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 사랑하라' BTS 메시지, 20여년 전 장국영도 노래했죠"

중앙일보

입력 2023.04.01 10:00

수정 2023.04.02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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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스타 장국영 20주기(4월 1일)를 앞두고 지난달 30일 홍콩문화박물관이 마련한 '레슬리, 당신이 너무 그리워' 전시회에 생전 장국영의 무대 의상과 사진, 영화 필름과 음악 앨범 등 60여점이 전시됐다. 레슬리는 장국영의 영어 이름이다. 장국영은 2003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세상을 등졌다. 연합뉴스

추모 콘서트 티켓이 동이 나고 20여년 전 입은 공연 의상을 보려는 팬들이 전시회장에 줄을 잇는다. 1일 20주기를 맞은 홍콩 스타 장궈룽(장국영‧張國榮·1956~2003)의 추모 열기가 뜨겁다.  
홍콩에선 생전 출연작과 소장품을 담은 전시회가 박물관‧지하철 역사 등에서 열리고, 장궈룽이 자주 콘서트를 했던 1만2000석 규모 홍함체육관에선 스타 지인들이 뭉친 초대형 추모 음악회를 개최한다. 
한국에서도 그가 경극 배우 역할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1993), 량차오웨이(양조위·梁朝偉)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도는 동성 연인이 된 ‘해피 투게더’(1997) 등 대표작이 재개봉해 이날 예매율이 각각 10‧16위에 올랐다.  
1980~90년대 류더화(유덕화·劉德華), 저우룬파(주윤발·周潤發), 량차오웨이 등과 함께 홍콩 영화·칸토팝(Cantopop‧홍콩 대중음악)의 전성기를 이끈 그의 팬덤은 여전히 살아있는 스타 못지 않다. 홍콩인에게 ‘오빠’란 뜻의 ‘꺼거’(哥哥)는 지금도 장궈룽이 영구 임대한 단어다. 영화 ‘천녀유혼’(1987) 촬영 때 상대역 왕쭈셴(왕조현·王祖賢)이 장궈룽을 처음 ‘꺼거’라고 부른 뒤 그의 공식 애칭이 됐다.  
 

장궈룽 팬 갈수록 젊어져…사후 팬덤 '후영미' 

섭소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천녀유혼’(1987). 촬영 당시 왕쭈셴(오른쪽)이 장궈룽을 '꺼거'라고 부른 게 지금껏 팬들 사이에선 장궈룽의 애칭이 됐다. 사진 조이앤시네마

그가 불과 46세의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홍콩 센트럴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앞에 몰려드는 팬들은 해가 갈수록 오히려 젊어지고 있다. 그의 요절 이후 팬이 된 10~30대들이 많기 때문이다. 
유튜브‧SNS 등으로 장궈룽의 출연작, 콘서트 영상, 음악을 접하고 빠져든 이들을 기존 팬을 뜻하는 ‘영미(榮迷)’와 구분해 ‘후영미(後榮迷)’라 부른다. 이런 현상을 논문 ‘후(後) 장국영 시대 팬덤의 정체성과 사회문화적 함의’(2018), 에세이집 『아무튼, 장국영』(2021) 등에 담은 고려대 중어중문학과 오유정 교수는 "후영미’는 중국판 위키피디아 ‘바이두 바이커’ ‘후둥 바이커’ 등에도 등록되어 쓰이는 명칭"이라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장궈룽 팬카페, 위챗 채팅방 등 최근 팬 활동이 가장 활발한 것도 이 세대다. 자신도 10대 시절 장궈룽에 빠져 중어중문학과 교수까지 됐다는 오 교수(그의 e메일 주소는 장궈룽의 영어 이름을 딴 ‘leslie-love’로 시작한다)는 장궈룽의 사후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확대된 팬덤을 “일반적인 스타 팬덤에서 볼 수 없던 특수 현상”이라 설명했다. 지난달 30일 그의 고려대 사무실에서 만난 자리에서다.  
장궈룽의 팬덤은 매년 기일(4월 1일)과 생일(9월 12일), 401‧912란 이름을 단 추모 행사를 홍콩‧중국‧한국‧일본‧동남아 등에서 진행하고 있다. 사망 10주기였던 2013년엔 전세계 팬들이 동참해 그의 생일(1956년 9월 12일)을 뜻하는 195만 6912마리 종이학을 접어 기네스 신기록에 오르기도 했다. 2016년 탄생 60주년을 맞아 새로운 공식 팬클럽이 조직되기도 했다.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 리샤오룽(이소룡·李小龍) 등 요절한 스타들이 사후에 사랑받은 양상보다 더 적극적이고 독특한 사례다.  

장궈룽이 국제 무대에 주목받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패왕별희'. 사진 제이앤씨미디어그룹

량차오웨이(왼쪽), 장궈룽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헤매는 동성 연인으로 출연한 영화 '해피 투게더'는 1997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돼 이듬해 한국에도 개봉했다. 사진 디스테이션

오 교수는 “후영미는 미디어에 능숙하고 그렇게 접한 장궈룽의 영화와 노래에 매료돼 그 가치를 재평가하고 장궈룽을 단순한 ‘스타’에서 ‘예술가’로 승화시키고자 한다”면서 "한국 등에 아시아 문화 패권을 넘겨준 이후 세대인 이들이 중화권(홍콩) 대중문화가 각광받던 시기의 문화적 자부심을 되새기는 심리도 있다"고 봤다.  

장궈룽 팬 돼 에세이집·논문까지 쓴
오유정 고려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장궈룽 사후 팬덤 '후영미' 배경은…"

"BTS '나 자신 사랑하라' 메시지, 장궈룽 20년 전에…"

이어 “중국이 잘 사는 시대에 혜택 받고 자란 젊은 세대는 외동 자녀가 많고 이전 세대에 비해 경쟁이 치열해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면서 "이런 세대에게 장궈룽이 노래로 전해온 인생관이 통했다"고 해석했다. 
“방탄소년단(BTS)의 ‘나 자신을 사랑하라(Love Myself)’는 메시지를 이미 20여년 전 장궈룽은 ‘나는 나(I Am What I Am)’란 노래를 통해 전했다”는 그는 장궈룽 팬덤 규모가 가장 큰 상하이 추모회 때 만난 갓 스무살의 후영미들이 “온라인으로 ‘꺼거’를 알게 됐다. 장궈룽의 노래는 저평가됐다. 매일 꺼거 노래를 듣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1999년 영화 '성월동화'로 내한 당시 신라호텔 다이너스티 홀에서 장궈룽이 상대역 배우 다카코 토키와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이다. [중앙포토]

세대를 초월한 이러한 메시지는 한국에서도 통했다. 후영미가 한국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아무튼, 장국영』을 읽고 찾아온 20대 장궈룽 팬들의 부탁으로 2021년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패왕별희’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기도 했다. 
장궈룽의 팬덤은 전세계 5억명 정도로 추산된다. 국적 분포는 2007년 인터넷 팬카페의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 1393명 중 중국‧홍콩‧대만 등 중화권이 923명(66.26%)이고 나머지는 일본‧한국‧싱가포르‧캐나다‧미국‧말레이시아‧호주‧영국‧프랑스‧러시아‧이탈리아‧스위스 등으로 초국적 성향을 띠었다. 
 

장궈룽 열성팬덤 배우보다 파격 가수 행보 반했다

홍콩 스타 장궈룽 20주기(4월 1일)를 앞두고 홍콩문화박물관이 마련한 '레슬리, 당신이 너무 그리워' 전시회에 공개된 장궈룽의 생전 콘서트 의상. 연합뉴스

이런 적극적인 팬덤 중엔 배우로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량차오웨이나, 왕자웨이(왕가위·王家卫) 감독 영화를 보는 걸로 시작해 함께 출연한 장궈룽에게 빠진 이들도 있지만, 당시 설문 조사에선 가수로서 장궈룽을 더 좋아한다는 응답(61.09%)이 영화배우로서 장궈룽을 좋아한다는 응답(38.77%)보다 많았다. 
장궈룽은 배우가 되기 전 1977년 가수로 먼저 데뷔했다. 오 교수는 “영화 속 우울하고 불안정한 모습도 있지만, 가수 장궈룽의 팬들은 그의 밝고 선한 영향력에 끌린, 요즘 BTS 팬덤을 닮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통적인 남성상에 대한 관념이 무너지면서 (동성 연인이 있고 중성적 이미지였던) 장궈룽의 다양한 면모가 지금 더 주목받게 됐다”고 분석했다. 1997년 콘서트에서 붉은 하이힐을 신고 남성 댄서와 전위적인 춤을 선보인 장궈룽은 그 자리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 어머니와 동성 연인에게 중국의 대표적인 사랑가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해요(月亮代表我的心)’를 선사했다. 당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이런 파격은 매스컴의 공격 대상이 됐다. 
2000년 콘서트에선 그의 긴 머리, 유명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의 무대 의상 등 중성적 차림을 두고 일본 공포영화 ‘링’의 사다코(원혼) 같다고 비꼬는 보도가 쇄도하기도 했다. 이렇게 비난의 대상이 됐던 그는 이젠 오히려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 ‘주체적 자아의식의 상징’이 되어 후영미에게 사랑받고 있다.
 

에세이집 『아무튼, 장국영』(2021) . 사진 코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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