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방위 대응 부실 정부 책임이 우선
안보 현실에 무감각한 것도 한 원인
외부 상황과 내부 군사적 균형 변동
늦었지만 민방위 문제 잘 챙겨 봐야
안보 현실에 무감각한 것도 한 원인
외부 상황과 내부 군사적 균형 변동
늦었지만 민방위 문제 잘 챙겨 봐야
한반도의 안보 상황에서는 ‘상호확증파괴(MAD)’와 같은 대응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한 일면이 있다. 외부의 위협 없이도 북한 체재가 존망의 위기에 빠진다면 권력층은 주변과 동반 자살을 하려 할 수도 있다. 북한 핵 위기 초기에 핵 대피소 제안을 한 것은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상상하기에도 끔찍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피해 규모를 줄여 세상을 새롭게 이어갈 사람들이 살아남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민방위 체제가 부실하다고 하기보다 없는 것과 거의 마찬가지가 된 현실에는 정부의 책임이 우선이겠지만, 일반 국민들이 우리 안보 현실에 관하여 비정상적이라고 할 만큼 무감각한 것도 한 원인이 아닌가 한다. 정부로서도 핵 대피소 같은 문제는 뒤로 미뤄둔 채 북한과의 관계를 잘 관리해 비핵화도 이루고 나아가 평화와 함께 궁극적인 통일도 이룰 수 있으리란 낙관에 의지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런 현실의 배경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적어도 정전 협정이 발효된 지 두 세대가 넘는 기간 동안 정부는 큰 위기 없이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이런 성공을 뒤돌아보는 것에는 두 가치 차원의 고려가 있다. 첫째는 국내적 차원이다. 정전 이후에 양측 모두가 협정의 규약을 충실하게 지킨 것은 아니었지만, 특히 북한은 여러 가지로 군사적인 도발을 지속적으로 감행했다. 천안함 폭침 같은 특수 형태의 소규모 도발에서 울진·삼척 공비 사건 같은 상당 규모의 병력이 동원된 비정규전 양상을 보인 것도 있었다. KAL기 폭파나 대통령 암살 기도도 있었다. 휴전선 인근에서 상당한 규모의 비정규전을 감행해 한때 양측의 사상이 수백의 규모에 이른 일도 있었다(문관현, 임진스카웃 Imjin Scouts 1965~1991 참조).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면서 정치·경제 양면에서 세계적 수준의 발전을 기할 수 있었던 것은 한·미동맹을 기축으로 하는 저지와 상황 통제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차원에서 한국전쟁 이후에는 주변 강대국들이 모두 한반도에서 또 한번의 위기가 발생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겼다. 이런 외적 요인도 한반도에서 일정한 안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 정전 협정 이듬해에 열린 이른바 정치 회담에서 몰로토프 소련 외무장관은 영국의 이든에게 ‘한반도에서 남북한이 함께 살기 위해서는 한동안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뜻의 말을 건넸다. 이제는 한반도 안과 밖 모두에서 새로운 상황을 맞고 있다. 외부의 상황도 내부의 군사적인 균형도 그렇게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이 늦었지만 민방위 문제를 챙겨볼 때이다.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