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도 차면 기운다

중앙일보

입력 2016.09.1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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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5학년 때인가, 선생님께서 국어시간에 “상황이 좋았다가 나빠지는 것을 묘사하는 속담이 뭐가 있느냐”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저는 얼른 “네, ‘양지가 음지되고 음지가 양지된다’ 입니다”라고 크게 대답했죠. 속으로 ‘선생님이 내주신 문제를 또 하나 풀었구나’하는 생각에 흐뭇해 한 것도 잠시, 다른?친구가 더 큰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더군요.?“네, ‘달도 차면 기운다’입니다.”


선생님은 저보다 그 친구 대답에 더 즐거워하셨고, 저는 왠지 모를 패배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제 답변보다 그 친구의 말이 더 ‘있어보였’거든요. 그 뒤로 ‘달도?차면 기운다’는 말은 제 머릿속 깊은 곳에 각인된 속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보니 이 속담이 아주 중요한 말이었더군요. 뉴스에 왜 이렇게 ‘기울어지는 달’들이 많이 나오는지 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마치 ‘항상 차있는 달’이 되기를 원했던 것?같습니다. 혹 자신은 ‘아직 덜 찬 달’이라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고요.


며칠 뒤면 추석입니다(음력 8월 15일이 올해는 9월 15일이네요). 보름달이 뜨겠죠. 그 달을 보면서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하셨다는 조상님 말씀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그 좋은 말씀에 ‘달도 차면 기운다’는 속담이 자꾸 이어지는 것은 요즘 경기가 너무 안좋기 때문이어서일까요, 아니면 스스로를 영원한 보름달이라고 생각한 어떤 사람들에 대한 반발 때문일까요.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