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경기도 용인시 남사읍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는 정부 계획에 호응해 대규모 투자 방침을 밝히면서 용인이 세계적 반도체 도시로 떠올랐다. SK하이닉스 중심으로 추진 중인 원삼면 반도체 클러스터와 이번 남사읍 프로젝트를 더해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생기면 글로벌 반도체 패권 다툼 속에서 K반도체가 새롭게 도약할 계기가 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15일 삼성전자는 정부가 2042년까지 용인에 조성하는 710만㎡ 규모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에 향후 20년간 30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곳에 첨단 반도체 공장 5개를 구축하고, 국내외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회사) 등 최대 150개 기업을 유치할 계획이다.
삼성 “20년간 300조원 투자 계획”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은 “처인구 원삼면 일대에 이미 415만㎡ 규모의 메모리 클러스터 조성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이런 가운데 남사읍에 산업단지를 조성하기로 한 것은 반도체 초격차를 지속하기 위한 현명한 판단”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SK하이닉스가 120조원을 투자한 원삼면 클러스터에는 SK하이닉스와 50여 개 소부장 기업이 입주할 예정이다.
700조원 생산 유발 효과 기대
경계현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장(사장)은 이날 “신규 단지를 기존 거점과 통합 운영해 최첨단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은 화성·기흥은 메모리·파운드리·연구개발(R&D), 평택·남사읍은 첨단 메모리·파운드리 핵심 기지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업계는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가 ‘실리콘 쉴드(방패)’의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화 단지 지정으로 반도체 생태계가 강화하면 국제 무대에서 K반도체가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는 분석이다. 과거 장중머우(張忠謀) TMSC 창업자는 “TSMC로 인한 실리콘 쉴드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공격으로부터 대만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첨단 클러스터가 ‘실리콘 쉴드’ 역할”
전문가들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인력 양성에도 더 힘써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공장 짓기가 워낙 힘든데 정부가 나서서 부지와 인프라 구축을 해주겠다는 뜻”이라며 “미국의 제재가 심해지니 미국 투자를 최소화하고, TSMC처럼 자국 내에서 경쟁력을 올리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윤석열 통 큰 결단” “미·중 사이 최선”
이날 주요 외신도 정부와 삼성의 투자 계획을 비중 있게 다뤘다. 블룸버그통신은 “기술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가장 공격적 노력”이라며 “삼성의 투자는 글로벌 반도체 제조를 이끌겠다는 한국의 야망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삼성이 최첨단 공장을 자국에서 운영하면서 미국에서도 일정한 양산 규모를 확보해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이고자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문가들 “인력 양성에도 더 힘써야”
먼저 충청권에는 반도체 패키지 특화단지(천안·온양), 첨단 디스플레이 클러스터(아산), 차세대 배터리 연구·생산 시설(천안) 등을 구축한다. 차세대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생산 거점(부산)과 첨단소재 특화 거점(구미)은 경상권에 둔다. 삼성전자의 플래그십(전략 모델) 스마트폰을 연간 1600만 대 생산하는 구미 사업장은 글로벌 스마트폰 마더 팩토리(제품 개발과 제조의 중심의 되는 공장)로 육성한다. 호남권에는 현재 광주 사업장에서 생산하는 가전제품을 프리미엄 스마트 제품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방침이다.
삼성, 수도권 외 지역에도 60조원 투자
한편 LG그룹도 이날 2027년까지 신사업에 54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배터리·전장 등 미래 자동차 관련 산업과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 분야에 44조원을, 인공지능(AI)과 소프트웨어·바이오·헬스케어·클린테크(환경기술) 분야에 약 10조원을 각각 투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