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되는 ‘국제결혼 지원 조례’
국제결혼 지원 조례가 속속 폐지되고 있다. 지난 3월 31일 경상남도 창원시도 ‘창원시 농촌거주 미혼남성 국제결혼 지원 조례’의 폐지를 입법예고 했다. 충북 괴산군도 지난 3월 20일 관련 조례의 폐지를 입법예고 했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국제결혼 지원 조례 폐지에 나선 지자체만 10여 곳이다. 충북 음성군, 금산군, 경북 울진군은 2021년 12월에, 경기 양평군은 지난해 1월에, 전남 화순군은 2월, 충남 부여군은 4월, 경기 남양주시와 충북 증평군은 9월, 경상남도는 12월에 관련 조례를 폐지했다.
국제결혼 지원 조례는 대부분 관할 지역 내 거주하는 ‘미혼 남성’이 ‘외국인 여성’과 결혼을 한 경우 국제결혼에 든 비용을 일부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농어촌 총각’ ‘미혼자’ ‘농어업인’ ‘결혼이민자 가정’ 등 지자체마다 지원 대상도, ‘만 35세 이상 50세 이하 미혼 남성’ ‘만 35세 이상 미혼 남성 농어업인’ 등 연령 기준도 다르지만 조례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지원 금액은 300만원부터 1200만원에 이른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영농의욕 고취, 인구증가 도모, 저출산 고령사회 대응, 농촌사회 활력 도모 등을 위해 제정됐다.
인구 유입 위해 시행했지만 “매매혼 조장, 성차별 문제”
결혼중개업체를 통한 국제결혼이 단기 속성 과정처럼 이뤄져 여성을 상업화한다는 비판도 일었다. 실제로 2020년 여성가족부가 국제결혼 중개업의 현황을 조사한 결과, 국제결혼 커플의 만남부터 결혼식까지 소요된 기간은 5.7일에 불과했다. 한국인 배우자가 낸 결혼 중개 수수료는 평균 1372만원에 달했지만, 외국인 배우자가 낸 수수료는 69만원에 그쳤다. 기간과 지불금액만 놓고 보면 두 사람이 서로 평등한 관계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결혼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연령차도 만만찮다. 한국인 배우자의 연령은 40~50대(81.9%)가 대부분이었지만 외국인 배우자는 20대(79.5%)가 가장 많았다.
인권위·여가부도 정책 개선 권고
박복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20년 여성가족부가 시행한 국제결혼지원사업 특정성별영향평가에서 “국제결혼지원사업은 결혼이주여성을 ‘사올 수 있는 상품’으로 인식시키는 인권침해 문제가 있다”며 “지역 거주 남성의 국제결혼을 지원하기보다는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해당 연구를 바탕으로 여성가족부는 2021년 각 지자체에 “일회성 사업을 지양하고 다문화 가정의 역량 강화와 이주여성 인권이 향상될 수 있도록 사업 운영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국제결혼 지원 조례 및 사업 정비를 권고했다.
대부분 지원 대상자를 남성으로 한정해 성차별적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남아있는 33개의 국제결혼 지원 조례 중 21개의 조례명에는 여전히 ‘농촌총각’‘농어촌 미혼남성’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외국인 여성’과 결혼한 ‘남성’으로 지원 대상을 한정한 곳은 27곳에 달한다. 지원 대상을 ‘외국인과 결혼한 미혼자’로 성별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은 곳은 6곳에 불과했다. 이 경우에도 대부분 처음에는 지원 자격을 남성으로 제한하다 조례를 개정해 성별 제한을 없앤 것이다.
조례 남아있는 지자체 33곳 중 8곳만 시행
조례가 남아있는 33곳 중 17곳은 조례 개정 또는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강원도는 2020년 ‘농어촌 총각 국제결혼 지원 조례’를 ‘농어업인 국제결혼 지원 조례로’ 개정한 데 이어 조례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올해부터 예산도 배정하지 않고 사업을 중단했다. 강원도 관계자는 “조례 개정으로 지원자 성차별 문제는 해소됐지만, 매매혼 조장과 가정폭력 문제 등을 고려해 중단한 상황”이라며 “농촌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결혼을 안 하는 추세다보니 수요가 줄어든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 정선군도 조례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정선군은 올해 최대 6가구까지 지원이 가능하도록 3000만원의 예산을 배정했는데, 이미 3가구가 신청해 수령한 상태다. 수요가 있어 사업을 진행하고는 있지만, 앞선 문제들이 제기돼 일회성 지원보다 3년에 걸쳐서 계속 정선군에 거주했을 때 지원하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다. 정선군 관계자는 “지원 대상에 있어서도 성별 제한이 없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국제결혼만 지원하는 것을 재고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올해부터 국제결혼 지원을 중단한 삼척시는 “일반 국민의 결혼도 어려운 상황에서 국제결혼만 지원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중단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7일 폐지안을 입법 예고한 충남 서천군이 “신설된 결혼정착금 지원 정책이 미혼자 국제결혼 지원에 관한 조례를 보완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배경과 다르지 않다. 서천군은 올해부터 결혼 후 지역에 정착하는 신혼부부에게 최대 770만원을 분할 지급한다. 국제결혼의 경우 국적 취득 후 신청이 가능하다.
지원자 적어 실효성 없다는 지적도
결혼정보업체 리스토리 이현숙 대표는 “국제결혼중개업법에 의해 국제결혼을 위해 준비할 것이 많아졌는데, 농어촌에서 농어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해당 요건을 다 갖추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농촌이나 오지에 사는 남성과 결혼을 원하는 외국인 여성은 거의 없다”며 “외국인 여성들도 이제는 단순히 가난 때문에 국제결혼을 원하는 게 아니어서 외모, 직업, 학벌, 재산 등 다양한 면모를 고려해 배우자를 선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