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사진전 ‘메이드 인 창원'이 보여주는 새로운 세상

중앙일보

입력 2023.04.02 09:40

수정 2023.04.0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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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사진영상전 ‘메이드 인 창원(Made in GHANGWON)’ 전시장. 사진 서정민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가 아니고 ‘메이드 인 창원(Made in GHANGWON)’이다. 오늘(4월 2일)까지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사진작가 김용호씨의 사진영상전 제목이다.  
창원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러 기업이 밀집해 있다. 그중에서도 LG전자의 글로벌 신제품이 탄생하는 요람 ‘LG전자 스마트파크’는 45년 간 창원과 함께 성장해왔다. 김 작가의 이번 사진영상 작품은 지난해 이곳에서 탄생한 ‘LG 무드업 냉장고’를 중심으로 산업과 인간, 기술과 아트, 일상과 현장의 교감을 담아낸 것이다.      
창원컨벤션센터의 가로 60m, 세로 40m짜리 대형 공간에 들어서면 텅 비어보이면서도 가득하다.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이 공간은 김 작가가 창원이라는 도시를 축소해 ‘신비로운 창원’을 표현한 것이다.  

김용호 사진영상전 ‘메이드 인 창원(Made in GHANGWON)’ 전시장. 사진 서정민

전시장 중앙에는 김 작가가 창원이라는 도시가 생기기 전부터 존재했던 우주적 존재를 상징하기 위해 제작한 지름 7m의 대형 구(球)가 공중에 떠 있다. 전시장 한쪽 벽면에 설치된 가로 50m, 세로 9m에 달하는 대형 스크린에선 무드업 냉장고의 일부분인 부품들과 케이블, 작업대 등의 클로즈업 사진이 추상화처럼 흘러간다. 더불어 작업현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창원의 도시 풍경 사진이 가로지른다.  
전시장 한 가운데 자리 잡은 ‘메디테이션 챔버’ 공간 역시 김 작가가 제품 테스트 공간인 ‘챔버’에서 영감을 얻어 설치한 작품이다. 내부로 들어서면 무드업 냉장고 문을 끊임없이 여닫는 테스트 과정이 담긴 영상이 나오는데, 김 작가는 “실제로 공장에서 규칙적으로 끝없이 진행되는 품질 검사 장면을 보노라면 명상의 단계가 떠오른다”고 했다.  
“무드업 냉장고가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겉면의 패널 색이 자유자재로 변하는 것이 마치 감정을 지닌 생명처럼 보였어요. ‘메디테이션 챔버’ 속 영상은 냉장고 문을 열고 닫으면서 컬러가 변하는 과정을 체험해보도록 한 공간이에요. 기술은 사람의 명령에 의해 변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영상을 보고 있으면 냉장고가 인간의 상상 이상으로 스스로 감정을 표현하며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서 우주와 인간 그리고 명상이라는 단어를 절로 떠올리게 되죠.”  

김용호 사진영상전 ‘메이드 인 창원(Made in GHANGWON)’ 중 전시장 한 가운데 자리 잡은 ‘메디테이션 챔버’ 공간. 김용호 작가가 제품 테스트 공간인 ‘챔버’에서 영감을 얻어 설치한 작품이다. 내부로 들어서면 무드업 냉장고 문을 끊임없이 여닫는 테스트 과정이 담긴 영상과 함께 명상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진 서정민

김용호 작가가 거대한 기계들이 무심히 돌아가는 현장에서 찰나와 역사의 흔적을 포착해 새로운 사진아트 작업을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남들은 모르고 지나쳤을 기계의 질서정연한 움직임, 수없이 긁히고 남은 작은 흠집들을 깊숙이 관찰·채집해서 추상표현주의 회화, 아트 오브제로 승화시키는 것은 그만의 독특한 시각작업이다. 2013년 현대자동차의 글로벌 캠페인 ‘리브 브릴리언트’를 진행하면서 촬영한 사진들은 광고사진임에도 ‘브릴리언트 마스터피스’전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외 갤러리에서 수차례 전시를 가졌다.  
이번 LG전자 ‘무드업 냉장고’와의 협업에선 공장과 기계가 품고 있는 흔적 외에도, 한 대의 냉장고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땀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 연구원·장인·노동자들의 모습도 함께 담았다. 또 45년간 ‘LG전자 스마트파크’와 함께 성장해온 창원의 로컬리티도 담아냈다.            
“모든 생산품에 대한 가치를 재료와 돈으로만 보지 말라는 거죠. 공기밥 하나에도 자연과 농부, 요리사의 손길이 함께 있어요. ‘메이드 인 창원’이라는 제목은 수많은 노동력과 에너지의 집합체로서 창원이라는 지역을 다시 보고, 자연의 위대함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노동의 숭고함을 느껴보자는 거죠.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한 헌사이자 기록으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까지 잡아내고 싶었죠. 창원 LG구장 응원단의 음성까지 담아냈다면 더 좋았을 텐데.”(웃음)  

김용호 사진영상전 ‘메이드 인 창원(Made in GHANGWON)’ 전시장. 사진 서정민

‘메이드 인 창원’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는 “김용호 작가 덕분에 이미 아는 거라고 생각했던 풍경도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했다. “어느 임원은 ‘내가 매일 보는 콤프레셔가 이렇게 아름다운 오브제인 줄 처음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무드업 냉장고 패널의 컬러를 만드는 일을 비롯해 많은 부분들이 장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작업이에요. 이분들이 마지막까지 품질의 완벽을 위해 물고 늘어지는 것을 보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죠. 이 고집쟁이들의 이야기를 어떡하면 소비자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김용호 작가를 떠올렸죠.”
이 상무는 “김 작가님의 사진을 본 직원들에게서 정말 많은 메일과 문자를 받았다”고 했다. “‘내가 20년을 넘게 일하면서 이렇게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던 게 처음이다’ ‘공장 바닥의 세월의 흔적을 보며 눈물이 났다’ ‘아들이 크면 꼭 보여주겠다’ ‘우리 회사의 구성원으로서 자긍심이 생겼다’ 등등의 사연들이었죠. 사진영상 마지막에 창원공장 구성원들의 얼굴이 등장하는 장면에선 모두 울컥했다고 해요.”
혁신적인 냉장고를 연구하는 산업현장, 최고의 사진 미학을 추구하는 예술현장. ‘메이드 인 창원’ 사진전은 완벽을 추구하는 이들의 에너지가 모여 우리가 미처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소개하는 자리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