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 하이든, 유쾌한 마음으로 행복한 선율을 빚다

중앙일보

입력 2023.03.04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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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은기의 클래식 비망록 

존 호프너가 그린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의 초상화(1791). [사진 사회평론]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18세기 말 유럽에서 가장 명성이 높았던 두 작곡가다. 활동했던 시기와 지역이 같을 뿐 아니라 주력했던 음악 분야도 관현악과 오페라로 같다. 그래서 이 둘은 항상 비교의 대상이다. 결과는 당시나 지금이나 모차르트의 완승이었지만. 사실 하이든으로서는 조금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그 자신의 음악적 재능이나 역사적 업적 역시 웬만한 음악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출중했으니 말이다. 음악사의 최고 장르인 교향곡 뿐 아니라 현악 4중주의 틀을 확립시켜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현악 4중주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그다.
 
같은 시공간에서 끊임없이 비교를 당하면 서로를 싫어하거나 질투했을 만도 한데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음악사에서 보기 드물게 사이가 좋았다. 종종 서로의 집을 방문해 음악을 같이 연주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을 정도다. 놀라운 재능에 쇼맨십까지 넘쳤던 모차르트가 화제를 독차지하는 바람에 하이든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하이든은 “사람들은 내가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는 나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면서 모차르트를 칭찬했다. 모차르트 역시 “내가 현악 4중주를 작곡하는 진정한 방식을 배운 사람이 바로 하이든”이라며 하이든을 치켜세웠다.
 
24살 어린 모차르트와 사이 좋게 지내
 

현악4중주에 참여한 하이든, 작자 미상(18세기 후반). [사진 사회평론]

하이든의 인기가 모차르트에 못 미치는 것은 음악적 실력보다는 그의 인생에 모차르트 같은 극적 서사가 없어서다. 모차르트가 타고난 신동이었던 것과 달리, 하이든은 대기만성의 예술가다. 우리가 즐겨듣는 그의 역작들은 대부분 그의 만년에 작곡된 것이다. 만약 하이든이 모차르트처럼 35세에 요절했다면 그는 그저 평범한 음악가로 남았을 것이다. 모차르트보다 24년 먼저 태어난 하이든은 모차르트보다 18년이나 더 살면서 천수를 누렸다. 하이든은 삶의 방식이나 성격에 있어서도 모차르트에 비해 지극히 평범했다. 영민한 모차르트가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여기저기 떠돌아다닌 것과 달리 꾸준하고 겸손한 성격의 하이든은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며 평생 한 집안을 군주로 모셨다.


대부분의 예술 대가들이 괴팍하고 까칠한 것이 사실이지만 하이든만은 예외여서 그는 누구나 만나고 싶어 할 만큼 기분 좋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후덕한 매너와 흥겨운 농담으로 항상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으며 그의 음악에는 이러한 재치와 유머 감각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는 “하나님이 나에게 유쾌한 마음을 주셨는데 내가 그것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면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이러한 낙천성이야말로 그가 세상에서 가장 명랑하고, 기분 좋고, 행복한 교향곡을 만든 원천이었다.
 
그의 삶과 음악은 헝가리의 명문 귀족 에스테르하지가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그는 29세에 에스테르하지 궁정의 부악장으로 고용된 이후 30년 동안이나 이 집안을 섬기며 살았다. 웅장하게 바로크식으로 건축된 에스테르하지가의 여름궁전인 에스테르하차는 유럽에서도 가장 화려한 궁전의 하나로, 그곳에서 연일 베풀어지는 행사와 연회는 장대함과 호화로움의 극치를 달렸다. 그러한 품격에 맞는 수준 높은 음악이 필요했던 것은 물론이다. 이 역할을 담당한 것이 바로 하이든이다. 악장으로 승진한 하이든은 행사의 모든 음악을 맡았고 관현악단과 오페라단은 물론 인형극단과 채플까지 관장했다. 매주 협주곡 2개와 오페라 2개를 연주할 수 있도록 작품을 준비하고 궁정 음악가들을 연습시키는 것과 매일 밤 대공의 방에서 연주할 실내악곡을 마련하는 것이 그의 주된 임무였다.
 

저음 현악기 바리톤. [사진 사회평론]

하이든의 의무는 그가 맺은 고용계약서에 상세하게 명시되어 있다. 여기에는 그가 해야 하는 주요 업무는 물론 매일 정오 전에 대기실에 와서 무엇을 연주할지 물어봐야 한다거나 하이든이 작곡하는 음악을 다른 사람과 논의하거나 다른 곳으로 보내지 말라는 금지 조항도 들어 있다. 그뿐 아니라 “반드시 하인의 유니폼을 입어야 하고 예절을 갖추기 위해 가발을 써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또한 “친근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식사 예절을 지키고 말하는 것을 삼가라” “악보와 악기를 손상해서는 안 된다” 등 자잘한 생활 규칙까지 담았다. 이 계약은 그가 파울 안톤 대공과 맺은 것이었지만 그의 동생 니콜라우스 대공이 작위를 계승한 이후에도 28년 동안이나 그는 이 계약에 묶여 있었다.
 
매우 가혹해 보이기도 하지만 정작 하이든 본인은 계약 내용과 근무환경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으며 생활의 어려움 없이 음악에 정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인정해 주고 자기 음악을 좋아하는 주인 니콜라우스 대공을 진심으로 존경했으며 그를 섬기는 것을 즐거워했다. 하이든이 작곡한 120곡이 넘는 바리톤 3중주가 바로 그에 대한 충심과 애정의 증거이다. 바리톤은 바이올린에 비해 음색이나 표현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물론 음역도 낮은 저음 악기라 어느 작곡가도 바이올린을 빼고 바리톤을 넣어 현악 3중주를 작곡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이든은 바리톤을 즐겨 연주하는 니콜라우스 대공을 위해 기꺼이 그 많은 바리톤 3중주를 작곡했다. 게다가 대공의 높지 않은 연주 실력을 감안해서 바리톤 파트는 어렵지 않게 썼고, 그러면서도 음량이 풍부한 비올라와 첼로가 바리톤을 압도하지 않고 바리톤이 돋보이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단원들 어려울 때 아버지처럼 보살펴줘
 

에스테르하차 궁전, 오스트리아 아이젠슈타트 ⓒfm2. [사진 사회평론]

그러나 그의 밑에 있는 단원들도 모두 대공을 즐겁게 해주는 이 직업에 만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날마다 계속되는 연주도 힘들었지만 1년 중 반을 자기 집을 떠나 교외에 있는 에스테르하차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가장 큰 불만이었다. 궁 안에 음악가들을 위한 제대로 된 숙소가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단원들 대부분은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여름 궁전에 머무는 기간도 대공의 기분에 따라 늘어나기 일쑤였다. 특히 1772년에는 예정된 체류 기간이 두 달이나 지났는데도 대공은 궁전을 떠나지 않았고 연회도 매일 그치지 않았다. 애가 탄 단원들은 하이든에게 매달렸지만 그렇다고 그 역시 신분상 군주에게 대놓고 휴가를 보내 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궁즉통이라고 할까. 하이든은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묘안을 찾아냈다. 여느 때처럼 저녁 연주회에서는 매우 활기차게 하이든의 교향곡이 연주되고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 4악장에 이르렀을 때 함께 연주하던 오케스트라에서 연주자들이 오보에를 필두로 자기가 맡은 파트를 끝내면 하나둘씩 등불을 끄고 악기를 들고 퇴장하는 것이 아닌가. 이들이 이렇게 차례로 무대를 떠나고 나니 교항곡이 끝났을 때는 깜깜하고 텅 빈 무대만 남았다. 대공에게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휴가 요청을 우아하게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이때 연주한 교향곡이 바로 하이든의 ‘교향곡 45번 f#단조’이며, “고별”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붙여졌다.
 
이보다 더 평화롭고 예술적인 파업이 또 있을까? 다행히 이들의 고용주인 니콜라우스 대공도 연주자들이 모두 무대를 떠나자 그 메시지를 알아듣고는 “자, 그들이 모두 갔으니, 이제 우리도 가야지”라며 흔쾌하게 여름 궁전을 떠났다고 한다. 엄연히 계급이 존재하던 사회에서 항명하는 신하에게 보이기 힘든 군주의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평소에도 하이든을 아끼고 그의 음악을 사랑했던 대공이어서 가능했으리라. 하이든도 나름 믿는 구석이 있어서 벌인 일이었겠지만, 단원들은 자신들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선 하이든을 진심으로 신뢰하고 존경했다. 엄격한 수준의 음악을 요구하면서도 어려울 때마다 자신들의 편에 서서 보살펴 주는 그를 단원들은 ‘파파 하이든’이라고 불렀고, 아버지처럼 따랐다.
 
하이든을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의 음악이 좋기도 하지만 그의 행동은 더 존경스럽다. 자신의 고용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그렇고, 재능 있는 후배를 질투하기보다 오히려 인정하고 칭찬하는 모습이 그렇고, 부하들을 아끼고 키우면서 책임은 자기가 지는 모습이 그렇다. 내게 이익이 된다면 언제든지 회사와 동료를 배신하고 실력 있는 후배의 싹을 밟아버리는 것이 일상이고, 상사에게는 비굴하고 부하에게는 모질게 대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니까. 게다가 음악을 통해 자신의 요구를 전달하는 그의 센스는 유쾌함을 넘어 통쾌하기까지 하다. 뛰어난 음악을 만들면서 이렇게 훌륭한 성품까지 갖추었으니 어찌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파파 하이든. 그의 음악을 들으면 그래서 힘이 난다.
 

민은기 서울대 음악학과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음악이론을 전공하고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95년부터 서울대 음악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음악과 페미니즘’ ‘독재자와 음악’ ‘대중음악의 역사’ 등을 주제로 여러 권의 저서를 출판했으며 최근에는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시리즈를 집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