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아픈데, 심적으로 초조하면 더 아파요. 병원에 의사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진료 대기 시간이 1분이라도 줄어들겠지.”
전공의 집단 사직 4주차에 접어들면서 의료 파행이 지속되자, 보건복지부는 중증·응급 환자의 수술과 진료 지연 등 현장 부담을 덜기 위해 이날부터 4주간 빅5와 국립대병원을 포함한 상급종합병원 20곳에 군의관 20명, 공보의 138명 등 총 158명을 투입했다. 이들 중 40%가량은 서울 시내 병원으로 배치되며, 각 병원에서 이틀간 사내 교육을 받고 오는 13일부터 진료에 본격 투입된다.
이날 신촌세브란스·서울아산 등 빅5 병원 일부를 돌아보니, 병원들은 중환자실과 응급실 등 중증·응급 환자가 많은 과 위주로 군의관과 공보의를 투입할 준비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수술 전 마취나 야간 당직 등 의료 공백이 큰 영역부터 메울 예정이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수술과 진료 지연에 지쳤던 김씨 같은 환자들은 “그나마 숨통 틔인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세브란스병원에서 전립선암 수술을 받고 통원 치료 중인 이모(67)씨도 “지금 병원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군의관이든 누구든 응급 처치할 수 있는 의사가 있으면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정부 대타협 등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환자도 있었다. 방광암으로 7년째 세브란스병원을 내원한다는 윤모(84)씨는 “원래 오늘 수술받기로 했는데 4월로 미뤄졌다. 경과를 계속 살펴보며 수술 일정을 조율 중”이라며 “88년도부터 폐기능 저하로 내원해 왔는데 이렇게 혼란스러운 병원은 생전 처음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군의관 몇 명을 여기다 투입하면 군 병원은 어떡하냐. 보건소에서도 의사들 빼오면 지역 환자들은 어디로 가냐”라며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돌려막기식 방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응급실 대기 중이던 김모(75)씨도 “본인 하던 일도 아닌데 정부가 대뜸 가서 일하라 그러면 군의관이라도 좋다 할까”라며 “정부가 양보하고 타협해야 아수라장이 해소될 것”이라고 했다.
파견의 대부분 진료·수술이 대폭 축소된 필수의료 분야에 배치됐지만 상당수는 실제 큰 도움은 안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파견된 공보의 중 전문의(46명)보다 일반의(92명)가 많은 데다 성형외과 등 필수의료 전문의가 아닌 경우도 상당수여서다. 7년 차 국립병원 간호사 A씨는 “파견의의 능력치에 따라 어쩌면 마이너스일 수 있다”며 “다만 간호사에게 의사 업무를 떠넘기는 상황에서 의사가 한 명이라도 더 있는 게 낫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날도 응급의료센터나 암 병동 등 필수의료 분야에서 혼란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날 오후 12시쯤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응급실 앞은 두꺼운 패딩 점퍼를 껴입고 야외에서 대기하는 환자들로 긴 줄을 이뤘다. 의료진이 직접 밖으로 나와 대기하는 환자의 맥박과 체온 등을 체크하기도 했다.
김씨는 “원래 아산병원을 다니는데, 춥고 급하니 일단 옮기려고 한다”며 “언제 진료 볼 수 있냐 물어봐도 확답을 안 해준다. 1시간이 지나도록 대기 줄이 줄지 않는다”고 했다. 환자 이송 후 2시간째 응급실 문 앞 대기 중이라는 강동소방서 소속 구급대원은 “다른 병원도 받아주지 않아 여기로 왔다. 들어가면 또 바로 출동, 대기하는 무한 반복 근무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