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최근까지 ‘검찰의 마약통’으로 이름난 검사였다. 크고 작은 마약 사건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성과로 검찰총장 표창을 받았고, 검사 임관 9년 만에 검찰을 대표하는 마약 수사 전문가에게 주는 ‘블루벨트(2급 공인전문검사)’를 땄다. 마약 분야 블루벨트 검사는 2013년 공인전문검사 제도 시행 이래 12명뿐이다.
그는 17년 차이던 2022년 퇴직해 마약 전문 변호사가 됐다. 마약 범죄는 특성상 가해자가 대부분 피해자가 되는 범죄다. 마약사범은 마약조직 상선인 총책과 판매·유통 사범은 물론 투약 역시 범죄이기 때문이다. 블루벨트 검사 출신인 변호사의 의뢰인 역시 대부분 마약사범이다. 마약사범 잡던 검사가 마약범의 가장 든든한 방패로 변신한 셈이다.
성범죄 분야 블루벨트를 딴 13년 차 검사 출신 변호사 역시 퇴직 후 경로는 비슷했다. 그는 2019년부터 ‘성범죄 특화 전문 변호사’로 활약 중이다. 2022년 말 12세 미성년자를 성폭행하고 이 장면을 촬영해 성착취물을 제작한 성범죄 피의자를 변호했다. 이 피의자는 지난해 1심과 올해 2심에서 모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전관예우 틈새 ‘新전관’ 부상한 벨트 검사 타이틀
중앙일보가 이들 마약통 및 성범죄 전문 변호사를 포함해 ‘벨트 검사’ 289명(블랙 8명, 블루 281명)의 명단을 입수해 전수조사한 결과, 89명이 퇴직해 78명이 현직 변호사로 활동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벨트 검사 출신 변호사 대부분은 벨트 취득 사실을 활용해 ‘전문 변호사’로 홍보하고 있다. 각 로펌 역시 “블루벨트 출신 검사 영입” 등의 문구를 마케팅에 활용한다.
다른 변호사는 퇴직 이후 변호사 사무실을 연 뒤 ‘검찰 내 최고 성범죄 전문가 출신’이라는 점을 홍보에 활용했다. 검사 시절 성범죄 사건 수사·공판 매뉴얼을 제작·개정하는 데 참여했던 그는 이제는 월별로 기소유예·혐의없음·무죄 종결사례를 공개하는 등 ‘성범죄 전문 변호사’로서 실적을 홍보하고 있다.
수사 전문성을 쌓은 검사가 퇴직해 변호사가 된 뒤 범죄 피의자를 변호하는 건 당연히 합법적인 일이다. 법률 서비스 수요에 따라 전문성을 사건 수임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역시 시장 논리의 결과이기도 하다.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중앙일보 취재에 “벨트를 취득하는 것은 검사 입장에서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고, 그만큼 사건을 보는 눈이 밝고 경륜이 있다는 뜻”이라며 “(퇴직 후) 가해자 측이 잘못을 반성하고 재범에 이르지 않도록 도와 달라고 한다면 이를 이끄는 것도 변호사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1급 블랙벨트 이종근 ‘다단계 변호’가 촉발한 수임 윤리
사회적 관심이 쏠리거나 혐의가 중대한 범죄일수록 벨트 검사 출신 변호사를 찾는 경향은 두드러졌다. 마약 상습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유아인의 변호인단에 마약 분야 블루벨트를 보유했던 고위 검사 출신 변호사의 이름이 올라 있어 논란을 일으킨 것도 단적인 사례다.
벨트 검사의 사건 수임 윤리는
해당 변호사는 “전문성이 있는 분야에서 사건을 맡는 것이 의뢰인 입장에서도 더 도움이 되지 않겠냐”며 “검사 시절 피해자를 위해 수사를 하다 피고인을 변호하는 것을 비판하는 의견도 있겠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많다는 점을 봐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벨트 검사가 범죄자를 잡는 칼에서 변호인으로 전직한 뒤라도 이해 충돌의 여지가 없도록 검사 시절 수사·기소한 피의자는 피하는 등 절제된 수임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벨트 검사 출신의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검사 시절 공직에서 쌓은 수사 전문성을 범죄자 변호에 사용하는 만큼 스스로 사건을 가려서 수임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피해자들 돈으로 수임료를 받거나 피의자 죄질이 흉악한 경우라면 더욱 윤리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벨트검사의 두 얼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2825
②[단독] 세금 쏟은 '벨트검사'…퇴직자 40%는 10대 로펌 갔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2813
③[단독] 기업 수사한 '벨트검사'가 분식회계 변호…"일정기간 막아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30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