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26일 취임사에서 “사법행정이 재판의 지원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법관 인사에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권한을 덜어내고 위계서열적 조직 구조를 해체하는 일에 몰두했다. 차관급인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를 폐지하고, 행정처 근무 판사 수를 3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 또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해 일선 법관들이 법원장 후보를 선택하게 했다. 법원장의 권한이던 사무 분담(판사들이 어떤 재판을 담당할지 정하는 절차)을 각 법원에 설치한 사무분담위원회의 몫으로 돌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강한 행정처’의 해체엔 ‘시스템의 부재’란 부작용이 따랐다.
재판 지연 현상도 심화했다. 한 변호사는 “김 대법원장 체제에서 인사 등을 통해 판사들에게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줬고, 그 결과 재판 지연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은 모든 법조인이 공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이 느끼는 피해 감정은 법조인보다 더 클 것”이라고도 했다.
지난 6년간 손대지 못한 상고심 적체 문제도 남아 있다. 한국처럼 1년에 사건을 3만 건 이상 보는 대법원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양 대법원장 시절 ‘상고법원’을 따로 만드는 과제를 추진했으나, 입법을 위해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시도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그게 ‘사법농단’이었는지를 두고 4년 넘게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정작 상고제도 개선 논의에는 진전이 없다.
하급심을 강화해 상고심 사건 수를 줄이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란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판사 증원은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변호사 등 법조 경력을 갖춘 이들을 법관으로 임용하는 법조일원화 제도 실행 이후 인력 수급 자체가 어려워졌단 문제도 있다.
한 변호사는 “법관들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하고 보수적이기 때문에 사법부에선 무엇을 추진하려 해도 반발이 있기 마련”이라며 “새 대법원장은 이들을 끌고 갈 힘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균용 후보자는 자기 생각이 확고하고 주도적인 인물이어서 ‘사법부의 정상화’ 측면에서 본인이 직접 챙길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