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公 결함 책임 공방…삼성重·SK해운 "하루 이자 비용만 1억"

중앙일보

입력 2022.12.2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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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의 핵심인 LNG화물창(저장탱크) 국산화 사업에 참여한 국내 민간 기업들이 5년째 이어진 손실에 애를 태우고 있다. 국산 LNG 화물창을 설치한 선박 2척에서 운항 초기 선체로 냉기가 새는 문제가 발생하면서 운항을 못 하는 상황이지만 설계를 맡은 한국가스공사가 책임을 미루면서 손해가 수천억원대로 불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46민사부는 삼성중공업, SK해운, 한국가스공사가 각각 제기한 20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맞소송을 병합 심리 중이다. 선박을 건조, 수리한 삼성중공업과 운항사인 SK해운이 발주사이자 LNG화물창 설계업체인 한국가스공사를 상대로 2019년 각각 수리 비용 등에 따른 손해와 설계결함에 따른 선박 가동불능으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고 청구했다. SK해운은 다음 해인 2020년 SK해운을 상대로 LNG 운송계약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사건은 한국가스공사가 LNG 저장탱크 설계를 맡고 삼성중공업이 이 기술이 적용해 건조한 선박 2척에서 탱크 내부의 냉기로 선체 외판 온도가 허용된 범위보다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벌어졌다. 결빙 등으로 최악의 경우 선박의 철판이 깨지면 영하 163℃의 극저온에서 600분의 1 부피로 액화된 천연가스가 빠르게 기화하면서 대규모 폭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삼성중공업은 기술 개발사인 한국가스공사가 알려준 방법에 따라 4년에 걸쳐 총 4차례의 수리 작업을 진행하고 지난달 23일부터 삼척 LNG터미널에서 LNG를 싣고 동해를 운항하는 선적 시험을 할 예정이었지만 시험을 주관하는 한국가스공사가 서류 미비를 이유로 돌연 시험을 연기했다.


SK해운이 선박을 가동하지 못하면서 현재까지 누적된 손실은 2200억원에 달한다. 해운사는 일반적으로 화주와의 장기운송계약을 전제로 빚을 내 선박을 건조하고 화주로부터 운송비를 받으면 차입금과 이자를 갚는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하루 이자비용만 1억원이 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도 반복된 수리로 1000억원 수준의 손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가스공사가 설계한 국산 LNG 저장탱크 기술 'KC-1'은 정부와 한국가스공사가 국책과제로 추진한 사업이다. 국내 조선업계가 전 세계 LNG 운반선 건조 시장의 80%를 점유하면서도 LNG 저장탱크 기술은 갖추지 못해 기술 독점업체인 프랑스 GTT에 LNG 운반선 1척마다 100억여원의 로열티를 지불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가스공사가 국책과제 수행자로 2004~2014년 이 기술을 개발했다. 10여년에 걸친 기술 개발에 정부출연금 83억7000만원을 포함한 연구개발비 197억원과 제작비 230억원 등 총 427억원이 투입됐다.
 
한국가스공사는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2014년 LNG 운반선 수주 공고 당시 'KC-1' 기술을 검증된 국내 신기술로 설명하면서 필수 적용 조건으로 안내했다.
 
조선업계와 해운업계에서는 완성도가 높지 않은 기술을 섣불리 상용화하려고 서두르면서 막대한 국민 혈세가 낭비되고 손실은 민간기업이 떠안게 됐다고 주장한다. 수리 장기화 문제는 올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한국가스공사 책임론으로 불거졌다. 업계에서는 지난달 최종 선적 시험이 서류 미비 등 석연치 않은 이유로 미뤄진 것을 두고 한국가스공사가 이달 초로 예정됐던 사장 교체를 앞두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일관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한국가스공사는 설계에는 문제가 없다며 소송을 통해 책임을 가리겠다는 입장이다. 한국가스공사는 운송 차질에 따른 손해에 대해 SK해운에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도 냈다.
 
이 사건은 SK해운이 삼성중공업에 손해배상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런던해상중재원에도 제기된 상태다. 지난해 7월 저장탱크 결함이 인정됐고 손해배상 관련 중재가 진행 중이다.