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전선 정보전쟁] 이란 핵 저지 사투 펼친 이스라엘 모사드
1979년 이란혁명에 성공한 호메이니정권은 당초 핵개발에 소극적이었다. 핵개발은 반(反) 이슬람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라크와의 8년 전쟁과 이란 혁명이후의 국제적 고립, 서방의 경제재제 등으로 국력이 약해지자 호메이니 정권을 이어받은 하메네이 정권은 역내 맹주국가로 다시 발돋움하기 위해 비밀리에 핵개발을 추진했다. 모사드는 이 같은 이란의 핵개발 동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란 핵개발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외부의 폭로에 의해서였다. 2002년 이란 반정부단체인 국민저항위원회(NCRI)가 이란이 비밀리에 핵개발을 하고 있다고 폭로한데 이어, 2004년 파키스탄의 칸 박사가 자신이 이란·북한·리비아에 원심분리기와 핵 기술을 판매했다고 시인했다. 파키스탄 핵무기의 아버지로 불리는 칸 박사는 우라늄을 가스로 바꿔 이를 원심분리기에 주입해 핵폭탄 제조에 필수적인 농축 우라늄-235를 추출해낸 유명한 핵과학자다. 그의 증언은 이란의 핵개발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시설 파괴 공작 등 전방위 전개
우선 우방국과 정보공조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2005년 모사드·CIA·영국 MI6와 3각 정보협력을 가동한데 이어, 2007년에는 비밀리에 미국 번스 국무부 차관(현 CIA국장)을 만났다. 외교적 압박과 국제제재, 핵개발 물자의 이란유입 차단 등 공개적 수단에 중점을 두면서도, 한편으로는 특수 비밀공작도 추진하기로 조율했다. 미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든든한 발판을 마련한 모사드는 특수 비밀공작부터 바로 착수했다. 먼저 이란이 도저히 방어할 수 없는 창의적인 공격 방법을 찾는데 집중했다. 그래야 비밀공작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방법 중 하나로 미국 신호정보기관인 국가안보국(NSA)과 협력하여 사이버공격을 실시하기로 하였다. 기존의 사이버공격은 이란이 이미 대비해 놓았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낮으므로 아직까지 한 번도 알려지지 않는 보안 취약점(소위 ‘제로 데이 Zero Day 취약점’)을 찾아내어 이란이 사이버 공격을 탐지해도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공격방법을 개발하기로 하였다. 실행에 들어간 모사드는 이란이 농축우라늄 추출을 위한 원심분리기의 제어시스템을 독일 지멘스사 제품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나탄즈 핵시설에 근무하는 러시아 엔지니어 컴퓨터를 해킹한 것이다. 이란 핵시설의 ‘제로 데이’ 취약점을 찾아낸 모사드는 스턱스넷(stuxnet)이라는 신종 컴퓨터 바이러스를 개발하여 지멘스사 제어시스템에 침투시켰다. 스턱스넷은 가령 초당 1000회 돌아가는 원심분리기의 회전속도를 1만회 돌아가도록 변환시키는 등 제어시스템을 교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따라서 원심분리기를 계속 회전시킬 경우 불규칙 변환에 따른 과열로 폭발하게 된다. 스턱스넷 공격을 받은 이란은 예상대로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 그 결과 나탄즈 핵시설내 원심분리기가 망가져 이란 핵개발 계획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이 뿐만 아니다. 스위스의 명문 공학자가문인 티너(Tinner)가(家)를 통해 이란에 결함이 있는 전기 공급 장치를 비밀리에 판매하여 원심분리기를 망가뜨리는 등 핵실험 불능화 공작을 과감하게 실행하였다. 2020년 이스파한·파르친·나탄즈지역 핵관련 시설의 원인 모를 연쇄 폭발사고, 2023년 이란 초음속 미사일 개발 시설에 대한 드론공격 등 시설 파괴 공작은 거의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란 핵개발을 약화시키기 위한 모사드의 공작이 전 방위적으로 전개된 것이다.
모사드는 사이버 공격에만 그치지 않았다. 핵개발 관계자 암살 등 전통적인 정보수단도 동원하였다. 특히 이 공작에는 소위 그림자전쟁(shadow war) 개념을 도입해 이란을 심리적으로 압박하였다. 모사드의 개입이 분명해 보이지만 물리적 증거를 남기지 않음으로써 마치 그림자처럼 이란을 괴롭히는 것이다. 그림자 전쟁은 광범위하게 실행되었다. 2008년 8월1일 이란의 핵개발을 적극 도와주고 있던 시리아의 무하마드 슐레이만 준장이 별장에서 저녁 파티를 즐기던 중 별장 앞바다에 잠수해있던 암살자의 총탄에 맞아 희생되었다. 2010년 11월 29일에는 마지드 박사와 페레이둔 박사 등 핵개발 계획의 책임자급 두 사람이 차량폭탄으로 희생되었다. 모두 모사드의 공작이라는 추측은 있었으나 물증은 없었다. 2011년 7월 23일 핵물리학자 네자드 피살 사건, 2012년 이란의 핵개발 과학자 4명의 연쇄 피살, 2020년 이란 아마드 핵프로젝트 총책임자인 파크리자데의 원격조종 기관총에 의한 피살 등 증거 없는 제거공작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연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모사드의 비밀공작으로 인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은 아직도 완성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물론 모사드가 이란의 핵개발 지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는 정확하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정보활동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집트의 극우 신문인 알 아흐람마저도 모사드가 이란의 핵개발에 극심한 타격을 입혔다고 평가할 정도로 모사드의 역할이 주효한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만약 모사드의 비밀공작이 없어 이란 핵개발이 완성되었다면, 이스라엘의 안보는 물론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정세와 핵전쟁 우려가 커지고 있는 국제안보정세는 어떻게 되었을까. 살얼음판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치밀하고 대담한 모사드의 비밀공작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아랍과 국제안보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란 핵개발 아직도 완성 못 해
근대 국가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영국의 대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국가운영에 있어서 정보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그 국가의 영속과 국민의 안전 보장이며, 이를 위해 비밀 정보활동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정보활동에 실패한 지도자는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책임져야 할 숭고한 의무를 방기한 것으로 보았다. 토마스 홉스가 살아있다면 북핵과 마주하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조언을 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