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사색] 눈물의 중력

중앙일보

입력 2023.04.15 00:20

수정 2023.04.15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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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중력
신철규
 
십자가는 높은 곳에 있고
밤은 달을 거대한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한 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눈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눈을 감으면 물에 불은 나무토막 하나가 눈 속을 떠다닌다
 
신이 그의 등에 걸터앉아 있기라도 하듯
그의 허리는 펴지지 않는다
 
못 박힐 손과 발을 몸안으로 말아넣고
그는 돌처럼 단단한 눈물방울이 되어간다
 
밤은,  
달이 뿔이 될 때까지 숟가락을 멈추지 않는다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문학동네 2017)
 
한낮의 길에서 울고 있는 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는 양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 있었는데 그 탓에 눈가를 닦아 낼 수도 없는 듯했습니다. 저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습니다. 슬픔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감정을 감추고 삭이고 삼키는 것을 어른스러움이라 여기며 살아가지만 울음만은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있습니다. 베개에 얼굴을 묻거나 책상에 엎드려 울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요. 하지만 불현듯 눈물이 다다를 때 우리는 도리 없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게 됩니다. 혼자 울 시간이 필요하니까. 눈물을 들키기 싫으니까. 다시 얼굴에서 손을 뗄 때쯤 슬픔이 조금이라도 잦아들기를 바라며.
 
박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