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경영권 지키며 뉴욕시장…미국은 주식 처분 대신 관리

중앙일보

입력 2023.03.27 05:00

수정 2023.03.27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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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드 포드 전 미 대통령(우)과 넬슨 록펠러 전 부통령(좌).

 
주식 백지 신탁제도(Blind Trust) 제도는 미국에서 처음 도입된 제도로 태생부터 거대 자본가의 공직 진출과 관련이 깊다.
 
‘워터게이트 사건’ 발생 후 1974년에 대통령이 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넬슨 록펠러를 부통령으로 지목했다. 록펠러 부통령은 미국 석유 재벌인 록펠러 가문 출신으로 당시 평가액으로 1억1600만 달러에 달하는 주식을 취임 전 백지 신탁했다. 당시는 이를 의무화하는 제도가 없었는데도 그가 이런 선택을 하자, 이후부터 고위공직자가 직무 관련성이 있는 주식·채권을 보유할 경우 신탁회사에 맡기는 게 관행으로 자리 잡게 됐다. 또 고위공직자의 이해 상충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가 커지자 1978년 ‘정부 윤리법’이 제정되면서 백지신탁이 법제화됐고 이후 ‘연방규정’을 통해 상세조건이 보완됐다.
 
미국 백지 신탁제도는 신탁자의 입김을 배제한 채 수탁자가 자산을 ‘관리·운용’한다는 데 방점이 있다. 보유 주식을 처분하지 않고 거대 포트폴리오에 편입시켜 관리하는 것도 가능한 구조다. 다만 그 운용은 까다롭다. 미국은 주식·채권·펀드 등 재산 중 1000달러(약 130만원) 초과액은 백지 신탁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미 정부윤리국(OGE)은 2019년 가상화폐도 백지 신탁 대상에 포함했다. 또 백지 신탁이 결정될 경우, 공직자-수탁자 간 정보를 완전히 차단한다.
 
반면 한국의 경우 주식백지 신탁심사위원회가 직무 관련성을 인정할 경우, 해당 주식을 사실상 매각하도록 강제한다는 게 가장 큰 차이다. 한국에서 수탁기관은 백지 신탁계약을 맺은 뒤 60일 이내 신탁된 주식을 처분하게 돼 있어, ‘백지 매각제’란 말도 나온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역임한 헨리 폴슨. 연합뉴스

 
물론 미국에서도 공직자가 보유 주식을 반드시 매각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정부윤리국이 고도의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해 처분을 통보할 경우인데, 개인의 재산권을 중시하는 미국에서 이런 판단은 제한적이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블룸버그 통신사 경영권을 포기하지 않고 공직을 지켰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처분 통보를 받지 않았다.
 
미국은 직무 관련성이 있는 주식을 매각할 경우 시세차익에 대한 소득세도 면제해준다. 골드만삭스 CEO 출신인 헨리 폴슨 재무부 장관이 2006년 취임할 때 6억 달러 상당의 골드만삭스 지분을 전액 처분하며 5000만 달러의 소득세를 면제받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직무 관련성에 대한 규정이 모호한데다, 국민 정서상 이를 미국보다 훨씬 폭넓게 적용한다. 임지원 전 금융통화위원의 경우, 2018년 5월 취임 당시 미국계 투자은행인 JP모건 주식 약 8억원 어치를 보유한 것이 논란이 됐다. 한국 금리로 미국 주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해상충’이란 압박 속에 미국 주식을 모두 처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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