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근현대 자수전
최유현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1968).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지난 1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에서 시작한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의 기획자인 박혜성 학예연구사의 말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자수장인 한상수(1935~2016)의 크고 호화로운 ‘궁중자수 모란도 병풍’을 보면 그 높은 가격이 이해가 가고, 또 다른 국가무형문화재 자수장 최유현(88)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을 보면 단순 기능인이 아니라 예술인이고자 했던 그들의 의지를 알 수 있다. 수묵추상 대가 서세옥(1929~2020)에게 밑그림을 요청해 제작한 작품이다.
자수 장인 병풍, 한남동 아파트 한 채 가격
한상수 ‘궁중자수 모란도 병풍’(1978).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전통자수와 현대자수를 넘나들던 이들 중에 박 연구사가 특히 주목한 인물은 송정인(87)으로 그를 위해 전시실에 별도의 방을 마련했다. 1960~70년대의 음악적이고 율동적인 형태의 추상 자수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사실 이 분은 정규교육은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일제강점기부터 자수 보급에 힘쓴 수산 권복해 선생에게 1년 정도 자수를 배운 후 독학으로 놀랍게 성장했습니다. 또한 화방에서 회화를 배웠고 부산 지역 화랑을 돌면서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전통자수로 돈을 버는 한편, 실험적인 현대자수로는 전통 도안이나 자연풍경 대신 정신적인 풍경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죠.”
송정인 '벽걸이' 작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또한 이들이 자수를 하게 된 것은 아직 가부장제가 강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쉽지 않던 시대에 옛 질서와 정면충돌하지 않으면서 경제적 자립과 사회적 지위를 취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적지 않은 한국 여성들이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 자수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보수적인 부모들이 회화나 조각 공부는 허락해주지 않아도 자수 공부는 허락해 주었죠. 이 학교는 ‘예술에 의한 여성의 자립’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 등의 건학 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곳을 졸업한 학생들이 한국에 돌아와 교편을 잡고 그러한 정신을 전파했죠.”
남성 자수장인 집단 ‘안주수’ 작품도 전시
이화여대 자수과 첫 입학생 김혜경의 ‘정야’(1949).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박을복 '국화와 원앙' 1937, 박을복자수박물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한국 근현대 자수' 전시 2부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이번 전시에 여성만의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1부에는 평안도 안주의 남성 자수장인 집단 ‘안주수’의 작품들이 나오는데, 특히 이 집단 소속의 장인 안제민의 ‘자수 지장보살도’(1917)는 사찰 밖에서 전시되는 것이 처음이다. 또한 1부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소장품인 ‘자수 준이종정도 병풍’도 포함되어 있다. 높이 2m를 넘는 스케일과 남청색 공단에 금색 명주실로 단정하게 고대 중국의 청동 제기가 수놓여있는 모습이 매우 장엄하다. “명성황후 집안에 있던 것으로 90년대에 재일교포 역사학자 신기수가 구입한 후 유족에 의해 기증되었다”고 박 연구사는 설명하며 “제사에 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19세기 말 작품 '자수 준이종정도병풍'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소장[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한국 근현대 자수' 전시 제1부 전경 [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