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안티오크 대학선 포옹·터치할 때도 동의 구해야

중앙일보

입력 2018.08.18 01:00

수정 2018.08.18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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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내에서 모든 성적 상호작용은 동의에 기반을 둬야 한다. 성행위의 모든 단계에서 동의는 구두(口頭)로 묻고 구두로 가부(可否)를 답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동의에 의한 성행위나, 말 또는 성에 의한 괴롭힘은 대학 내에서 용인되지 않는다.’
 
오하이오주 남서부에 있는 옐로우 스프링스에 소재한 안티오크 대학에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받게 되는 문서(각서)다. 이에 동의해야 학교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성관계 모든 단계서 동의’ 규정
1990년부터 학생 자율로 채택

합의된 성관계를 의미하는 ‘노 민스 노(No means no)’ ‘예스 민스 예스(Yes means yes)’가 미국 대학가의 화두가 된 건 2000년대 들어서다. 최근엔 ‘미투’ 운동이 일면서 세계적 과제가 됐다.
 
작지만 강한 대학으로 꼽히는 안티오크대는 훨씬 빨랐다. 1990년 성 추문이 제기되자 몇몇 학생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동의에 의한 성관계’ 룰을 만들었고 관련 교육프로그램도 개발했다. 이듬해엔 대학의 공식 입장으로 채택됐다. 이른바 ‘S.O.P.P.(Sexual Offense Prevention Policy·성범죄 방지정책)’다. 성적 관계 시 구두로 소통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의 침묵은 긍정이 아니란 내용이 담긴 8쪽 분량의 문서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끊임없이 공유한다. 캠퍼스를 찾는 외부인들에게도 각서 형태로 제공된다.
 
안티오크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초기부터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반신반의가 대부분이었고 상당수가 냉소적이었다. 당시 AP통신은 “동의가 없으면 포용도 키스도 안 된다(No huggy, no kissy without a yes)”고 보도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흐른 지금 안티오크대는 진화하고 있다. 개인의 사적 공간(가족·친구의 경우엔 30~120㎝) 안으로 진입할 때 사전에 양해를 구하는 방식이다. 포옹·키스는 물론이고 터치도 해당된다. 다른 도시의 싱크탱크에서 인턴으로 일했다는 한 재학생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무심하게 다른 이들을 툭툭 치는 걸 보고 놀랐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 때 어깨를 건드리곤 하는데 안티오크에선 건드리기 전에 양해부터 구한다”고 말했다.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말·감정까지도 염두에 둔다는 얘기도 있었다. 일종의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일상에서의 미묘한 차별)’에 대한 의식이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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