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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로 만든 간장게장이라는 것을 먹어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이전까지 고향에서 먹었던 간장게장은 민물참게로 만든 것이었다. 간장에 오래 절인 거의 젓갈 수준이어서 게의 향은 진했지만 너무 짰다. 밥으로 감싸야 간신히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크기도 아주 작고 게살도 별로 없었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53> 마포 진미식당 간장게장
지금도 꽃게 간장 게장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잊었다 싶으면 그 달콤한 맛이 다시 떠올라 곧 다시 찾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심사 숙고해서 식당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생물로 섬세하게 만드는 음식이기 때문에 게의 품질, 선도, 그리고 만드는 기술에 따라 맛의 편차가 심하다. 게장 간판만 보고 들어갔다가는 후회하기 딱 좋다.
마포에 ‘진미식당’이라는 곳이 있다. 근래에 꽃게 간장게장을 가장 맛있게 먹었던 곳이다. 주위에서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갔다가 팬이 됐다. 메뉴는 오직 간장게장 백반 딱 한가지다. 꽃게의 고장 충남 서산에서 직장을 찾아 상경했던 딸을 따라 서울에 올라온 정복순(63)씨가 그 딸(백민정·39)과 함께 2003년에 차린 곳이다. 처음부터 게장 전문은 아니었는데 게장 맛이 소문이 나서 손님들이 늘어나자 아예 전문점으로 바꿨다. 원래 어머니 정씨는 고향에서도 음식 솜씨로 소문난 분이었다. 여기에 딸 백씨를 비롯한 오빠 백승정(41), 남동생 백승훈(37)씨 등 삼 남매가 모두 어머니를 도와 열심히 일하면서 잘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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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장은 비린내도 나지 않고 잡미 없이 깔끔하다. 간장 양념이 잘 배어든 게살은 입에 넣는 순간 “맛있다”는 탄성이 절로 날 정도로 조화로운 맛이다. 게가 신선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게를 깨끗하게 씻고, 무·고추·생강 등 여러 가지 야채를 넣어 끓여낸 맛 간장에 잘 숙성시키기 때문이다. 듬뿍 들어있는 게 알은 어찌나 감칠맛이 나는지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이 아까울 정도다. 게장이 ‘밥도둑’이라지만 정신없이 먹다 보면 사실 밥을 뜨기도 전에 거의 다 먹어버리기 일쑤다.
밑반찬도 푸짐하고 맛깔스럽다. 매생이보다 더 고급이라는 감태로 만든 쌉쌀한 감태김과 잘 삭은 어리굴젓은 또 다른 별미다. 고춧가루 하나도 직접 산지 밭에서 구입한 태양초를 갈아서 사용하고, 큰 솥에 밥을 한꺼번에 지으면 맛이 없다고 작은 밥솥에 여러 번 밥을 한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이런 정성이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 집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꽃게 간장게장을 먹을 때면 가끔 서울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의 ‘촌놈’ 모습이 생각이 난다. 당나라 때의 문인 장구령(張九齡)은 ‘거울을 비춰 백발을 보다(照鏡見白髮)’라는 시에서 청운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백발이 된 것을 한탄했다.
나 역시 청운의 꿈과 지금 모습은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이렇게 맛있는 진미를 언제든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으니 이 정도면 출세한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하다.
▶진미식당 :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105-127 전화 02-3211-4468 일요일과 공휴일은 쉰다. 손님이 많아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간장게장 백반 1인분 3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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