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고등학교 교사이자 연극 연출가인 에마드(샤하브 호세이니)는 배우인 아내 라나(타라네 앨리두스티)와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준비 중이다. 어느 날 그들이 사는 아파트가 붕괴 조짐을 보이고, 부부는 같은 극단 배우가 소개한 새 집으로 급히 이사한다. 하지만 아파트에는 전에 살던 여자의 물건이 그대로 남아 있다. 어느 날 집에서 혼자 샤워를 하려던 아내 라나는 벨소리를 듣고 남편이 귀가한 걸로 착각해 모르는 남자에게 문을 열어 준다. 그리고 욕실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머리에 큰 상처를 입는다.
영화 ‘세일즈맨’
감독 : 아쉬가르 파라디
배우 : 샤하브 호세이니
타라네 앨리두스티
등급 : 15세 관람가
영화의 메시지는 하나로 압축하기 힘들다. “숨가쁘게 변화하는 사회 속 인간의 커다란 딜레마를 담길 원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복잡하게 얽힌 딜레마에 직면한 인간을 냉정한 시선으로 관찰한다. 지적인 엘리트인 에마드는 아내의 고통을 다 이해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사건의 실체를 받아들이지 못해 고뇌한다. 에마드가 강한 집념으로 찾아낸 범인은 그가 생각했던 ‘악당’이 아니었다. “이 사람은 내 전부에요”라고 외치는 부인을 기만한, 평범하고 비겁한 인간일 뿐.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에마드 부부는 복수냐 용서냐 라는 딜레마를 마주하고, 그 어떤 선택을 해도 다시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파라디 감독의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그의 영화에서 그려지는 현대 이란의 풍경이 우리가 거쳐왔던, 혹은 거쳐가고 있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등에서는 전통적인 가족관의 붕괴와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갈등과 좌절을 블랙코미디처럼 그렸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집은 늘 공사나 이사로 어지러운데, 이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직면한 이들의 내적 혼란을 보여주는 장치로 읽힌다.
‘세일즈맨’에서는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1915~2005)가 쓴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극중극(劇中劇) 형식으로 보여주며 주제를 보다 분명히 드러낸다. 1930년대 대공황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이 연극은, 감독의 말에 따르면 “이란의 현재 상황과도 강력하게 맞물려 있다.” 지난 2월 열린 제89회 아카데미는 ‘세일즈맨’으로 파라디 감독에게 두 번째 외국어영화상을 안겼지만,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정책에 항의하며 시상식에 불참했다. 그리고 이런 편지를 남겼다. “나는 이 지구의 다양한 인종과 문화, 신앙들 사이에 차이점보다 유사점이 훨씬 크다고 믿는다.” ●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 영화사 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