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가에 부는 탈서울 바람
서울이 괜찮습니다
이상빈·손수민 지음
손수민 그림, 웨일북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
배지영 지음, 이와우
일만 하다 시드는 ‘피로사회’
고용 없는 성장, 양극화의 일상화
내일 위해 오늘을 접는 시대 끝나
농촌에서 시작한 ‘인생 2막’
하동으로, 군산으로, 고성으로 …
회계사·디자이너 등 전문가 이주
서울 탈출만이 답은 아니다
쇠락한 을지로 일구는 예술가들
함께 어울리는 도심공동체 기대
김미경 지음, 스리체어스
온다 씨의 강원도
김준연 지음, 온다프레스
힘들어도 괴롭진 않아
원유헌 글·사진, 르네상스
서울의 인구는 2013년 1038만 8000명에서 2018년 984만 5000명으로 줄어들었다. 근대화의 깃발을 올린 이래, 물질주의와 개발주의로 압축되는 ‘서울의 삶’은 누구나 열망하는 우리 삶의 기본 모델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아니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서울 이후의 삶’ 또는 ‘서울 바깥의 삶’을 모색한다. 인간 없는 성장을 기본으로 하는 경제구조의 변화, 역사상 최고의 스펙을 갖고도 해소될 길 없는 실업 속에서 고통당하는 청년들, 그리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작과 연금 세대의 본격적 출현이 이를 떠받치고 있다. ‘서울 탈출’은 이 시대의 메가트렌드다.
그에 따라 ‘서울 바깥의 삶’에 대한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전원생활이나 귀농·귀촌 관련 서적만은 아니다. 수평으로 확장하고 수직으로 융기하는 ‘고층의 모던 도시’는 여전히 매혹적이지만, 책에서 다루는 사람들은 “열심만으로 턱없이 부족한 이 도시”에서 “너무 오래 열심만 쫓다가 연료가 다하는”(『저는 아직 서울이 괜찮습니다』) 이 삶의 가치를 이제 확연히 의심한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적당히 속이며 사는 삶,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이 가진 것처럼 포장하며 사는 삶”(『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 ‘서울 가는 것’이 삶의 목적이자 해결책인 시대는 빠르게 사라지는 중이다.
“큰 프로젝트를 맡아서 선수금 5000만 원이 들어왔을 때였어요. 그제야 제 모습이 보이더군요. ‘돼지’가 된 제가 5.4평짜리 집의 컴퓨터 앞에 덩그러니 앉아 있더라고요. 좋은 학교 나와서 나쁘지 않은 조건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제 꼴이…….”(『온다 씨의 강원도』) 이것이 정말 우리가 바랐던 삶이란 말인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평범하고 따분하고 안온하게 살아가는 지속가능한 일상이 아니었던가.
‘서울 탈출’은 삶의 중심축을 부의 무한성장에서 행복의 지속 가능성으로 옮기면서 시작된다. 젊어서는 돈이 없어 일터에서 죽도록 일해 산업자본 좋은 일만 하고, 나이 들어 살 만하니 아프고 병들어 의료자본의 먹잇감으로 죽어가는 이상한 삶은 이제 그만! 무섭고 숨 막히고 외로워 죽을 것 같은데 자본이 나누어주는 꿀을 빨면서 끝없는 허기를 느껴야 하는 도시의 삶이여, 안녕. 우리한테는 이제 ‘힘들어도 괴롭지 않은’ 인생이 필요하다네.
사실,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만 있다면 굳이 서울에서 멀리 떠날 필요는 없다. 『다시, 을지로』는 을지로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들과 퇴락한 위엄을 자랑하는 세운상가를 배경으로 기술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도심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청년 예술가들을 다룬다. 『저는 아직 서울이 괜찮습니다』는 “더 새롭고 더 발전된 것만을 추구하며 끝없이 변화해 온 서울의 삶”에 인간적 “기억과 추억”을 입혀 따스한 공간으로 바꾸어 가는 일상의 순간을 포착한다. 체온을 나누고 기억을 공유하는 다정하고 친절한 존재들이야말로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들이 아니겠는가.
서울을 떠나 새로운 터전을 꾸미려는 이들이든, 서울의 풍경을 사람이 느껴지게 바꾸려는 이들이든, 서울에서 친밀한 당신을 확인하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려는 이들이든, 이제 우리의 삶에는 일상의 행복을 고양하는 ‘우아한 품위’가, 타인의 존엄을 생각하는 ‘고결한 윤리’가, 인간의 타고난 동등성이 돈이나 권력보다 존중되는 ‘을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이 아니라 삶을 개발하고 싶다. 지방선거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과연 어느 후보가 이 시대의 정신을 우리의 일상을 개발해 줄 심부름꾼인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