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시네마 역사
1976년 만들어져서 실로 세상을 ‘한판 뒤집어 놓은’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은 적어도 군국주의에 대한 자신들 내부의 편향성, 그 페티쉬적 최애(最愛) 성향에 대해 성찰과 반성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1936년이 배경이고 아베 사다라는 이름의, 게이샤가 직업인 여인이 내연남의 성기를 갖고 다니다 경찰의 불심 검문에 걸려 체포됐었던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삼는다. 영화는 내내, 아니 온통 이 두 남녀의 애정 행각, (종종 실제 벌이는) 섹스 장면으로 도배돼 있어 국내에서는 오랜 동안 극장 개봉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작품이다. 당시 칸영화제에서 주요 부문인 감독주간에 상영되는 등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국제적 명성을 비약시켰던 작품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등 OTT에 언컷(uncut) 버전인 감독판이 올라 있지만 여전히 문제되는 장면은 블러 처리가 돼있다.
‘전쟁보다는 섹스가 낫다’고 생각
사람들은 무력했다. 무엇을 한다는 것에 염증을 일으키던 시대였다. ‘감각의 제국’의 주인공 이시다 기치조(후지 타츠야)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거리에는 연일 만주국으로 파병되는 군인들의 시가행진이 이어진다. 고급 요정을 하며 살아가는 이시다는 그 길가 한켠에서 행진을 흘끔거리며 서 있다. 그는 전쟁에 나서지 않는다. 사람들의 환호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일은 자신의 기생들과 노닥거리며 사는 것이다. 그는 그게 좋다. 특히 근자에 만난 새로운 기생 아베 사다(마츠다 에이코)와 엄청난 탐닉에 빠진다. 그는 ‘전쟁보다는 섹스가 낫다’고 생각한다.
1945년 패전 직후 일본의 몰락한 풍광을 그린 영화 ‘비용의 처’는 비록 2009년에 만들어진 현대 작품이지만 과거 전쟁을 겪었던 일본 내 지식인들의 내면이 얼마나 처절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비용의 처’는 다자이 오사무의 반(半)자전적 작품이다. 소설가 오타니(아사노 타다노부)는 꽤나 인정받는 작가지만 가끔씩 글을 쓰는 일 외에는 오로지 술과 여자에 빠져 산다. 그가 더욱 더 빠져 있는 것은 자살충동이다. 아내 사치(마츠 다카코)는 그런 남편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그녀는 결국 빚과 생활고를 이겨 내기 위해 갓난아이를 들쳐 업고 도쿄의 한 주점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결국 오타니는 다른 여자와 함께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비용의 처’에서 ‘비용’은 1400년대에 활동했던 프랑스 낭만시인의 이름이다. 시인의 삶은 아름다울 수 있지만 그의 아내의 삶은 비참할 수 있다. 국가와 국익은 늘 앞세워질 수 있지만 국민과 대중의 삶은 늘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1945년 직후 일본 사회가 무슨 생각을 했고, 군국주의가 남겨 놓은 생채기가 얼마나 깊고 쓰라린 것이었는가를 영화 ‘비용의 처’는 우회적이나마 낱낱이 고백하고 있다. 2009년 일본 영화계는 적어도 수십 년 전의 인물 다자이 오사무를 통해 당시의 역사적 과오를 되돌아 봤던 셈이다. 실제로 다자이 오사무는 1948년 애인과 함께 동반자살 했다. 오사무의 죽음 이후 많은 일본 젊은이들의 자살이 잇따랐다.
‘종전’이라는 표현, 반성 의미 퇴색
극장 개봉 전 NHK 스페셜 드라마로 먼저 방영됐던 ‘스파이의 아내’는 그러나, 몇 가지 지점에서 오류를 범했는데 그 중 하나가 여전히 패전이란 단어보다 종전이란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건 일본인들에게 매우 중요한데 1945년의 종전은 일본 천황이 스스로 전쟁 중단을 선언한 것이지 실제로는 패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전히 과오에 대한 반성보다는 자기변명이 심한 용어인데 NHK작이어서 그런지 이 단어의 기호가 갖는 상징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스파이의 아내’는 군국주의 파시스트의 시대에 일본에서도 저항의 인물들, 올바른 인간관과 정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음을 보여준 작품이다. 기요시 감독이 얘기하고 싶었던 것 역시, 그렇다면 현재도 그런 인물들이 일본사회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보인다.
일본 영화계가 일본의 군국주의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 국내에 소개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2016년 하라다 마사토 감독이 만든 ‘일본 패망 하루 전’이란 작품은 8월15일 항복 선언 직전 하루 전, 아나미 고레지카(야쿠쇼 코우지) 육군대신을 중심으로 이를 막으려는 군인들의 쿠데타와 역쿠테타의 얘기를 그린 내용이다. 도조 히데키 등 전범들을 다룬 영화 ‘동경심판’은 일본산(産)이 아니고 중국산이다. 미국의 스탠리 크레이머가 1961년 만든 ‘뉘른베르크 재판’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그렇다. 일본은 여전히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는 데 있어 한참 떨어진다. 그래서 늘 세계를 분개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