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용석 기자 parkys@joongang.co.kr
도널드 트럼프(70) 제45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어떤 사람일까. ‘막말하기 좋아하고 오락가락하는 사람’이라는, 언론에 투영된 이미지 외의 면모에 대해선 그의 책들이 힌트를 준다. 그는 1987년 회고록 『거래의 기술』로 작가 데뷔를 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전 세계에서 400만 부 이상 팔린 이 책에 대해 “트럼프의 변칙적 행동 뒤에 숨은 동기들이 나와 있다”고 평했다. 트럼프는 29년간 15권이 넘는 저서를 냈다. 국내에도 번역돼 소개된 10권의 저서를 통해 트럼프의 ‘숨은 동기’들을 짚어봤다.
‘돈 때문에 거래를 하는 건 아니다. 돈은 얼마든 있다. 거래를 통해 삶의 재미를 느낀다.’(『거래의 기술』)
29년간 펴낸 저서들에서 트럼프는 몇 가지 일관된 성향을 보인다. 우선 대부분이 자신의 경영 및 자기 계발 노하우와 투자법 등을 주로 담았다. 그럼으로써 ‘성공한 기업가’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어필하려 했다. 이처럼 다수의 책을 펴낸 것에서부터 자기 어필에 관심이 많은 면모가 엿보인다. 책마다 가족사진과 자신이 소유한 빌딩 사진을 크게 실을 만큼 적극적이었다. 문장은 쉽고 단순하지만 그만큼 직설적이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히 전하고 있다. 모든 책을 혼자 쓴 것은 아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 등과는 공저(『기요사키와 트럼프의 부자』)를 하기도 했다.
[자선을 베푸는 동기는 드러난 것과 달라]
빈부 격차에 대해서도 단호하다. 사탕발림을 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돈을 모두에게 고루 나눠줘도 그 돈은 5년 안에 원래 주인에게 돌아갈 것이다. 가난한 자는 습관 때문에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부수입이 생겨도 금방 탕진해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복권에 당첨된 많은 이가 이전보다 열악한 삶을 사는 이유다.’(『보통 사람들의 부자 되기 90일』) 이 때문에 자녀들에게 돈의 가치에 대해 신경 써서 가르쳐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본인 또한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도 검소했던’ 부모에게서 그렇게 배웠다는 것이다.
스스로 ‘인생의 재미를 느끼는’ 대상으로 꼽은 거래에 대해선 철저히 실리주의적인 면모를 보인다. 『트럼프의 부자가 되는 법』에서 그는 ‘최고의 협상자는 카멜레온’이라며 협상하는 대상의 태도와 행동 등에 따라 매번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갑자기 화제를 바꾸고, 예상할 수 없는 질문을 던져 상대방의 진의를 알아내야 할 때도 있다고 덧붙인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거래가 빠르게 진척되려면 협상안에 관심이 없는 척을 해야 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보다 적극적으로 협상에 매달린다.’ 보다 과감한 표현도 있다. ‘때로는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큰소리를 쳐야 거래가 원활하게 진행된다.’ 그가 일견 오락가락하는 것 같아 보이는 모습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왜 다른 국가들을 압박하는 내용의 공약을 내세웠는지, 향후 대통령으로서 어떻게 ‘협상(외교)’에 나설 것인지 추측하게 하는 대목이다.
[인생은 연기, 스스로 놀림감 돼 대중 사로잡다]
때론 냉혹하리만치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린 채 목표를 달성하는 ‘마키아벨리스트(권모술수주의자)’같은 모습을 드러낸다. 『도널드 트럼프 억만장자 마인드』에 나오는 다음 대목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마저 연상시킨다. ‘직원이 좋아하는 경영자보다는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경영자가 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래야 조직이 안정적으로 가동된다.’
그래서인지 트럼프는 전 세계적인 두려움 혹은 존경의 대상이 되면서 ‘철의 군주’로 통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유독 호의를 보이고 있다.
이 책에선 이런 말도 했다. ‘누가 당신을 공격하거나 당신에게 손실을 입힌다면 망설이지 말고 즉시 되갚아라. 참지 마라. 손실을 회복하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에게 당신이 만만한 상대나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반드시 해내겠다 말하라!』에서도 이를 반복했다. ‘자기 방어를 위해 복수가 필요할 때도 있다. 상대방이 나에게 대접하는 만큼의 대접을 한다. 그래야 나를 똑바로 대한다.’
[거래는 좋아하지만 파트너십은 안 맺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도 매번 고민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엔터테이너가 돼라. 자신을 놀림감으로 삼아라. 사람들이 다가서기 편한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트럼프의 부자가 되는 법』) ‘나는 늘 대중에게 당당히 소신을 전한다. 어차피 할 말이라면 직선적으로 투명하게 신념을 표출하라. 많은 이가 당신 편이 될 것이다.’(『반드시 해내겠다 말하라!』) 또한 강조한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이 연기(演技)라고 생각한다. 이런 진리를 깨달은 사람의 협상력과 홍보·영업 능력은 월등하다.’
그동안 왜 언론 앞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으면서까지 막말을 쏟아내 자신을 어필했는지가 나타나는 대목이다. 대선 승리를 위해 철저히 계산·연출된 설정이었을 수 있겠다는 느낌을 준다. 실제 트럼프는 언론 활용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있었다. ‘언론은 소재가 좋을수록 대서특필한다. 나는 일을 조금 색다르게 처리하고 논쟁이 생기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 언론이 나를 다루지 못해 안달이 났다. 언론이 항상 나를 좋아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떤 때는 나를 헐뜯는 기사를 쓴다. 그러나 순전히 사업적 관점에서 보면 기사가 나가면 늘 손해보다는 이득이 많다.’(『거래의 기술』)
[일본, 자기중심적 무역 정책으로 미국 압박]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덧붙였다. ‘안타까운 점은 수십 년 동안 일본인들은 미국 정치가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도, 반대할 수도 없는 자기중심적 무역 정책으로 미국을 압박해 상당히 부유해졌다는 것이다….’ 책이 출간된 87년 무렵부터 미국이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펼치지 못해 일본 등 다른 국가에 이권을 내주고 있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던 것이다.
트럼프는 확고한 시장주의 가치관을 책들 전반에서 역설한다. 여기에 지난해 펴낸 『불구가 된 미국』에선 대선주자로서 현안에 대한 생각을 풀어내는 한편 자신을 자유주의의 총아로 자처했다. ‘국민 누구나 총기를 자유롭게 소유해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정부의 외교 정책은 자유를 위한 싸움이 돼야 한다.’
『트럼프, 포기란 없다』에서 그는 기다림을 이야기했다. ‘분명 기다릴 가치가 있는 일도 존재한다. 뭔가를 20년 동안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없다면 불평하지 말고, 계속 노력하면서 끈기 있게 기다려라.’ 과거 그는 TV에 나와 “장래에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수차례 정치권을 기웃거리며 꿈을 이루려 애쓰기도 했다. 결국 이번 당선으로 그는 책에서 말한 대로 ‘기다린 가치’를 얻은 셈이 됐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