 한 번 먹으면 모른다. 두 번 먹으면 느낀다. 세 번째는 먹고 싶어서 늘 생각이 난다. 이른바 맛의 몰입 3단계다. 흔한 말대로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밖에 안 먹는 사람은 없다’는 말을 써도 될 것 같다.
그는 2015년 나폴리에서 치른 카푸토컵 세계피자기술자대회에서 클래식 부문 그랑프리를 먹었다.
글 잘 쓰는 요리사. ‘로칸다 몽로’ ‘광화문 국밥’ 등을 운영하며 음식 관련 글도 꾸준히 쓰고 있다. 본인은 ‘한국 식재료로 서양요리 만드는 붐을 일으킨 주인공’으로 불리는 걸 제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