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많고 통통 제철 암게 밥도둑 중의 밥도둑

중앙일보

입력 2015.02.14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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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이 푸짐하게 박힌 게살이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청양고추가 맛을 더 생생하게 강조해 준다.
역시 서울이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처음 상경했던 젊은 날의 얘기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가야 한다더니 그때까지 알았던 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신천지였다. 음식은 더 새로웠다. 처음으로 먹어보는 별미가 참 많았다. 사람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음식들도 돈을 찾아 꿈을 찾아 모두 서울로 모여들었던 모양이다. 말은 제주도로 갔지만.

꽃게로 만든 간장게장이라는 것을 먹어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이전까지 고향에서 먹었던 간장게장은 민물참게로 만든 것이었다. 간장에 오래 절인 거의 젓갈 수준이어서 게의 향은 진했지만 너무 짰다. 밥으로 감싸야 간신히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크기도 아주 작고 게살도 별로 없었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53> 마포 진미식당 간장게장

하지만 꽃게 간장게장은 완전히 달랐다. 입에서 살살 녹는 푸짐하고 달콤한 살에 크림 같이 부드럽고 감칠맛 나는 알까지, 이런 진미를 서울에 오니까 먹는구나 싶어서 올라오기를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지갑이 얇은 학생 신분이라 자주 먹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지금도 꽃게 간장 게장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잊었다 싶으면 그 달콤한 맛이 다시 떠올라 곧 다시 찾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심사 숙고해서 식당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생물로 섬세하게 만드는 음식이기 때문에 게의 품질, 선도, 그리고 만드는 기술에 따라 맛의 편차가 심하다. 게장 간판만 보고 들어갔다가는 후회하기 딱 좋다.

마포에 ‘진미식당’이라는 곳이 있다. 근래에 꽃게 간장게장을 가장 맛있게 먹었던 곳이다. 주위에서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갔다가 팬이 됐다. 메뉴는 오직 간장게장 백반 딱 한가지다. 꽃게의 고장 충남 서산에서 직장을 찾아 상경했던 딸을 따라 서울에 올라온 정복순(63)씨가 그 딸(백민정·39)과 함께 2003년에 차린 곳이다. 처음부터 게장 전문은 아니었는데 게장 맛이 소문이 나서 손님들이 늘어나자 아예 전문점으로 바꿨다. 원래 어머니 정씨는 고향에서도 음식 솜씨로 소문난 분이었다. 여기에 딸 백씨를 비롯한 오빠 백승정(41), 남동생 백승훈(37)씨 등 삼 남매가 모두 어머니를 도와 열심히 일하면서 잘 자리를 잡았다.


이곳 게장은 우선 게가 아주 싱싱하고 살이 꽉 차있다. 알이 푸짐하게 들어있는 암게만 사용한다. 암게가 제철인 3~5월 사이에 서해안 항구를 거의 한 달 씩이나 돌아다니면서 값이 비싸더라도 신선하고 상태 좋은 활게만 사 모은다고 한다. 일차로 급랭을 한 다음에 물에 담가 얼음 코팅을 해서 냉동 창고에 보관을 해 놓고 사용한다. 얼음 코팅을 해 놓으면 냉동 보관 중에 게의 수분이 빠져나가지 않아서 나중에 해동했을 때 선도가 신선하게 유지된다고 했다.

게장은 비린내도 나지 않고 잡미 없이 깔끔하다. 간장 양념이 잘 배어든 게살은 입에 넣는 순간 “맛있다”는 탄성이 절로 날 정도로 조화로운 맛이다. 게가 신선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게를 깨끗하게 씻고, 무·고추·생강 등 여러 가지 야채를 넣어 끓여낸 맛 간장에 잘 숙성시키기 때문이다. 듬뿍 들어있는 게 알은 어찌나 감칠맛이 나는지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이 아까울 정도다. 게장이 ‘밥도둑’이라지만 정신없이 먹다 보면 사실 밥을 뜨기도 전에 거의 다 먹어버리기 일쑤다.

밑반찬도 푸짐하고 맛깔스럽다. 매생이보다 더 고급이라는 감태로 만든 쌉쌀한 감태김과 잘 삭은 어리굴젓은 또 다른 별미다. 고춧가루 하나도 직접 산지 밭에서 구입한 태양초를 갈아서 사용하고, 큰 솥에 밥을 한꺼번에 지으면 맛이 없다고 작은 밥솥에 여러 번 밥을 한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이런 정성이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 집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꽃게 간장게장을 먹을 때면 가끔 서울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의 ‘촌놈’ 모습이 생각이 난다. 당나라 때의 문인 장구령(張九齡)은 ‘거울을 비춰 백발을 보다(照鏡見白髮)’라는 시에서 청운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백발이 된 것을 한탄했다.

나 역시 청운의 꿈과 지금 모습은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이렇게 맛있는 진미를 언제든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으니 이 정도면 출세한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하다.

▶진미식당 :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105-127 전화 02-3211-4468 일요일과 공휴일은 쉰다. 손님이 많아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간장게장 백반 1인분 3만1000원.


주영욱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대표. yeongjyw@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